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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曰] 어게인 WTO

중앙선데이 2020.07.18 00:28 695호 30면 지면보기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스위스 제네바는 22개의 국제기구 본부가 자리 잡은 국제도시다. 그 중 레만 호수가 굽어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는 ‘세계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직장’이라 소문나 있다. 이 WTO 건물 3층의 회의실은 ‘그린 룸’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내부의 초록색 카펫과 벽지가 화려하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이 방에서 세계통상현안에 관한 온갖 논의와 협상이 이뤄지는데, 그 바로 옆이 세계무역 질서를 관장하는 수장인 사무총장 집무실이다. WTO 전성기 시절 사무총장은 내로라하는 주요 교역국 대표들을 그린 룸에 한데 ‘집합’시켜 ‘OO 라운드’라 불리던 국제 통상규범의 기초작업을 총지휘했다.
 

세번째 재도전 사무총장 당선 쉽지않아
정확한 판세분석 속에 정치력 내세워야

이 자리에 한국이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은 이미 사무총장 선거에 두 번이나 도전했다가 실패한 ‘아픈’ 경험이 있다. 2012년 박태호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출마해 9명의 후보와 경쟁을 펼치며 2단계까지 올랐지만, 최종 3단계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94년 초대 사무총장 선거엔 김철수 상공부 장관이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수장에 도전했지만, 이탈리아 통상장관에 밀려 중도 경선 포기를 선언하고 대신 사무차장에 임명됐다.
 
이번에 후보로 나선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유학 시절 변호사 자격을 딴 통상전문가다. 3년간 주중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해 중국에 대한 이해도 높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2007년 한미 FTA 협상 취재현장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외교통상부 신참 과장이었지만 우리가 수세에 몰렸던 서비스와 경쟁분과장을 맡아 꽤 끈기 있는 ‘밀당’ 협상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WTO 사무총장 선거는 일반적인 선거와 달리 ‘고백’(Confession)이라 불리는 독특한 절차를 밟는다. 투표 대신 제네바 주재 회원국 대사들이 WTO 의장단과 독대한 자리에서 지지 후보를 밝힌다. 이런 절차를 몇 번 거치면서 후보군을 추려내고 마지막으로 남은 후보를 만장일치로 추대한다.
 
164개 회원국의 국제기구 수장에 출마하는 것은 정부 차원에서 국익을 놓고 면밀한 검토를 거친 결과일 것이다. 나름 승산이 어느 정도 있으니 내놓은 ‘회심의 카드’일 게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의 거센 바람 속에서 미·일·중 등과의 양자 협상이 중요한 시점에 다자간 국제 무역의 장으로 뛰어드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이웃 일본은 무역 갈등의 당사자인 한국이 적격이 아니라며 반대할 움직임이다. 최근 자신의 WTO 경선 막전막후를 담은 회고록 『통상의 길 50년』을 냈던 김철수 전 장관(79)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개도국의 지지를 받는 아프리카 후보 등 중량감 있는 몇몇 후보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지지 국가 수는 중요하지 않다. 미, 중, EU 등 주요 국가의 입장이 향배를 가른다. 한국과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의 반대 여부가 관건이다. 양국 간 무역 규제 논란보다 다자적 무역 질서 회복이 우선임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유 후보에게 조언한다면.
“통상 전문성과 같은 개인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각국 정상과 언제라도 통화할 수 있는 정치적 경험을 가진 인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쟁쟁한 후보들에 맞서 주요 교역국과의 통상 협상을 주도해냈던 경험을 내세워 WTO 개혁을 이끌 수 있다는 정치력을 강조해야 한다.”
 
올 연말 승자가 나오는 경선 과정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혹여라도 부동산, 경기 침체와 같은 국내 문제를 외부의 성과로 덮으려는 시도는 아니길 바란다. 실패 연속의 잔혹사를 끝내려면 정확한 판세 분석과 정교한 선거 전략이 우선이다. 정부는 필승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가.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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