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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휴가지가 된 유배지

중앙선데이 2020.07.18 00:21 695호 9면 지면보기
전남 강진의 월출산 금릉 경포대는 거울처럼 맑고 겨울처럼 차가운 물을 품은 계곡이다. 김홍준 기자

전남 강진의 월출산 금릉 경포대는 거울처럼 맑고 겨울처럼 차가운 물을 품은 계곡이다. 김홍준 기자

(서울에서) 상당한 거리두기다. (가까운 도시에서) 띄엄띄엄 자리 잡았다. (험해서) 사람이 모이기 어렵다. 고려·조선 시대와 일제 강압기까지 유배지로 ‘악명’을 떨친 곳들의 공통점이다. 원지(遠地), 오지(奧地), 험지(險地)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수칙과 겹치는 과거 유배지들의 특징이다. 21세기, 하늘에 교통망이 뚫려도 여전히 다가서기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올 여름 휴가는 ‘한적한 곳이 뜰 것’이라는 전망이다. 휴가지가 된 유배지 몇 곳을 추렸다. 오지탐험가 김경수(57), 오지여행가 문승영(41), 백패킹 전문가 민미정(42)씨가 추천했다.  
강원 삼척 두타산의 무릉계곡. 김홍준 기자

강원 삼척 두타산의 무릉계곡. 김홍준 기자

# 강원 삼척(한양에서 660리, 7일 소요)

공양왕 세상 뜬 곳 근처 해수욕장
정약용 쫓겨간 강진에도 경포대
전남 장도에 사고 친 코끼리 귀양
김정희 유배지 옆 100m 주상절리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그해 7월 강원도 원주로 귀양 갔다. 공양군으로 신분이 떨어졌다. 8월에 간성으로, 이듬해 3월에는 삼척으로 이배(移配)됐다. 불과 한 달 뒤인 4월 17일 조선 개국공신 정남진이 찾아왔다. 그는 왕씨 복권을 위한 반역 도모를 내용으로 하는 태조의 교지를 읽어내렸다. “그대는 비록 몰랐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대간과 법관이 연명으로 글을 올려 청하기를 열두 번이나 … 내 어쩔 수 없이 그 청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대는 이 사실을 잘 알라.”(태조실록 5권)

강원 삼척 궁촌에 있는 공양왕릉. 김홍준 기자

강원 삼척 궁촌에 있는 공양왕릉. 김홍준 기자

공양왕은 이날 두 아들과 함께 삼척 궁촌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약도 아닌 교살이었다. 시신은 그대로 나무에 걸렸다. 궁촌에 있는 그의 묘는 허름하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조금 삐딱하다. 서쪽으로 20도 정도 틀어졌다. 뒤편, 왼편은 바다다. 궁촌해수욕장이 있다. 사금산(1081m)에서 내려온 추천이 동해 바닷물과 만나는 곳에 있다. 모래에 누우면 뒤에는 민물이, 앞에는 바닷물이 앙상블이 돼 소리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현재 해안침식으로 공사 중이다. 근처에 하맹방·원평·용화 해수욕장도 궁촌해수욕장처럼 수심이 얕고 송림과 어우러진다. 

 
바다를 음미할 여유가 없었던 공양왕은 경기 고양 원당에도 능이 있다. 훗날 태종이 공양군을 공양왕으로 추봉하면서 석물을 세우는 등 예를 갖췄다. 일설에는 공양왕의 몸은 삼척 능에, 머리는 원당 능에 있다고 전해진다.
  
반면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와 그의 부인의 묘는 영험하다는 근처의 두타산에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기가 이곳 두타산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무릉계곡이 있다. 지난 13일 장마로 불어난 무릉계곡의 위력은 대단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삼화사 길로 넘어가는 다리는 무너질듯했다. 민미정 백패킹 전문가는 "빼어난 계곡은 물 참과 물 빠짐이 빠르다"고 말했다. 다음날 계곡은 얌전했다.
인천 무의도는 다리가 놓이면서 육지와 발빠르게 닿게 됐다. 무의도 환상길은 호젓한 길로, 숨을 크게 내쉴 수 있는 곳이다. 김홍준 기자

인천 무의도는 다리가 놓이면서 육지와 발빠르게 닿게 됐다. 무의도 환상길은 호젓한 길로, 숨을 크게 내쉴 수 있는 곳이다. 김홍준 기자

# 인천 (70리, 1일)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1873~1935)는 1911년 6월부터 인천광역시 무의도에서 1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이른바 ‘105인 사건’에 휘말렸다. 105인 사건은 일제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를 조작한 사건이다. 1912년 이후로 이동휘는 국내 항일운동 대신 해외에서 활동했다. 무의도는 이동휘의 항일 활동 형태의 전환점 된 셈이다. 하지만 이동휘의 무의도 유배행적은 확실하게 남아있지 않다.
 
