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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아야소피아 정복한 에르도안 야심…이슬람주의 시대 알렸다

중앙일보 2020.07.19 09:00
고대 로마제국에서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대형 교회를 지은 터전.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330~1453년)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537년에 현재 모습으로 건설한 고대 기독교 교회.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앞에서 한 남자가 터키 국기를 들고 터키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회색 늑대 를 손가락으로 나타내고 있다.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화는 터키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그리고 이슬람주의가 결합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앞에서 한 남자가 터키 국기를 들고 터키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회색 늑대 를 손가락으로 나타내고 있다.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화는 터키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그리고 이슬람주의가 결합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900년 동안 기독교 문화의 심장부이자 동방정교(4차 십자군에 점령된 56년간은 가톨릭 교회)의 본산. 터키 오스만제국(1299~1922년)의 술탄 메메트 2세가 1453년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개명)을 점령해 480년간 황실 모스크(이슬람사원)로 사용한 전리품. 

터키의 ‘스트롱맨’ 에르도안 대통령
이슬람주의 정당 활동으로 총리·대통령
종교와 정치, 그리고 사회생활 결합한
이슬람주의로 권력 강화하고 정적숙청
포퓰리즘·독재에 이슬람주의 결합해
에르도안 이슬람주의가 모스크화 바탕
종교와 정치의 분리 명시한 세속주의
터키공화국 세운 케말, 건국이념 제시
1935년 아야소피아 박물관 된 배경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를 대놓고 무시
이란·파키스탄 이슬람공화국의 바탕
디지털화로 이슬람주의 확장에 주목

2016년 쿠데타 실패 4주년 기념 행사를 위한 리허설이 지난 15일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앙 소피아 앞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터키 국기로 티를 맞춰 입은 남자들이 터키 국기를 들고 달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6년 쿠데타 실패 4주년 기념 행사를 위한 리허설이 지난 15일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앙 소피아 앞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터키 국기로 티를 맞춰 입은 남자들이 터키 국기를 들고 달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고 1923년 건국한 터키공화국이 1934년 내각회의 결정으로 이듬해 종교와 무관한 시설로 개조한 박물관. 종교의 정부 간섭을 배제한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의·서구화·관용의 상징.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스탄불 역사 지구의 중심.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10일 아야 소피아의 박물관 지위 취소와 모스크화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에 아애 소피아의 내부가, 오른쪽에 터키 국기가 보인다. 이번 결정은 이슬람주의와 터키 민족주의, 그리고 에르도안의 권력강화 의지와 푸퓰리즘이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10일 아야 소피아의 박물관 지위 취소와 모스크화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에 아애 소피아의 내부가, 오른쪽에 터키 국기가 보인다. 이번 결정은 이슬람주의와 터키 민족주의, 그리고 에르도안의 권력강화 의지와 푸퓰리즘이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1500년 역사 아야 소피아, 모스크화 결정

터키 최대도시인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아야 소피아(그리스어론 하기야 소피아)의 역사와 현재다. 터키 최고행정법원은 지난 7월 10일 아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결정한 1934년 내각회의 결정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이를 85년 만에 다시 모스크로 되돌렸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고행정법원의 결정이 나오자 아야소피아를 모스크로 개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이를 즉각 공개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아야 소피아 자미(터키어로 이슬람사원. 모스크는 아랍어)’를 디야네트(터키 종교청)가 관리하고 이슬람 신자의 신앙을 위한 공간으로 재개장하라”는 내용이다. 이날 결정이 발표되자 아야소피아 바깥 광장에 모여있던 무슬림들은 일제히 “알라후 아크바르(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는 의미)를 외쳤으며 노상에서 저녁 기도를 올렸다. 이들은 터키 국기를 흔들었으며 국기 모양의 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보였다. 이슬람공화국인 파키스탄의 국기를 들고나온 사람도 보였다. 터키 국기는 붉은 바탕에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이 그려져 있으며, 파키스탄은 이슬람을 상징하는 녹색 바탕이다.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화를 결정한 지난 10일 아야 소피아 앞에서일부 주민이 에르도안 대통령과 과거 콘스탄티노프을 점령해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꾼 아흐메드 2세의 초상화가 나란히 그려진 현수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화를 결정한 지난 10일 아야 소피아 앞에서일부 주민이 에르도안 대통령과 과거 콘스탄티노프을 점령해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꾼 아흐메드 2세의 초상화가 나란히 그려진 현수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정교일치 오스만 무너뜨린 터키공화국

술탄(세속 군주와 이슬람 종교 지도자를 겸하는 정교일치의 지도자)이 지배하던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고 1923년 세속주의 공화국으로 건국한 터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부에선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제난 등으로 궁지에 몰리자 이를 만회하려고 정치적인 술수를 부린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터키에서 공화국 건국 이래 계속돼온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환원 결정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자 유럽연합(EU) 가입 희망국인 터키에서 이슬람주의가 세속주의를 누르고 득세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중앙포토]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중앙포토]

