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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 가이드 된 소리꾼 고영열 “나라별 역사까지 공부”

중앙일보 2020.07.16 15:47
JTBC ‘팬텀싱어3’에서 K크로스오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국악인 고영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JTBC ‘팬텀싱어3’에서 K크로스오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국악인 고영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코로나19 시대에 음악으로 세계여행하는 기분이다.”
크로스오버 4중창단을 만드는 JTBC 예능 ‘팬텀싱어3’에서 소리꾼 고영열(27)이 새로운 무대를 선보일 때마다 등장한 반응이다. 라이벌 미션의 쿠바 음악(‘Tú eresla música que tengo que cantar’)을 시작으로 듀엣으로 그리스(‘Ti páthos’), 쿼텟의 스페인(‘Te Quiero, Te Quiero’)을 거쳐 결승에서 한국(‘흥타령’)과 이스라엘(‘Millim Yaffot Me'Eleh’)까지 그동안 ‘팬텀싱어’에서 볼 수 없었던 월드뮤직의 향연을 펼친 덕분이다. 비록 최종 준우승에 그쳤지만 ‘미친 음악으로 이끄는 안내자’를 뜻하는 팀명 라비던스(RabidAnce)에 가장 적합한 참가자였다.

JTBC ‘팬텀싱어3’ 라비던스 최종 준우승
월드뮤직 섭렵 K크로스오버 기대감 높여
“왜 한국인은 국악을 안 좋아할까 고민,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기운 불어넣고파”

 
15일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고영열은 “우승에 대한 욕심은 있었지만 집착은 없었다. 국악인으로서 결승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밝혔다. 초등학교 때 수영선수로 활동하다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어머니의 권유로 판소리를 시작한 그는 “한국인이 한국 음악을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국악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취미로 판소리를 시작한 어머니 역시 방과후학교 교사로 1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라비던스 우승 욕심났지만 집착 안해”

‘팬텀싱어3’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라비던스. 왼쪽부터 황건하, 존 노, 고영열, 김바울. [사진 JTBC]

‘팬텀싱어3’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라비던스. 왼쪽부터 황건하, 존 노, 고영열, 김바울. [사진 JTBC]

“다른 나라는 온 국민이 민속 음악을 즐기는 곳도 많은데 왜 국악은 늘 재미없고 어렵게 여겨질까 고민을 많이 했죠. 일부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제 친구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역사·지리·사상까지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국악은 아직 그에 맞는 변화를 모색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악이 단선율이라 너무 단조로운가 싶어서 작사·작곡을 공부해 화성을 쌓기도 하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장르와 협업도 많이 하게 됐죠.”
 
한양대 국악과 재학 시절 재즈 기타리스트 서호연과 만나면서 장르 간 경계를 허무는 작업은 더욱 본격화됐다. 월드뮤직 오케스트라를 표방하는 이스턴모스트라는 팀을 꾸려 2016년 1집 ‘온 보야지(On Voyage)’를 발매했다. “처음엔 둘이 시작했는데 다음엔 네 명, 그다음엔 열 명, 스무 명 계속 늘어나더라고요. 클래식·재즈·국악 등 각자 하고 있는 음악을 장점을 살리되 새로운 조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던 거죠.” 이듬해부터 듀오 카운드업 활동을 병행한 고영열은 자작곡으로 채운 솔로 1집 ‘상사곡 | 님을 그리는 노래’(2018)를 발표했다. 김준수·유태평양과 함께 ‘국악계의 아이돌’로 불리며 KBS2 ‘불후의 명곡’에 함께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 왔다.
 

“국악도 월드뮤직에 포함…정서 비슷해”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월드뮤직 오케스트라 이스턴모스트. [사진 이스턴모스트 페이스북]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월드뮤직 오케스트라 이스턴모스트. [사진 이스턴모스트 페이스북]

재즈 기타리스트 서호연과 소리꾼 고영열로 구성된 듀오 카운드업. [사진 헬로아티스트]

재즈 기타리스트 서호연과 소리꾼 고영열로 구성된 듀오 카운드업. [사진 헬로아티스트]

이 같은 경험은 이번 경연을 치르는 동안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시즌 1, 2에서 이탈리아 칸초네가 많이 나왔으니 좀 더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첫 라이벌 미션부터 월드뮤직을 뽑을 줄은 몰랐어요. 월드뮤직의 사전적 정의가 영미권 팝송을 제외한 모든 음악이기 때문에 국악도 포함되거든요. 브라질 전통음악인 파두 같은 경우도 한 맺힌 것 같은 선율이 국악이랑 비슷하기도 하고요. 재즈 스캣처럼 국악에도 시나위가 있거든요. 국악도 어디에나 잘 어울릴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방대한 월드뮤직의 세계에서 선곡은 쉽지 않았다. “영국 가수 중 제이콥 콜리어 음악을 좋아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월드뮤직 장르더라고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몸을 맡기고 헤엄쳐 다녔죠.” 곡을 정하고 나면 그 나라의 풍경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며 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음악에 담긴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원곡에 내 색깔을 녹여낼 수 있을까부터 시작하는데 황건하는 그 곡을 부른 다양한 가수의 레퍼런스를 모두 찾아보더라고요. 함께 무대를 준비하면서 팀원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꿈에서도 한복 입고 한옥 나와 사극 같아”

고영열은 ’판소리는 혼자서, 혹은 고수와 둘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자 다양한 팀 활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고영열은 ’판소리는 혼자서, 혹은 고수와 둘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자 다양한 팀 활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존 노·황건하·김바울 등 라비던스 멤버들은 모두 고영열과 함께 한 무대를 최고로 꼽았다. 그는 “아무래도 판소리라는 장르 특성상 하나씩 계산해서 부르기보다는 가진 감정을 모두 쏟아내서 그런 것 같다”며 겸연쩍어했다. “국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발성과 가사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거든요. 감미롭게 부르는 팝송과 다르게 소리를 지르니까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이별가’의 ‘도련님이 떠나는 게 달만큼 보이다가 별만큼 보이다가 숨어들듯 언덕을 넘어간다’는 표현은 너무 애달프지 않나요. 떠는 음과 꺾는 음 등 포인트만이라도 전달하려고 했죠.”
 
그는 꿈도 한옥에서 한복 입고 나오는 ‘사극톤’으로 꾼다고 했다. “구름 따라 흘러가는 나의 영혼은/ 꽃 향기를 쫓아가는 나비 한 마리”로 시작하는 ‘나비의 꿈’도 꿈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곡이다. “아직 뭔가를 이뤘다고 하기에는 약소하고 이제 한 발 더 내디딘 것 같아요. 모든 걸 열어놓고 음악뿐 아니라 미술 등 다른 예술 분야와도 같이 작업해 보고 싶어요. 심사위원분들과도 협업해보고 싶고. 제가 김이나 작사가님 책으로 작사를 배웠거든요. 이제 한발 내디뎠으니 열심히 걸어가 봐야죠. 국악의 새로운 시도에 앞장서고 싶어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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