100여 년이 흘렀다. 2019년 4월 무의도는 다리로 육지와 닿게 됐다.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으로 건널 수 됐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입도 차량 수를 제한한다. 김경수 오지탐험가는 “대무의도-소무의도 다리나 하나개해수욕장은 사람이 몰릴 수 있다”며 “호룡곡산으로 이어지는 환상길이 한적하고 서해 일몰도 그야말로 환상적”이라고 밝혔다.
 
강화군 교동은 연산군이 유배돼 생을 마감한 곳이다. 광해군·안평대군·임해군 등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2014년 교동대교가 들어서면서 자동차로 접근하기 쉬워졌다. 교동 짬뽕은 이곳이 아니라 강릉이 원조다. 강화 교동은 짬뽕처럼 강렬하지는 않다. 평양냉면처럼 심심하면서도 당기는 맛이 있다.
경남 남해 대량마을의 비룡계곡은 기막힌 주상절리를 뽐내는 은둔의 명소다. 사진=박귀봉

경남 남해 대량마을의 비룡계곡은 기막힌 주상절리를 뽐내는 은둔의 명소다. 사진=박귀봉

# 경남 남해(1030리, 11.5일)
남해 노도는 『구운몽』을 지은 서포 김만중(1637~1692)의 마지막 유배지인 절도(絶島)다. 그는 숙종의 노여움을 샀다. 조사석과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의 내연관계가 언관들에 의해 밝혀지면서 그는 숙종 앞에서 “조사석이 정승이 된 이유는 장희빈 덕”이라고 대놓고 말했다. 유배됐다. 풀려났다가 다시 유배 갔다. 그곳이 노도다.
 
노도가 보이는 남해 대량마을에 독특한 계곡이 있다. 비룡계곡이다. 용왕이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상절리 층과 각마다 힘이 솟구쳐 있다. 남해 바래길 3코스인 구운몽길의 비경이다. 비경인 만큼 접근이 어렵다. 위험하다. 그래서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는 출입금지 구역으로 묶었다. 방법은 하나다. 바다에 나가 이 비룡계곡을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 물음표 하나. 위에서 물이 흐르지도 않는데 계곡이라고 한다. 바닷물이 깊이 들어오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계곡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바다”라고 말했다.
경북 울진 불영계곡은 폐쇄 위기에 접한 36번 국도를 타야 제 맛을 볼 수 있다. 김홍준 기자

경북 울진 불영계곡은 폐쇄 위기에 접한 36번 국도를 타야 제 맛을 볼 수 있다. 김홍준 기자

#경북 울진(810리, 10일)

이계 이산해(1539~1609)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어가가 의주로 몽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일로 강원도 평해에 귀양 갔다. 평해는 지금의 울진의 한 곳을 이루고 있다. 유배 생활 3년간 이산해는 『아계유고(鵝溪遺稿)』에 실려 있는 시 840수 가운데 절반이 넘는 483수를 지었다. 오곡연당기(梧谷蓮塘記)에 그는 ‘연(蓮)만은 병적일 만큼 좋아했다. 이 때문에 남의 집에 연꽃이 만개했다는 말을 듣는 날이면, 천리 길도 멀다 않고 말을 타고 가서 구경했다“고 썼다.
경북 울진 불영사 연못에는 더위가 한창인 7월 어리연꽃이 피었다. 김홍준 기자

경북 울진 불영사 연못에는 더위가 한창인 7월 어리연꽃이 피었다. 김홍준 기자

울진의 불영사에는 지금 연꽃이 활짝 피었다. 노란 어리연꽃이다. 불영사는 신라 때 지은 고찰이다. 일주문에서 15분 걸어 산에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 잡았다. 서쪽의 부처 형상을 한 바위가 연못에 비치니, 곧 불영사라 이름 지었다. 절 이름을 딴 불영계곡의 물은 절이 있는 천축산을 휘감아 동해로 흘러나간다. 계곡이 깊고 길다.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서면 하원리까지 15㎞에 이른다. 비교적 가까운 안동에서 온 조은진(30)씨도 “큰마음 먹고 이렇게 깊은 곳에 왔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서현태(66)씨는 “불영계곡을 즐기려면 직선으로 뻗은 새 도로보다 옛날 길인 36번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곳곳에 금강송이 뻗어있다. 손때가 덜 묻은 곳이란 의미다.
경북 울진의 덕풍계곡 물은 아예 시커멓다. 깊기 때문이다. [사진 오철종]

경북 울진의 덕풍계곡 물은 아예 시커멓다. 깊기 때문이다. [사진 오철종]

울진에는 덕풍계곡도 있다. 물이 깊어 아예 시커멓다. 잠수사인 A씨는 "들어가도 들어가도 깊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말만 들어도 오싹하다.