아타튀르크, 건국 초부터 세속주의·서구화

터키의 세속주의는 1923년 공화국 건국 이래 오랫동안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작동해왔다. 공화국 건국을 주도해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로 로 불리는 국부 무스타파 케말파샤가 제정한 헌법에 따라 세속화, 서구화, 민주화를 추구해왔다. 케말 파샤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이스탄불에 가까운 갈리폴리에 상륙한 연합군에 맞서 승리를 거뒀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리스 침략군에 맞선 터키 독립전쟁을 주도하고 오스만 제국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다. 연합군은 1920년 오스만제국과 세브르 조약을 맺고 터키의 아랍 영토(나중에 이라크·요르단·시리아·레바논·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독립)를 몰수하고 아르메니아를 독립시켰으며, 쿠르드족의 자치를 허용하고 에게 해의 섬과 소아시아 서부를 그리스에 떼어 주기로 했다. 터키인들에겐 치욕적이었다. 케말 파샤의 군부 세력은 재협상을 통해 1923년 로잔 조약을 맺고 터키의 독립과 소아시아 영토를 보존했다. 그 여세를 몰아 케말 파샤는 터키 공화국을 건국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아애 소피아의 내부 모습.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 가운데에, 아랍 문자로 '알라'를 쓴 패널이 오른쪽에 보인다. AP=연합뉴스

아애 소피아의 내부 모습.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 가운데에, 아랍 문자로 '알라'를 쓴 패널이 오른쪽에 보인다. AP=연합뉴스

 

헌법에 세속주의 명시,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케말 파샤는 국민 총의에 따른 국민주권주의를 선언하고 국정에서 종교적 권위와 간섭을 배제하고 열강의 영향력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터키인의 주권국가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 정교를 분리하고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자체 개혁(서구화)을 해야 한다는 것이 ‘케말주의 터키 민족주의’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건국 헌법은 세속주의를 국가의 바탕으로 명시했다.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케말파샤가 의도한 터키의 서구화를 이룰 수 있다고 봤다. 케말 파샤는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뒤 문자를 아랍 문자에서 라틴 문자로 바꾸었다. 군대를 중심으로 정치, 행정, 교육 등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서구화를 진행했다. 종교를 정치에서만 분리한 게 아니라 사회 분야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애썼다. 최근엔 오히려 그 반대로 흐르고 있긴 하지만 한때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것조차 금지했을 정도다. 히잡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이슬람에 대한 사회의 복종을 의미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케말 파샤는 헌법에 ‘군은 헌법의 수호자’라는 구절도 넣었다. 터키의 정치에 종교가 개입하려고 하거나 개혁 정신에서 벗어나 부패했다고 판단되면 군부가 자동으로 개입해 이를 저지하고 세속주의와 개혁주의 정치를 재건하도록 한 것이다.  
 
에르도간 지지자들이 10일 아야 소피아 앞 광장에서 노상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일부는 터키 국기를 들었다. EPA=연합뉴스

에르도간 지지자들이 10일 아야 소피아 앞 광장에서 노상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일부는 터키 국기를 들었다. EPA=연합뉴스

도시 엘리트는 세속주의, 농민은 이슬람주의

하지만 세속주의와 서구화 개혁은 군대와 엘리트층에서 지지를 얻었을 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이슬람 신앙심이 강한 농촌 주민과 가난한 국민에게는 낯선 조치였다. 영국 런던정경대 정치사상 교수인 폴 켈리 등이 쓴 『정치의 책(The Politics Book)』(돌링스킨더슬리 발행, 국내에선 지식갤러리 번역 출간)에 따르면 가난한 농촌 지역에 많은 사람이 이런 서구화 정책이 근대화 정책이 아닌 도시 엘리트들의 의지를 자신들에게 주입하려는 것으로 여기고 저항했다. 터키 공화국은 겉으로는 세속적이고 서구적인 민족국가로 보였지만 내부에선 종교적인 농촌 무슬림과 세속적인 도시 엘리트·군대의 갈등이 오랫동안 계속돼왔다. 터키 내부에선 이슬람주의가 지층 아래의 마그마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왼쪽 둘째)이 2017년 터키의 첫 대통령중심제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21세기 술탄’ 시대를 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부인 에미네와 앙카라 대통령궁에 도착하며 전통 군복과 무기를 갖춘 근위병들을 사열하고 있다. 이슬람주의를 주장하는 에르도안은 2남2녀의 자녀는 모두 미국에 유학 보냈다.[EPA=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왼쪽 둘째)이 2017년 터키의 첫 대통령중심제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21세기 술탄’ 시대를 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부인 에미네와 앙카라 대통령궁에 도착하며 전통 군복과 무기를 갖춘 근위병들을 사열하고 있다. 이슬람주의를 주장하는 에르도안은 2남2녀의 자녀는 모두 미국에 유학 보냈다.[EPA=연합뉴스]

