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데이터 겨우 1GB…보편요금제 ‘스마트한 인하 효과’ 의문

중앙선데이 2020.07.18 00:20 695호 14면 지면보기
지난달 8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5G 품질과 속도가 광고와 다르다며 이동통신 3사를 표시광고법 위반(허위·과장 광고)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8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5G 품질과 속도가 광고와 다르다며 이동통신 3사를 표시광고법 위반(허위·과장 광고)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3일 오후 11시,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5G(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를 시작했다. 5G는 최대 속도가 20Gbps(기가비트·1초당 데이터 전송 속도)에 이르는 이동통신 기술로, 4세대 이동통신인 LTE에 비해 속도가 20배가량 빠르고, 처리 용량은 100배 많다.  
 

정부, 통신요금 줄이기 재추진
저렴한 2만원대 요금 강제 제도
“극단적 규제, 생태계에 농약”
이동통신사·알뜰폰 업계는 반발

1인당 데이터 사용량 8.4GB인데
1GB 제공, 소비자 외면 가능성
“5G 품질 개선 시급” 목소리도

5G는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가상현실,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기술 등을 구현할 수 있는 이동통신 기술로 주목을 받아왔다. 이 같은 5G를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세계 최초’ 타이틀을 위해 5G 상용화를 밀어붙이면서 곳곳에서 5G 이용자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기지국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상용화하면서 연결이 자주 끊겼고, 일부 지방에선 아예 잡히지도 않았다.
  
#LTE보다 20배 빠르다는 통신 속도는 5배 남짓에 불과했다. 그러면서도 통신요금은 LTE에 비해 월 1만~2만원 비싸게 출시해 소비자의 불만이 컸다. 사실 5G의 품질 문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초창기보단 많이 개선했지만 여전히 품질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5G 요금은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정부가 꺼낸 카드가 ‘보편요금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달 30일 보편요금제 도입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8년 처음 보편요금제를 추진했으나 이동통신 업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이동통신 업계는 정부의 보편요금제 재추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5G 시설 투자 비용 증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규제 완화가 아니라 되레 업계를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요금제는 저소득층 등의 통신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이동통신사에 저렴한 요금제 출시를 강제하는 제도다. 통신요금을 가스·수도·전기 등과 같은 공공요금처럼 정부가 강제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으로 치면 정부가 아파트 분양가를 규제하는 ‘분양가상한제’와 비슷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정부가 생각하는 보편요금제는 음성통화 200분, 데이터 1GB 기준 2만원대 요금제다. 유사한 요금제가 이미 있는데, 이는 LTE 기준 3만원대다. 현재 6만원 전후의 요금제가 주를 이루는 LTE와 달리 5G 요금제는 8만원대가 많다. 가장 저렴한 요금제도 LTE는 3만원대지만, 5G는 4만원대다. 이 때문에 이동통신 3사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해외와 비교하더라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예외적이고 극단적 규제”라며 “물가안정법에 따라 결정, 승인, 인가 또는 허가가 필요한 공공요금도 주무부처가 직접 정하는 예는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2만~3만원대 요금제가 주를 이루고 있는 알뜰폰 업계의 우려가 크다. 정부가 알뜰폰 활성화 대책 마련에 나선다면서 한쪽에선 보편요금제를 추진하는 등 엇박자를 낸다는 비판이다.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KMVNO)는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면 알뜰폰 사업자의 매출이 연간 46%가량 감소하고, 영업적자가 317억원(2016년 기준)에서 415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알뜰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알뜰폰에 저렴한 국민 통신 생활을 담당하라 해놓고, 이동통신사에 2만원대 요금제를 내라고 강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알뜰폰이 더 활성화해 통신요금이 내려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는 정부가 알뜰폰 생태계에 농약을 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동통신 업계의 반발과는 달리 소비자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설문조사 애플리케이션인 모카가 보편요금제 논란이 일었던 2018년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971명)의 60%가 보편요금제의 취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보편요금제가 정부 바람대로 통신요금을 끌어 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보편요금제의 통신요금 인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보편요금제가 제공하는 데이터는 2018년 기준 1GB인데, 이는 과기정통부가 집계한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인 8.4GB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이를 더 올린다고 해도 제공 데이터 부족 등으로 대부분의 소비자가 외면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직장인 유현상(34·남)씨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동영상 콘텐트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선호한다”며 “1~2GB의 데이터로는 하루 이틀도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요금제 인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2018년 이동통신 3사는 정부의 보편요금제 도입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저가 요금제를 출시한 적이 있다. 당시 이동통신사는 음성 무제한, 데이터 1.5GB를 기반으로 3만원대 요금제를 출시했는데, 기존의 요금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공 데이터만 조절해 저가 요금제를 추가하는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더라도 이동통신사가 고가 요금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요금제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또 KB국민은행 등 후발주자가 알뜰폰 시장에 뛰어들면서 요금 경쟁이 치열한 만큼 보편요금제 무용론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는 통신요금 인하는 대통령 공약이었던 만큼 보편요금제 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보편요금제를 출시하면 그에 상응하는 알뜰폰 요금제 출시도 가능하도록 후속 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어서 정부와 이동통신 업계 간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결국 피해는 5G 이용자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여전히 연결도 원활하지 않은데, 보편요금제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면 5G 기지국 확대 지연 등 서비스의 질이 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계의 통신요금 인하도 중요하지만 미흡한 5G 품질을 높이는 일도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가입유형 따라 지원금 차등…‘호갱’ 양산 ‘단통법’ 고치기로
이른바 ‘호갱(호구+고객)’ 양산법으로 불린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개정될 전망이다. 이동통신사 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번호이동·신규가입 등 ‘가입유형’에 따라 공시지원금을 차등 지급하고, 유통점의 추가지원금 법정 한도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단통법은 고가 통신요금에 대한 차별적 보조금을 금지하고 스마트폰 등 휴대폰 단말기를 누구는 싸게, 누구는 비싸게 사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로 2014년 10월 도입했다. 이를 위해 공시지원금을 최대 33만원으로 제한하고, 유통점의 추가지원금을 규제했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신형 단말기가 나올 때마다 이동통신사와 유통점이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호갱을 양산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는 올해 초 시민단체, 이동통신 3사, 전문가 등이 참여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 협의회’를 만들고 개선 방향을 논의해왔다. 그 결과 이동통신사의 공시지원금 유지 기간을 줄이고, 유통점의 추가지원금 지급 범위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염수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추가지원금의 법정 한도를 공시지원금의 15%로 상향해 유통점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공시지원금 유지 기간을 3∼4일로 줄여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동통신사는 그러나 협의체가 제시한 단통법 규제 완화안에 대해 “이동통신사 간 마케팅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부분 반대 의견을 냈다. 정부는 협의체의 논의 내용을 참고해 단통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개정에 그쳐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8일 논평을 내고 “단통법을 손질하는 정도에선 이동통신사와 제조사만 비용을 아낄 뿐 소비자에겐 아무런 혜택도 돌아가지 않는다”며 “분리공시제를 도입해 이동통신사와 제조사가 지급하는 마케팅 비용을 투명하게 밝히고. 비공식적인 마케팅비 출혈 경쟁을 줄여 그만큼 가계통신비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