 
# 전남 강진·영암(영암 810리 9일, 강진 840리 11일)
정약용(1762~1836)은 천주교를 멀리했다. 큰형 정약종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됐다. 정약용은 둘째 형 정약전과 함께 사형에서 유배로 감형됐다. 장기에서 강진으로 이배됐다.
전남 영암 강진 월출산 금릉 경포대. 김홍준 기자

전남 영암 강진 월출산 금릉 경포대. 김홍준 기자

김병희(49) 월출산 자연환경 해설사는 “월출산은 전남 강진에 30%, 영암에 70% 물려있다”며 “산세가 걸출하지만, 워낙 수도권에서 멀어 탐방객이 적은 편인 데다 강진 쪽은 더 멀어 한갓지다”고 말했다. 월출산 국립공원은 서울에서 길이 잘 뚫려야 5시간 걸린다. 지난해 탐방객이 22개 국립공원 중 가장 적은 49만명이다. 김 해설사가 말한 ‘강진 쪽’은 금릉 경포대다. 영암에서 왔다는 여성 3명도 “우리도 이쪽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예전 영암을 거쳐 강진에 유배 갔을 때도 산을 휘감아 돌아야 했기에 이틀은 더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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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金陵)은 강진의 옛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경포대(鏡布臺)는 강릉의 경포대(鏡浦臺)와 한자가 다르다. 어느 한 지점의 평평한 곳을 가리키지 않고 2㎞에 걸친 계곡이 무명베를 펼친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국립공원공단에서는 일정 구간 계곡 출입을 허용한다. 물이 거울처럼 맑고, 겨울인 듯 차갑다. 탐방객 인터뷰를 위해 20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과 마주칠 일이 적다. 언택트다.
 
전남 장도는 태종 때 고위 관리를 죽인 코끼리가 유배 간 곳이다. 전남 화순은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된 뒤 결국 사약을 받고 죽은 곳이다. 화순 백아산은 오지 산 중의 으뜸으로 꼽힌다. 백아산 마당바위는 산 위에 다른 산이 엎친 듯한 형세다. 그곳에 하늘다리를 놓았다. 
전남 남원의 지리산 덕동계곡은 늘어질 정도로 발 뻗고 지내면서 시간을 보내도 된다. 김홍준 기자

전남 남원의 지리산 덕동계곡은 늘어질 정도로 발 뻗고 지내면서 시간을 보내도 된다. 김홍준 기자

# 전북 남원(7.5일, 640리) 
황희(1363~1452)는 세종 때 18년간, 역대 최장수 영의정으로 봉직했다. 그는 사후 남원부원군으로 책봉됐다. 개경에서 태어나고 한양에서 생활한 그에게 왜 남원부원군이 붙었을까.
 
태종은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하려 했다. 당시 이조판서 황희가 반대했다. 황희는 교하(파주)로 유배됐다. 태종은 너무 가깝다 하여 다시 남원으로 보냈다. 황희는 5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황희는 남원에서 광한루를 지었다고 알려졌을 뿐, 그에 대한 자세한 유배 기록은 없다. 다만 동태를 살피라는 어명을 받은 황희의 생질 오치선은 왕에게 이렇게 아뢨다. “초당의 문을 잠그고 손님을 일체 거절하고 운서(韻書)만 탐독하고 있사옵니다.”
 
전남 구례에서 전북 남원으로, 섬진강 변을 이웃하다가 굽이굽이 지리산로를 따라가면 달궁계곡을 만난다. 달궁 오토캠핑장 앞 계곡은 물이 깊어 짙푸르다. 아이들은 물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보다 더 북쪽으로 향하면 덕동계곡이 있다. 달궁캠핑장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은 오토캠핑장이 있다. 문승영 오지여행가는 “얕은 물에 발 담그고 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알짜 캠핑족들이 가는 곳”이라고 귀띔했다.
  
황희는 자신이 세자 책봉에 반대한 충녕대군(세종)의 부름을 받아 남원에서 한양으로 복귀했다. 반면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제주에서 유배 생활 중 한양으로 향하다 전북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정읍에는 내장산이 있다.
제주 안덕면 대평리의 박수기정.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제주 안덕면 대평리의 박수기정.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 제주 대정(2040리, 13일)

제주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대정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 간 곳이다. 김정희는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됐다. 윤상도는 탐관오리를 탄핵하다가 군신을 이간시킨다는 죄목으로 추자도에 유배된 뒤 능지처참 됐다. 김정희의 죄는 이 윤상도를 변호하는 상소의 기초가 됐다는 글을 썼다는 것이었다. 제주는 유배인 중 중죄인들이 가는 곳이다. 김정희는 이곳에서 추사체를 완성했다.
 
