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승회의 미래를 묻다] 식물이 된 인간, 동물이 될 도시

중앙일보 2020.07.20 00:32 종합 20면 지면보기

정보통신 혁명과 도시

‘난 인간만은 식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코로나19가 앞당긴 언택트 사회
사무·교육 공간과 이동 수요 감소
집까지 제품·서비스 전달하는
도시의 신진대사는 한층 가속화

‘날개’의 작가 이상이 남긴 문장이다. 2020년, 그 문장은 예언처럼 실현됐다. 인간의 식물화는 이전부터 준비되고 진행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로 인간의 식물화는 분명해졌다. 식물은 이동하지 않는다. 이동하지 않는 인간은 동물일까, 아니면 식물일까?
 
1980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일렉트로닉 코티지(electronic cottage·컴퓨터와 통신 장비를 갖춰 재택근무할 수 있는 집)’를 미래의 주거로 제시했다. 디지털미디어와 통신 혁명으로 집에서도 업무가 가능해지는 미래, 자족적인 주거와 더불어 탈집중화·분권화할 세계를 그렸다. 그의 예측이 이루어졌다면 대도시로 집중하던 인구는 촌락으로 분산됐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화는 더욱 가속됐다. 숲을 파괴하고 신도시를 만들었다.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린 대가로 마침내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맞이했다. 지금 우리는 도시의 수많은 공간을 비워둔 채 각자의 공간에 갇혀 있다. 2020년 우리는 어떤 미래를 예감하는가?
  
기술혁명, 새로운 폐허를 만들다
 
거리는 텅 비었다. 사람들은 집에서 공부하고, 종교 예식에 참여하고, 공연을 즐기고, 드론으로 택배를 받는다. 코로나19가 빚은 언택트 시대 도시의 모습이다. [AP·AFP·EPA·로이터=연합뉴스]

거리는 텅 비었다. 사람들은 집에서 공부하고, 종교 예식에 참여하고, 공연을 즐기고, 드론으로 택배를 받는다. 코로나19가 빚은 언택트 시대 도시의 모습이다. [AP·AFP·EPA·로이터=연합뉴스]

기술의 발전이 건축 혁명을 불러온 시절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발명되자 마천루가 탄생했고, 기차와 도로가 등장하면서 대도시가 생겨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양상이 달라졌다.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인간이 달을 밟은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지만, 정작 1970~80년대 세계를 풍미한 것은 고전 건축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건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옥을 흉내 낸 건물이 유행했다. 기술과 건축의 상호작용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바이오·전자통신·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은 세포·전자·나노스케일 등 극도로 미세한 세계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건축과 도시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시대의 기술은 마천루나 증기기관차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대신, 일상에 스며들어 우리 생활을 변화시킨다. 인터넷·스마트폰·전자결재가 바꾼 일상을 생각해 보라.
 
정보통신 혁명은 마침내 접촉 없는 생활, 언택트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정보통신과 물류가 결합하면서, 정보통신과 금융·교육·오락이 결합하면서, 집에서 일하고, 회의하고, 물건을 사고, 강의를 듣는다. 집에서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즐기는 ‘넷플릭스 앤드 칠’(Netflix and chill)과 같은 트렌드도 생겼다.
 
인류의 진화는 지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것은 이동하지 않는 인간, 식물이 된 인간의 등장이다. 식물화한 새로운 삶의 양식은 도시와 건축의 전면적인 재편을 요구한다. 이미 변화는 진행 중이다. 대형마트와 소매점·은행 등은 숫자가 지속해서 줄고 있다. 점점 비어 가는 수많은 공간은 기술혁명이 만든 새로운 폐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 접촉은 회사와 학교, 그리고 종교집회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재택근무가 보편화하고, 화상 교육이 널리 실시됐다. 종교집회도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지 6개월, 언택트 방식이 불편을 낳기도 했지만, 외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건축학과의 설계 수업은 전통적으로 1대1 대면 교육으로 운영했기에 비대면 수업에 대한 우려가 컸다. 올해 1학기를 마친 결과는? 예상보다 좋은 교육이 이루어졌다. 5월 이후 진행한 대면·비대면 병행 수업도 큰 도움이 됐다. 학생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비대면 수업을 병행하는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노출됐던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비대면 활동이 익숙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수업의 절반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면, 업무의 반을 재택근무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면, 예배의 반을 생중계로 대체할 수 있다면, 도시와 건축공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의실과 사무실을 비롯해 수많은 공간이 반으로 줄어도 문제없을 것이다.  
 
