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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훈수듣는 시간···시진핑 ‘베이다이허 회의’ 패스 가능할까

중앙일보 2020.07.18 05:00
해마다 여름이면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의 휴양지인 베이다이허에선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휴가를 겸해 모두 모이는 '베디아이허 회의'가 열린다. 철저한 비공개 회의여서 이 기간 언론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사진은 회의가 열리는 베이다이허 리조트의 모습. [교도=연합뉴스]

해마다 여름이면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의 휴양지인 베이다이허에선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휴가를 겸해 모두 모이는 '베디아이허 회의'가 열린다. 철저한 비공개 회의여서 이 기간 언론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사진은 회의가 열리는 베이다이허 리조트의 모습. [교도=연합뉴스]

 
양회(전인대·정협)와 함께 중국 정가의 최대 행사로 꼽히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다가오고 있다.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약 280㎞ 떨어진 허베이성의 여름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중국 전·현직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현안을 놓고 방향을 정하는 '비밀회의'다.   

전·현직 지도자 집결하는 비밀회의
'홍색귀족' 불만 대리 표출 가능성
코로나·대홍수 명분삼아 취소?

 
평소대로라면 2주 뒤인 7월 말에 열려 8월 초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다 한 달 넘게 이어진 폭우로 중남부의 홍수 피해가 커지자 취소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원로 4인방과 진땀 나는 회의

또 다른 배경도 있다. 베이다이허엔 장쩌민(江澤民·93)과 후진타오(胡錦濤·77) 전 국가 주석, 주룽지(朱鎔基·91)와 원자바오(溫家寶·77) 전 총리 등 원로 4인방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만큼 시진핑(習近平·67) 주석에겐 껄끄러운 자리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를 비롯해 홍콩국가안전유지법(홍콩 보안법) 실시, 남중국해 갈등 등 미·중 대립이 전방위로 번진 가운데 시즌을 맞았다. 원로들의 훈수를 듣는 것 자체가 진땀 나는 일일 터, 시 주석 입장에선 올해만은 어떻게든 피하길 원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중국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지난해 10월 1일 신중국 성립 70주년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선 중국의 전·현직 최고지도자. 후진타오(왼쪽)와 장쩌민(오른쪽) 전 주석 사이에 시진핑 주석이 서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10월 1일 신중국 성립 70주년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선 중국의 전·현직 최고지도자. 후진타오(왼쪽)와 장쩌민(오른쪽) 전 주석 사이에 시진핑 주석이 서 있다. [중앙포토]

21년 전인 1999년 10월 1일 같은 행사에서 천안문 망루에 오른 당시 수뇌부들. 왼쪽에서부터 후진타오 부주석, 주룽지 총리, 장쩌민 주석,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 [AFP=연합뉴스]

21년 전인 1999년 10월 1일 같은 행사에서 천안문 망루에 오른 당시 수뇌부들. 왼쪽에서부터 후진타오 부주석, 주룽지 총리, 장쩌민 주석,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 [AFP=연합뉴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중국 전문 칼럼니스트인 나카자와 가쓰지(中沢克二) 편집위원은 15일 칼럼에서 "중국 공산당은 대외적으론 단결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 내부엔 여러 의견이 있다"며 "시진핑이 밀어붙이는 정책 하나하나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론(異論)을 내는 것이 일부 간부만이 아니라, 그 뒤에 영향력을 가진 원로들이 있다면 (시진핑 입장에선) 대처가 한층 어려워진다"고 짚었다.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원로들

오랜 기간 베이다이허의 주역이었던 원로 4인방과 시진핑의 생각이 한 방향을 향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중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네 원로는 '발톱을 숨기고 실력을 쌓으며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韬光养晦)의 실천자들이었다.
 
그런데 시진핑은 2012년 집권 이후 '도광양회'를 버리고 '강국노선'으로 급선회했다. 당초 계획보다 더 빨리 경제적, 기술적으로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구상은 두 나라 간의 격한 충돌로 이어졌다. 성장률 둔화까지 겹치며 중국 내부에서도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원로들 역시 자신들이 잘 컨트롤했던 미국과 관계를 시 주석이 무너뜨렸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고령인 이들에겐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인 베이다이허 회의가 언제든 마지막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올해를 넘기면 다음 회의 참석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美 제재에 떠는 '홍색 귀족'   

최근 시진핑 정권이 강행한 홍콩 보안법이 내부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법엔 '외국인이 홍콩이 아닌 외국에서 한 행위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까지 담겼다. 
 
이로 인해 외국 자본의 '탈(脫) 홍콩'이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자 홍콩을 통해 이권을 누리던 '홍색 귀족'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촬영한 홍콩의 야경.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실시하면서 외국 자본의 홍콩 탈출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다. 홍콩에 이권이 있는 중국의 '홍색 귀족'도 이런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촬영한 홍콩의 야경.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실시하면서 외국 자본의 홍콩 탈출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다. 홍콩에 이권이 있는 중국의 '홍색 귀족'도 이런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미국에 제재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중국의 지도부 인사나 고위 관료 자제 중 상당수가 유학이나 사업을 이유로 미국에 머물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런 기류를 짐작할 수 있다. 시진핑의 외동딸 시밍쩌(習明澤·28)도 2010년부터 4년간 하버드대를 다녔다. 
 
이들 고위층과 그들의 친인척들은 해외에 비밀 금고는 물론 부동산 등 많은 자산을 갖고 있다. 미국이 제재망을 본격 가동할 경우 이런 자금들이 묶여버릴 수 있다. 
 
그러니 미국이 반중국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나카자와 위원은 칼럼에서 중국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제재 발동 시) 피해가 막대해서 생각했던 것 이상의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를 전했다.
 

◇태자당으로부터 멀어진 시진핑 

시진핑이 지난 8년간 '반부패'를 화두로 측근 중심의 권력을 강화한 것도 반발심을 키운 측면이 있다. 불만 세력 중엔 혁명 원로의 자제들인 '훙얼다이(紅二代)', 이른바 '태자당'도 있다. 
 
태자당 인사들은 집권 초기만 해도 같은 그룹 출신인 시진핑의 든든한 뒷배였지만 이젠 다르다. 정권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다이허 롄펑산 정상에 새겨진 베이다이허 표지석. 산 아래로 국가급 요양소가 밀집한 별장 지대가 펼쳐져 있다. 신경진 기자

베이다이허 롄펑산 정상에 새겨진 베이다이허 표지석. 산 아래로 국가급 요양소가 밀집한 별장 지대가 펼쳐져 있다. 신경진 기자

지난 2017년 공산당 대회 인사에서 시진핑이 측근인 가신 그룹만 중용하는 바람에 태자당이 소외됐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기반인 권력과 부(富)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그만큼 증폭된 상황인 셈이다. 
 
이렇게 쌓인 불만을 대놓고 폭발시킬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비공개인 베이다이허는 이들에게 원로를 내세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무대다.     
 

◇국가 위기 상황이 구세주?

그러나 코로나19가 이런 반전의 시도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베이징 수뇌부는 고령의 원로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원거리의 베이다이허에서 모이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입장을 낼 수 있다.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회의를 취소한 전례도 있다. 
 
지난 13일까지 3900만 명의 이재민을 낸 대홍수도 명분이 될 수 있다. 국가 비상상황에서 지도자들이 자리를 비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 1998년 여름, 후베이성 우한을 중심으로 대홍수가 났을 때 당시 장쩌민 주석은 방일 일정까지 취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진핑 주석에겐 이런 국가적 위기가 자칫 정치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을 피할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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