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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한우엔 자연교배 없다…A++ 비밀병기, 보증씨수소

중앙일보 2020.07.21 15:41
 100g 남짓한 1인분에 5만원이 훌쩍 넘는 1++ 등급의 최고급 쇠고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침대가 과학’이듯, 21세기 쇠고기 역시 과학의 산물이다. 그 키워드로 DNA와 씨수소ㆍ정액ㆍ인공수정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난 7일 국립축산과학원은 올 하반기 한우 개량을 이끌어 갈 ‘보증씨수소’ 20마리를 뽑았다고 밝혔다. 전국 한우 300만 마리의 아빠 자격은 국가가 공인한 보증씨수소에게만 주어진다. 생후 6개월 된 수송아지 중 정밀한 시험을 통과한 극소수만이 씨수소로 선발돼 자손을 남길 수 있다. 이들 씨수소의 정액을 전국 축산 농가로 공급해 인공수정하는 방식이다. 선발되지 못한 송아지는 거세된 채 살을 찌운 뒤 24개월이 지나면 도축한다. 인간의 입에 맞는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서다. 우리가 먹는 한우엔 자연교배가 없다는 얘기다.  
 
충남 서산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에는 전국 한우의 ‘아빠소’가 모두 모여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정책사업으로 씨수소 선발ㆍ관리, 정액 공급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지난 14일 국가공인 아빠소의 과학현장을 보기 위해 서산을 찾았다.  
 
한우개량사업소는 해발 190m의 야산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11년까지만 하더라도 산아래 마을에 있었지만, 구제역 위험을 피해 산으로 이주했다. 사실 말이 산이지 나무 한그루 없이 풀만 자라는 방목지다. ‘입소 군번’이 다른 씨수소 267마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평소엔 철저한 컨디션 관리와 정액 체취 등을 위해 우사에서 생활하다 가끔 운동 삼아 산책을 한다.
 
 
귀에 ‘1203’ ‘1180’이라 쓰인 식별표를 단 씨수소 두 마리가 연구원의 손에 이끌려 우사에서 나왔다. 언뜻 봐도 흔히 보던 소와는 체급이 달랐다. 1203호는 체중 1162㎏에 몸길이 225㎝의 육중한 몸집으로, 꼬뚜레를 잡고 선 성인 남성 연구원을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가끔 내지르는 소울음은 한가로운 “음매” 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포효에 가까운 “우어~”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차의수 종축개량장 총괄부장은 “1203호는 씨수소 유전능력 평가에서 지난해 1위, 올해 3위를 차지한 ‘최우수 등급’”이라고 귀띔했다.  
전국 유일 한우정액을 생산하는 충남 서산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에서 관리하는 씨수소의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전국 유일 한우정액을 생산하는 충남 서산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에서 관리하는 씨수소의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몸무게 1t, 길이 2m에 포효하는 소울음의 씨수소

실제로 다른 소(1180호)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고 살집도 두둑했다. 차 부장은 “전국 모든 농가에서 1203호의 정액만 구매하고 싶어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며 “결국 씨수소 한 마리당 정액을 10만 스트로(Strㆍ정액 1회 판매량) 공급하는 데, 1203호는 12만 스트로를 판매했다”고 말했다.
 
한우 개량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선발과 도태’다.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된 송아지를 검정해 우수한 유전 형질을 보유한 송아지만 씨수소로 선발해 자손을 퍼뜨리는 ‘아빠’로 키워낸다. 씨수소로 선발되는 ‘우수함’이란 살집이 많으면서 등심 단면적이 넓고 근육 내 지방이 고루 분포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과거에는 이를 혈통과 족보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한마디로 현재 소의 상태에, 아빠ㆍ엄마소의 모습을 반영해 ‘미래 씨수소 감’인지 내다보는 것이다. 2014년부터는 DNA 분석 방식을 쓰고있다. 송아지 때 5만4000개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씨수소 감’을 골라내 일정 기준 이상에 도달한 소만 선발 검정에 들어간다.  
 
검정은 총 2단계다. 소 자체의 체중과 육질 등을 살펴보는 1단계 평가를 통과하면 ‘후보 씨수소’가 된다. 후보 씨수소의 정액을 추출해 암소와 계획교배한 뒤 ‘아들 송아지’ 또한 우수한지 살펴 보는 것이 2단계 평가다. 아빠소의 형질이 우수하더라도, 아들 소에 제대로 유전되지 않으면 ‘보증 씨수소’가 될 수 없다. 차 부장은 “새끼에게 유전되지 않는 ‘우수함’은 단순한 돌연변이일 뿐이라, 개량사업에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유전체 분석은 데이터가 쌓일수록 정교해진다. 2014년 시작된 유전체 분석을 통해 현재까지 9472마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다. 노승희 한우개량사업소 검정부 이학박사는 “현재 송아지 유전체 분석 값과 실제 다 자란 소의 체중과 근지방 등이 적중하는 비율은 70% 정도”라면서 “10만 마리 이상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되면 적중률이 90%를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유일 한우정액을 생산하는 충남 서산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에서 14일 정우영(40) 박사가 전국 한우 개량을 이끌 씨수소의 친자 확인과 유전자 정보 등을 분석하는 칩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전국 유일 한우정액을 생산하는 충남 서산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에서 14일 정우영(40) 박사가 전국 한우 개량을 이끌 씨수소의 친자 확인과 유전자 정보 등을 분석하는 칩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씨수소를 통한 한우개량사업을 통해 쇠고기 품질이 크게 높아졌다. 1등급 출현율(한우 1마리를 도축했을 때 1등급 이상 고기의 비율)이 20년 전에는 49%로 절반에 못 미쳤는데, 2005년 70.3%로 뛰어올랐고 2018년부터 88.8%를 유지하고 있다. 한우 도축 후 고기 무게도 2007년까지 396kg이었던 것이 지난해는 446kg으로 뛰어올랐다.  
 
농촌진흥청 가축개량평가과 박미나 연구관은 “한우개량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가치는 매년 2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미 100년 이상 개량해온 일본 화우 등 최고급 쇠고기와도 경쟁할 수 있는 품질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근친 교배 낮춰 유전적 다양성 유지 위한 노력도  

하지만 ‘우수한 소만 번식한다’는 한우 개량 사업의 원칙을 지키다보면 필연적으로 근친도가 높아진다. 유전적 다양성이 무너져 멸종 위험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 화우의 경우 2015년 전체 소의 근친계수가 8%에 달했다. 통상 근친계수가 6.5%를 넘어서면 사촌 이내의 가까운 사이로 본다. 한우는 2019년 기준으로 근친계수가 1.2%로 낮은 편이다.  
 
 
한우개량사업소는 품질 개량과 함께 근친도를 낮추기 위해 고심 중이다. 씨수소 평가 시, 아무리 형질이 좋은 소라도 아빠소가 같을 경우 5마리 이내로 선발하고 있다. 씨수소 한 마리당 10만 스트로의 정액만 공급하도록 관리하는 것도 근친 교배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차 부장은 “일본의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한우 품종을 우수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유전적 다양성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산=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