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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160조 뉴딜, 돈 뿌리기보다 돈 버는 인프라 만들어줘야

중앙일보 2020.07.21 00:02 종합 10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한국판 뉴딜’ 현장 방문지로 전북 부안군 위도 근처의 서남권 해상풍력 실증단지를 찾아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한국판 뉴딜’ 현장 방문지로 전북 부안군 위도 근처의 서남권 해상풍력 실증단지를 찾아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주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전성철 회장이 보는 ‘한국판 뉴딜’
태양광·고용·부동산이 실패한 건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했기 때문
경제주체 의욕 살리는 게 나라 몫

현명한 자는 고인 물 퍼내는 대신
바닥 깎아 내리막 경사 만드는 법
사회·제도적 인프라 혁신 힘써야

‘뉴딜’이란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한 종합 제도개혁 프로그램이었다. 대공황은 인류에게 엄청난 아픔을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18세기부터 200여년 간 진행되면서 여러 결함을 드러냈던 자본주의를 성숙하게 만들어 준 결정적 사건이기도 했다. 그것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성숙한 자본주의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대공황 이전의 자본주의엔 문제가 많았다. 대공황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한꺼번에 노출시켜 버렸다. 당시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은 여전히 금본위제에 묶여 있었다. 즉, 금이 생산된 만큼만 돈을 찍을 수 있었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만큼 화폐가 더 많이 필요한데도 그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자연히 1920년대까지 급성장한 미국 경제는 심각한 호흡 곤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예금자 보호법이란 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 은행이 부도가 나면 예금자들이 자신의 예금을 먼저 빼가는 소위 ‘뱅크런’이 전국적으로 줄을 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은행들이 도산했다. 대공황 초기에는 한 달에 무려 4000개의 은행이 도산한 적도 있었다.
 
증권시장의 윤리성을 담보하는 어떤 제도도 없었다. 소위 ‘내부자 거래’ ‘공시 위반’ 등이 적절하게 규제되지 못한 가운데 미국 증시는 온통 사기와 기만의 전당으로 변해갔다. 투자자들이 이 부패상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투매 현상이 일어났고 증시는 폭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근로자와 노동조합을 보호하는 노사관계 법규들도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루스벨트는 ‘뉴딜’이라는 종합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자본주의의 이런 허점들을 수술해 나갔다. 물론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있었다. 테네시강유역개발계획(TVA) 등 대규모 국가주도 건설프로젝트가 여러 개 실행됐다. 그러나 그것은 25%에 달하는 살인적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긴급 구호 작업이었다. TVA가 세상에 많이 알려지는 바람에 마치 뉴딜이 그것인 양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 뉴딜의 작은 부분이었을 뿐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뉴딜 계획은 앞으로 5년간 160조원을 투자해 19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구축, 친환경·저탄소 등 특정 산업 육성 등을 통해 ‘선도형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포용 사회로 연결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산업정책’일 뿐 ‘뉴딜’은 아니다. 산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전형적인 산업정책이지 종합적인 제도개혁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뉴딜’로 보기 어렵다.
 
정부가 현 시점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새로운 산업정책을 적극 주도하는 것엔 염려스러운 대목이 있다. 우선 정부의 실행 역량에 대한 신뢰 부족이다. 정부는 지난 3년간 야심차게 추진했던 3가지 산업 정책인  ▶탈원전 태양광 프로젝트 ▶실업 대책 ▶부동산 정책에서 처참하게 실패했다. 태양광 산업에선 국내 1위이자 세계 2위인 폴리실리콘 업체를 비롯한 주요 참여자들이 속속 손을 떼고 있다. 태양광 산업의 밸류 체인이 구축되지 못해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업대책도 지극히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정부 예산으로 알바성 비정규직을 수십만 개 양산하고도 실업률(4.3%)은 사상 최악이다. 22번째 대책을 내놓고도 서민들을 절망시키고 있는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 뉴딜 계획의 핵심이 정부가 직접 ‘돈을 뿌리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투자비 160조원 중 100조원 이상이 국민 세금이다. 단순히 정책을 만드는 일이면 그것은 다시 고치면 된다. 그러나 돈 뿌리는 것이 실패하면 필연적으로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거대한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경제하려는 의욕에 불을 지피는 일이다. 경제 주체들이 의욕에 불타 온 힘을 다해 일할 때 나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다. 태양광, 고용,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모두 민간이 아니라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한 결과물이다.
 
지혜로운 집 주인은 마당의 물을 치울 때 무작정 퍼내기보다 마당을 깎아 내리막 경사를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내려가게 한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등 경제에서 성공한 세계의 위대한 진보 지도자들이 모두 그런 방법을 택했다. 시장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산업정책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단, 정부가 돈 보따리 들고 전면에 나서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것을 ‘뉴딜’이라는 화려한 말로 분장해선 안된다. ‘뉴딜’이라는 이름을 꼭 쓰고 싶다면 프로그램을 바꿔야 한다. 기업과 시민들이 공정하게, 그러나 자유롭게 창의성과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으로 바꿔야 한다.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서울대 졸업 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MBA와 로스쿨을 마쳤다. 한국 정부 고문변호사로 수퍼301조 등 통상 현안을 처리했다. 귀국 후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과 세종대 부총장 등을 지냈다. IGM세계경영연구원을 세워 CEO 및 임원들에게 다양한 경영 기법을 전수했다.『보수의 영혼』 등 10여 권의 책을 썼다.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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