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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남의 불 실컷 쬐었으니 이젠 내 불 직접 지펴볼까

중앙일보 2020.07.17 09:00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64)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출현해 유럽 및 아시아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시대는 다르지만 우연히 커피도 그랬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는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유럽 및 아시아 제국으로 전파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건 언제일까. 조선시대 고종황제 때다. 고종은 1895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 때 처음 커피를 접했다. 초기에는 귀족과 상류층만 마실 수 있는 기호품이었다. 얼마 후 독일인 손탁이 중구 정동에 다방을 차렸고 해방 전후에는 명동과 충무로, 종로 등에 들어서며 대중도 즐길 수 있는 음료가 되었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는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유럽 및 아시아 제국으로 전파되었다. [사진 pixabay]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는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유럽 및 아시아 제국으로 전파되었다. [사진 pixabay]

1950년대 후반 우리 집에서도 명동에 다방을 운영한 적이 있다. 국립극장과 가까운 곳에 있어선지 문인과 예술인들이 주로 찾아 왔다. 마땅한 화랑이 없을 때라 화가들이 다방을 전시장으로도 활용했다. 당시에는 산업이 발달하지 못해 마땅히 직업이 없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들 역시 다방을 아지트로 이용했다.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에 “김 사장님, 전화 왔어요”라고 호칭하면 몇 사람이 동시에 일어섰다는 일화도 있다.
 
커피는 거의 수입품이거나 미군 PX의 인스턴트커피가 주류를 이루었다. 해방 전까지는 원두커피를 상용했는데 미군이 진주하고 PX를 통해 유출된 인스턴트커피가 시중에 나돌면서 커피하면 곧 인스턴트커피를 연상했다. 달러가 귀한 시절이라 커피를 수입하기 위해 외화가 유출되자 정부는 국내에 커피 공장을 세우도록 독려했다. 1970년 동서식품에서 미국 제너럴푸드와 기술제휴로 처음으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며 커피가 우리 사회에 널리 보급됐다.
 
1970년대는 DJ가 있는 음악다방이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나도 학비를 벌기 위해 무교동에 있는 다방에서 DJ로 활동했던 기억이 있다. 집에 변변한 음향시설이 없던 젊은이들은 다방에 와서 커피를 즐기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고객이 메모에 신청곡을 적어 뮤직 박스 안에 있는 DJ에게 주면 DJ는 곡의 설명과 신청한 사람의 사연을 소개하며 음악을 틀어 주었다. 
유럽 국가에서 커피하면 우리가 원두커피라고 부르는 커피를 의미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커피하면 인스턴트 커피로 인식하고 원래의 커피는 원두커피라고 불렀다.[사진 pexels]

유럽 국가에서 커피하면 우리가 원두커피라고 부르는 커피를 의미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커피하면 인스턴트 커피로 인식하고 원래의 커피는 원두커피라고 불렀다.[사진 pexels]

커피의 최대 소비국인 유럽 국가에서 커피하면 우리가 원두커피라고 부르는 커피를 의미했고 인스턴트커피는 거의 소비되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커피하면 인스턴트커피로 인식하고 원래의 커피는 원두커피라고 불렀다. 커피도 음식인지라 갓 볶은 콩을 갈아 음용해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 볶은 지 오래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생선 대신 통조림을 먹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우리가 믹스커피라고 부르는 인스턴트커피의 애용으로 1990년만 해도 원두커피의 소비는 10%가 되지 않았다.
 
1998년 신세계그룹과 손잡은 스타벅스의 진출로 우리나라 커피문화는 다시 한번 변화하게 된다. 원두커피의 시장이 열린 것이다. 은퇴 후 고전음악카페를 꿈꾸고 있을 때라 당연히 원두커피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와 우리나라 커피 시장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질 때 본인이 번역한 책이라며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란 책을 내게 선물했다. 나는 그 책을 단숨에 읽었다. 책에는 커피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작은 회사를 인수해 대기업으로 키운 한 남자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소개돼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큰일은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한다. 하워드 슐츠가 1975년 대학을 졸업한 후 스위스 주방기구 수입회사의 미국 지사에 근무할 때다. 어느 날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란 작은 커피회사가 커피 추출기를 다량으로 구입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서부로 날아갔다. 그곳은 커피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이웃 몇 사람이 만든 조그만 회사였다. 그는 곧 향기로운 커피 향에 매료된다. 그것은 가공되지 않은 커피의 진한 향이었다.
 
슐츠는 커피사업이야말로 평생 도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고액 연봉을 주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작은 커피회사에 합류한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벤처기업에 뛰어든 것이다. 그 후 스타벅스의 창업자들이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하자 하워드 슐츠는 벤처캐피탈의 지원을 받아 이들의 지분을 전부 사들이고 1987년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커피 사업을 시작한다.
슐츠는 스타벅스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휴식도 즐기는 문화의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연합뉴스]

슐츠는 스타벅스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휴식도 즐기는 문화의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연합뉴스]

그는 스타벅스가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친구나 가족끼리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휴식도 즐기는 문화의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미국에 없던 아주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든 것이다. 슐츠의 창업 스토리에 공감하는 것은 나 역시 은퇴 후 고전음악카페를 꿈꾸며 그와 흡사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고전음악카페 역시 음악만 듣고 헤어지는 곳이 아니라 연주자와 손님이 커피를 마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의 장소다.

 
중년 남자의 창업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어 커피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살아가다 보면 슐츠가 인생의 궤도를 수정했던 것과 같은 기회가 여러 사람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때 마주친 일이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든가 또는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도 인생을 사는 한 방법이다. 지금까지 남이 피워 놓은 불을 쬐고 살았다면 자신이 직접 불을 지펴 보는 거다. 비록 크게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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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필진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죽음.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의외로 돈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 오르거나 하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생을 살며 ‘조금만 더’ 하며 미뤘던 작은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은퇴 후 인생 2막에서 여가, 봉사 등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 죽음도 편하다고 한다. 노후준비엔 죽음에 대비하는 과정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은퇴전문가가 죽음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과 알찬 은퇴 삶을 사는 노하우를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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