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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택 공급위해 그린벨트 푸는 건 신중해야

중앙선데이 2020.07.18 00:21 695호 30면 지면보기
서울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정부의 주택 공급 카드로 급부상했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이 검토 대상으로 떠오르고, 국방부 관할인 노원구 태릉의 육군사관학교와 인근 태릉골프장과 태릉선수촌을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 논의는 당장 접어두기를 촉구한다. 그린벨트의 역사와 기능을 한 번쯤 숙고해 봤다면 이런 발상은 거론조차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50년 지켜온 그린벨트 역할 지금도 유효
용적률 상향, 재개발·재건축 활성화가 우선

그린벨트는 지난 60년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 역할을 했다. 경제개발이 본격화한 1960년대부터 정부는 산업화 진전에 따라 급속도로 도시가 팽창하자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개발제한구역제도를 도입했다. 그린벨트의 등장이었다. 시가지가 무한대로 팽창하는 것을 막고 전 국토에 산림녹화를 벌이는 핵심 수단이 됐다.
 
우리나라 산은 일제강점기 때 땔감으로 나무가 베이고 민둥산이 된 뒤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벌거숭이가 돼 있었다. 이에 1971년 7월 서울 지역에 최초로 그린벨트가 지정됐다. 72년 8월에는 대상 지역이 수도권에서 두 배로 확대됐다. 이후 77년까지 전 국토의 5.4%가 편입됐다. 서울은 전 지역의 25%가 그린벨트로 보호되고 있다. 그린벨트 정착으로 난개발과 무허가 건축에 제동이 걸렸고, 붉은 민둥산은 푸른 숲으로 변모했다. 80년대까지 정부는 입산 금지 푯말을 전국 산마다 세웠다. 이런 노력으로 한국에선 선진국 못지않게 산림이 풍요로워져 홍수 피해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린벨트는 그야말로 선진국의 척도가 되고 있다. 뉴욕·도쿄 등 세계적 도시에는 고층 빌딩도 많지만 도심 곳곳에 녹지가 많고 인근 산은 나무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다. 산업의 발달로 도시화가 불가피한 만큼 그린벨트가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항공에서 내려다봤을 때도 고층 빌딩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푸른 숲 아닌가. 정부는 그린벨트가 50%에 달한다는 이유로 내곡동을 콕 찍어 해제 지역으로 검토하고 있다. 거듭 촉구하지만, 내곡동이든 태릉이든 그린벨트의 고유 기능과 역할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현재는 물론 미래의 자산이므로 그대로 둠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많다.
 
정부는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꼬이고 엉킨 부동산 정책부터 대폭 손질해야 한다. 당장 세 가지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서울 도심의 ▶용적률 상향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유휴부지 활용이다. 이들 대책은 7·10대책에서 거론됐지만, 서울 도심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공급이 필요한 곳에 적용하지 않으니 부동산 시장은 늘 공급 부족에 허덕여왔다. 정부는 그동안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방침과 궤를 같이하면서 용적률을 제한하고 재개발·재건축을 철저히 억제했다. 서울 주택의 절반가량이 노후화해 재개발·재건축이 불가피한데 일률적으로 규제를 가해 공급 확대의 기회를 막았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시는 도심재생이라는 그럴싸한 캠페인을 벌여 도심의 낡은 동네를 옛 모습 그대로 보전하는 데 주력했다. 재개발에 제동이 걸리면서 그 자리에는 레트로풍의 유흥주점과 식당이 줄줄이 들어서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을 차단해 주택난을 부채질한 셈이다. 그러면서 그린벨트 해제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환경 파괴를 둘러싼 국론 분열도 우려된다.
 
정부는 덜컥 그린벨트를 푸는 손쉬운 방법을 택할 게 아니라 도심의 용적률을 높이고,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해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늘리는 조치를 우선 검토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과도한 규제로 거래를 억제하고, 세금폭탄이 집값에 전가되면서 전·월세를 자극하고 있는 문제도 되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내 집 마련이나 이사가 필요한 실수요자에게 어떤 정책이 도움될지를 살펴서 부동산 대책을 정상화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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