동시에 이동에 대한 수요도 극적으로 감소한다. 도로와 주차장 면적을 크게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상상해 보자. 수많은 건물과 도로와 차량이 사라진 도시를. 차선이 줄어든 도로는 녹지로 바뀌어 도시는 가로공원의 그리드로 재편된다. 녹지는 도로에서 골목으로 이어져 집 앞까지 이어지는 녹색 실핏줄을 만든다. 음식이 배달되듯 맑은 공기와 초록 그림자가 집으로 배달된다. 식물화한 인간이 이동을 줄인 대신, 신진대사가 더욱 가속된 도시는 마치 동물처럼 바쁘게 움직인다.
  
초록 그림자를 집으로 배달하는 세상
 
아파트와 대형빌딩 지하에 있었던 거대한 주차장은 실내 농업과 경공업, 그리고 물류기지로 전환된다. 따뜻한 두부와 싱싱한 상추가 지하주차장에서 생산돼 집으로 배달된다. 도시 안에서 생산이 이루어지면, 물류 이동 거리는 짧아지고 푸드 마일리지가 단축돼 탄소배출 저감에 기여한다.
 
식물화한 인간에게는 잘 조직된 서비스가 필요하다. 언택트 시대에는 필요한 물품이 개인에게까지 원활히 배달돼야 하기 때문에 물류와 공간의 체계가 통합적으로 재구성된다. 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 중단 없이 이어지는 흐름은 배달 로봇이 집안의 지정된 자리에 물품을 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동의 필요성이 적어진 인간에게 동네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효용을 다한 건물은 시민들을 돌봐주는 시설로 변모한다. 걸어 다닐만한 영역 안에서 나와 이웃의 전 생애가 불편 없이 펼쳐질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보행 거리 10분 크기’의 식물형 인간이 되리라. 가끔 동네를 벗어나는 장거리 여행이 허락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누에고치를 뚫고 나비가 태어나듯이 도시는 이제 탈바꿈해야 하는 시점이다. 비전을 다시 세우고 법과 관행을 바꿔야 한다. 미래를 창조하는 힘은 공동체의 의지로부터 생겨난다. 우리는 어떤 곳에 살기 원하는가?
 
언택트 시대, 집과 동네의 귀환
이동의 필요성이 줄어든 사람들에게 집은 더욱 중요해진다. 언택트의 많은 시간을 거주공간에서 보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간의 불평등이다. 어떤 이는 마당이 넓은 주택에서 공간을 향유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어떤 이는 두 평짜리 고시원에서 답답한 시간을 견딘다. 집은 복지를 넘어 인권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언택트 시대에 도시의 재구조화를 거치며 생겨난 잉여공간을 주거공간으로 전환해 공급할 필요가 있다. 강의실은 학생 기숙사로, 사무실은 청년 주택으로, 빈 시설을 이용해 질 높은 주거공간을 공급한다면 공간 복지를 해결하면서 도시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도시의 변화가 촉진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필요한 기술과 체계를 선제적으로 개발해 미래를 향한 사다리를 구축하자.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공간 사용면적을 줄인 기업과 기관에 인센티브를 주고, 절약한 공간을 다른 용도로 쉽게 전환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자. 도시 생태계 재구축에 관한 연구도 필요하다. 저이용 공간 발굴, 새로운 교통과 물류체계, 실내농업과 도시경공업, 녹색환경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동 반경이 작아지고 거주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 동네와 이웃은 가장 중요한 삶의 조건이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물며 동네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 과정에서 동네의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이웃들을 만났다.
 
아무리 언택트 시대라 해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에 속하려 한다. 동네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고,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때, 동네는 사회 기반이자 자아실현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도시 공간의 재구조화를 거쳐 생겨난 잉여공간은 생애주기에 따른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여가시설·유치원·평생교육시설·노인돌봄시설 같은 생활지원 시설로 전환될 수 있다. 공동시설을 중심으로 동네 모임이 형성되고 동네 특유의 문화가 다양하게 펼쳐진다면, 모두가 그토록 바라던 ‘문화의 도시’를 향유하게 될 것이다.
 
집들이 모인 길을 따라 가로수가 짙은 그늘을 내리고, 나무 아래에서 산책하는 이웃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평범한 미래를 그려 본다. ‘집과 동네의 귀환’, 언택트의 미래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예기치 않은 선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승회 교수
건축사 사무소 ‘경영위치’를 운영했으며, 2003년 서울대 교수가 됐다. 김수근문화상·한국건축문화대상·건축가협회상·서울시 건축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시간을 짓는 공간』 『주택, 삶의 형식을 찾아서』 등이 있다.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