 

에르도안, 터키에 이슬람주의 정치 도입

이슬람주의 정치를 터키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인물이 바로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에르도안은 국가구제당(1972년 창당, 1981년 쿠데타로 해산), 복지당(1983년 창당, 1998년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 미덕당(1997 창당, 2001년 헌법위원회에 의해 해산) 등 여러 이름으로 이슬람정당을 창당해 운영했는데 군사쿠데타 정권의 탄압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 등으로 줄줄이 해산됐다. 국가구제당은 이슬람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미이며, 복지당과 미덕당은 이슬람 정신으로 주민 복지를 구현하고 이슬람의 미덕을 장려하겠다는 뜻이다. 군부와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정신을 앞세워 정치활동을 벌이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와 세속주의 정치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해산을 명령하거나 결정했다.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간 싸움의 선봉에 에르도안이 있었다.  
게다가 세속주의라는 대의명분은 정부를 종교에서 분리하는 대의명분은 이뤘지만, 국민을 가난에서 구제하진 못했다. 에르도안이 2011년 창당한 친이슬람 정당인 정의개발당은 정부가 해주지 못하는 따뜻한 복지와 배려를 주민들에게 베풀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슬람주의와 그 정신을 구현하는 이슬람 정당은 에르도안의 정치적인 자산이다.  
 

이슬람주의로 이스탄불 시장 거쳐 총리, 대통령

2017년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6월 25일 수도 앙카라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2017년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6월 25일 수도 앙카라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탄압을 받으면서도 에르도안은 1994~1998년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해 임기를 마쳤다. 2003년에는 당시 내각제 성격이 강한 터키의 총리에 올라 2014년까지 장기 집권했다. 2014년에는 대통령으로 말을 갈아탔다.  
터키에서 에르도안의 권력이 무소부지 수준이 이른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몰아내려다 실패한 2016년의 7월 15일 발생했다 실패한 군부의 쿠데타 기도다. 세속주의 세력의 마지막 보루인 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에르도안에 밀린 것이다. 이스탄불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쿠데타군 탱크를 에워싸고 항의했다. 항의하는 국민에 밀려 쿠데타군은 결국 병영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애 소피아 앞에서 지난 7월 10일 집회를 열고 있는 주민들. EPA=연합뉴스

아애 소피아 앞에서 지난 7월 10일 집회를 열고 있는 주민들. EPA=연합뉴스

 

쿠데타 막은 뒤 세속주의 세력 6만 명 숙청

에르도안은 쿠데타를 막은 뒤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해 비상대권을 거머쥐고 전국에서 대숙청을 벌였다. 군인은 물론 법관, 공무원, 교사 등 6만 명을 현직에서 쫓아냈다. 일부는 처벌까지 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의 문을 닫게 하고 기자들을 몰아냈다. 이들은 모두 터키 공화국 건국 이래 세속주의를 받쳐온 세력이다. 누가 봐도 세속주의 세력을 말살하고 이슬람주의를 터키에 뿌리내리려는 정치적인 행보다.  
아애 소피아의 모스크호ㅓㅏ가 결정된 지난 10일 주민들이 그팡 광장에서 노상 예배를 드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애 소피아의 모스크호ㅓㅏ가 결정된 지난 10일 주민들이 그팡 광장에서 노상 예배를 드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군인·법관·교사·공무원 등 세속주의 보루 숙청

이를 통해 에르도안은 자신의 이슬람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마지막 대항 세력의 기세를 완전히 꺾었다. 그는 세속주의 국가인 터키에서 친이슬람주의를 추구하면서 자유 언론을 억압하고 세속주의를 지탱해온 주요 세력인 사법부, 교육계 등에서 반대파를 몰아내면서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런 정치적 숙청과 탄압은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법치, 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이를 명백한 인권탄압의 비민주주의적인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권력을 거머쥔 에르도안이 자신의 이슬람 정당을 해산시켰던 군부와 법조계의 숙청에 유난히 열을 올린다는 지적도 있다.  
2017년 11월 22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시리아 사태 중재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부터). 연합뉴스

2017년 11월 22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시리아 사태 중재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부터). 연합뉴스

 