김정희는 대정 근처의 안덕계곡을 자주 찾았다. 안덕계곡은 1132도로 밑에 있다. 단단한 암반과 기암절벽 사이로 물이 부드럽게 흐른다. 상록수 원시림은 천연기념물이다. 대평감산로를 따라 대평으로 넘어가면 높이 100m에 이르는 아찔한 주상절리 ‘박수기정’이 보인다. ‘박수’는 ‘바가지로 물을 퍼 올린다‘를 뜻하고 ‘기정’은 ‘절벽’을 의미한다. 실제 박수기정 절벽 밑에는 샘물이 있지만 출입금지다. 제주올레길 9코스의 시작인 박수기정에 오르면 평원처럼 트인 곳이 나온다. 길은 대정까지 이어진다. 
 
옆의 계곡에는 이른 아침에 참선 동호회에서 해를 맞이하며 수련을 하기도 한다. 워낙 조용해서다. 서울에서 온 김경률(57)씨는 대평만 여섯 번째 방문했단다. 그는 “제주 대평을 찾지 않으면 제주 여행자가 아닌 관광객”이라고 말했다
충남 아산시 영인면에 자리 잡은 영인암장에서 클라이머들이 등반을 즐기고 있다. 김홍준 기자

충남 아산시 영인면에 자리 잡은 영인암장에서 클라이머들이 등반을 즐기고 있다. 김홍준 기자

# 충남 아산(200리, 2.5일)

1636년 12월 병자호란. 이조참판이자 강도검찰부사인 이민구(1589~1670)는 인조를 강화로 모셔야 했다. 강력한 청의 기병과 직접 맞부딪치는 것을 피하면서 침공로 주변의 성에 군사를 집결하여 장기 공성전을 유도하려 했다. 청의 수군이 약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하지만 청은 진격을 서둘러 강화로 가는 길을 차단했다. 왕은 결국 남한산성으로 파천했다. 남한산성에는 전략 물자가 부족했다.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치렀다. 이민구는 자책했다. 그는 아산으로 유배됐다. 그곳에서 『아성록(牙城錄)』을 지었다.
 
아산은 바다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다라는 의미가 퇴색됐다. 영인면 산63번지에 채석장으로 쓰던 곳이 있다. 이름 붙이길, 영인암장이다. 오전 11시면 그늘이 드리워져 서늘해진다. 암벽은 30m에 이른다. 암벽 등반을 하던 문순자(50)씨는 “힘쓴다고 더울 것 같지만, 오히려 시원하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 청풍호는 단종, 혜빈 양씨 등이 유배 간 뒤 수양대군(세조)의 명으로 죽임을 당한 ‘동강벨트’에 있다. 사진은 옥순봉에서 내려다본 청풍호. 백종현 기자

충북 제천 청풍호는 단종, 혜빈 양씨 등이 유배 간 뒤 수양대군(세조)의 명으로 죽임을 당한 ‘동강벨트’에 있다. 사진은 옥순봉에서 내려다본 청풍호. 백종현 기자

# 충북 제천의 청풍(390리, 4일)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1455)는 단종과 그의 누이인 경혜공주를 키웠다. 세종이 죽자 관례대로 비구니가 됐다. 단종은 즉위하자 혜빈 양씨를 불렀다. 수양대군에게 혜빈 양씨는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결국 혜빈 양씨는 금성대군(수양의 친동생) 등과 결탁해 전횡을 일삼았다는 이유로 청풍에 유배됐다. 단종은 수양에게 혜빈 양씨를 죽이지만 말아 달라며 왕위를 넘겼다. 혜빈 양씨의 아들 중 한 명인 영풍군도 청풍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경혜공주의 남편이자 단종의 자형인 정종, 그리고 단종도 영월로 향했다. 모두 죽임을 당했다. 동강과 동강에서 이어지는 남한강, 즉 ‘동강 벨트’에서다.
 
제천 금수산 능강계곡 얼음골의 찬 공기와 물은 땀구멍을 단단히 죄어준다. 능강교에서 얼음골 생태길을 따라 90분 정도 오르면 만난다. 능강계곡 얼음골에서는 초복에 얼음이 가장 많고, 중복에 바위 틈에서 얼음이 보이며, 말복에 바위를 들어내야 얼음이 보인다고 한다. 김경수 오지 탐험가는 "금수산 무암사 계곡에서 풍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근처의 소백산 천동계곡에서도 차디차고 세찬 물과 만날 수 있다. 사람 뜸한 천동계곡 숲은 산림청 선정 ‘명품 숲’이다. 그늘진 곳이 흑록색으로 보일 정도로 깊다.

(도별 가나다순) 
김홍준 기자rimrim@joongang.co.kr

휴가지가 된 유배지.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휴가지가 된 유배지.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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