2017년 개헌으로 견제 없는 권력 장악

그런 에르도안은 지난 2017년 4월 16일에는 개헌 국민투표를 해 헌법을 자신에 입맛에 맞게 고치고 대통령 중심제를 확립했다. 그전까지 의전적인 자리에 불과했던 대통령을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에르도안은 국부 케말 파샤가 만든 의원내각제를 허물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장기 통치가 가능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새롭게 확립했다. 독재권을 헌법으로 확보한 셈이다.
개헌 국민투표에서 에르도안의 개헌안은 2515만7025명이 지지해 51.41%의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반대에 투표한 국민이 투표자의 48.59%인 2377만 7091표나 된다는 점도 정치적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나라를 딱 둘로 나눈 셈이다. 85.32%라는 높은 투표율은 국민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찬성파도 반대파도 격앙된 상태라는 사실도 함께 보여줬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바라본 언덕 위의 아야 소피아. AP=연합뉴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바라본 언덕 위의 아야 소피아. AP=연합뉴스

 

아야 소피아 모스크화는 이슬람주의가 배경

이번 아야 소피아를 다시 모스크로 돌린 것은 에르도안의 이슬람주의의 영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와 터키 민족주의, 그리고 정치적 포퓰리즘을 결합한 묘한 정치이념을 내세워왔다. 에르도안식, 또는 터키식 이슬람주의인 셈이다.  
그동안 미국의 그리스계 기독교 사회를 비롯한 일부에서 아야 소피아를 기독교 교회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 대부분이 무스림인 터키인들은 분노했다. 2018년 아야 소피아에서 이슬람 기도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러자 이슬람 정당 활동을 정치적 바탕으로 삼아온 에르도안이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환원을 주장했고, 이번에 결국 목적을 이뤘다. 에르도안의 이슬람주의와 포퓰리즘이 묘하게 결합한 모습이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아저티(자유) 탐 주변에서 2019년 열린 이슬람혁명 40주년 행사의 모습. 서구식이 아닌 이슬람식 근대화를 선택한 것이 1979년 이슬람혁명이다. 연합뉴스

이란 수도 테헤란의 아저티(자유) 탐 주변에서 2019년 열린 이슬람혁명 40주년 행사의 모습. 서구식이 아닌 이슬람식 근대화를 선택한 것이 1979년 이슬람혁명이다. 연합뉴스

서구식 아닌 이슬람 바탕 근대화 목소리

이슬람주의는 사실 중동·이슬람 사회에서 오랜 전통이 있다. 이란의 이슬람 정치이론가인 알리 샤리아티(1933~1977년)가 대표적인 이론가의 한 명이다. 그는 유럽식 근대화 모델은 이슬람국가의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배격했다. 대신 이슬람 사상과 종교활동을 중심축으로 삼아 독립과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서구화한 엘리트 대신 이슬람, 사회전통, 그리고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는 계몽된 국민이 이슬람 혁명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슬람 사회의 독립과 발전은 서양 사상이 아닌 이슬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이슬람주의의 핵심을 설파한 인물이다.  
인도 출신의 이슬람주의 이론가인 아불 알라 마우두디(1903~1979년) 는 이슬람을 국가나 국민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마우두디는 처음에는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민족주의를 지지하다 이슬람주의로 돌아섰다.  
이슬람의 종교적 원칙에 따라 지배되는 정치체계를 완성하는 것만이 서구의 간섭에서 벗어나 진정한 탈식민주의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이슬람주의 사상은 파키스탄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인 무함마드 지아울하크(1924~1988년, 집권 1977~1988년)에게 영향을 미쳐 이슬람 샤리아 율법에 따른 형법을 만들게 했다. 지하울하크는 쿠데타로 대통령에 오른 뒤 과거 총리와 대통령을 지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를 교수형에 처하는 등 과격한 군사독재를 펼쳤다. 군사독재와 이슬람주의가 결합한 경우다.  
마우두디는 인도에서 활동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을 유일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다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으로 옮겼으나 그곳에서 폭동 선동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돼 목숨을 구한 뒤 미국으로 망명해 1979년 뉴욕에서 숨졌다.  
 

터키 외에도 이슬람주의 확장

현재도 무슬림 인구가 많은 여러 지역에서 서구식 민주주의 대신 이슬람주의는 대안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유럽 한복판으로 유럽연합(EU) 가입 후보국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예외가 아니다.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지면서 내전과 무슬림이라는 이류로 인종청소라는 이름의 의도적인 학살을 겪으면서 이슬람주의에서 대안을 찾는 분위기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이슬람 세계 곳곳에 잠복한 이슬람주의

결국 에르도안의 아야 소피아 모스크화는 터키 등에서 오랫동안 서구화·세속주의와 싸워온 이슬람주의가 본격적으로 현실 정치에서 위력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슬람주의는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음으로 양으로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세력을 키워온 셈이다.
아야 소피아 모스크화는 정보·미디어로 상징되는 21세기 디지털 문명이 서구식 문명의 확산과 보편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일부의 기대를 여지없이 부수고 있다. 오히려 디지털 문명 발달에 따른 정보·미디어의 확산은 이슬람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세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슬람주의는 앞으로 어떻게 발달하고 어떤 영향을 글로벌 사회에 미칠 것인지 주목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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