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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썸이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는 건 이럴 때

중앙일보 2020.07.16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64)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끌릴 때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어떤 물질적인 것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자기 형편과 상황에 알맞은 것을 찾아 거기에 자기 마음을 담아내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다. [사진 pixabay]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끌릴 때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어떤 물질적인 것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자기 형편과 상황에 알맞은 것을 찾아 거기에 자기 마음을 담아내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다. [사진 pixabay]

첫사랑은 온음 쉼표
 
네 잎 클로버 사분음표 찾아
들로 산으로 헤맸어도
네게 걸어준 건
토끼풀 꽃반지에 팔찌 하나뿐
 
장미 리본 묶인 시집 속에서
클로버 찾아들고는
나갈 수 없는 페이지에 쪽문을 내고
산란하는 별의 무늬를 모셔보았지
 
작은 잎 하나에 담긴 신비론 음성도
응시하지 못하고
재현된 삽화로 만족하기엔 아쉬워
 
너와 나 두 무릎에
잔디 물들었다며
까르르 넘어가는 손사래
 
웃음소리와 몸짓이 물든 즉흥의 자리
 
볼만장만 살아온 내 미숙한 얼룩은
새로 태어나듯 스며들어
온음 쉼표 한 줄 그리게 되었다
 
해설
현대미술에서 최초로 추상화를 그렸다고 인정받는 바실리 칸딘스키는 그림에서 점·선·면을 통해 음악의 화성학을 표현하였다. 화폭에서 물질적 차원의 대상을 비물질적인 차원으로 이끌어냈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가 시각적 회화를 화성학의 차원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젊어서 얻은 강렬한 체험을 통해서였다.
 
그는 모스크바 왕립극장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관람 중에 공감각을 체험했다. 각 악기의 소리가 시간차로 자신에게 쏟아져 들어올 때 그의 눈앞에서 온갖 색채가 광란의 춤을 추듯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 속에서 내가 가진 모든 색을 보았다. 바로 눈앞에서 광폭한 선이 거의 광기에 가까운 드로잉을 이루었다.”
 
공감각(synesthesia)은 ‘어떤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하나의 감각이 동시에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고 사전에 적혀있다. 칸딘스키가 소리를 듣고 빛깔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체험이다. 가끔은 아라비아 숫자를 색깔로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구체적이고 특별한 공감각 체험이 아니라도 우리는 압도적인 경치나 새로운 체험, 특별한 건축물이나 미술품을 만났을 때 어떤 전율을 느낀다. [사진 pixabay]

구체적이고 특별한 공감각 체험이 아니라도 우리는 압도적인 경치나 새로운 체험, 특별한 건축물이나 미술품을 만났을 때 어떤 전율을 느낀다. [사진 pixabay]

 
보통사람도 이런 공감각 체험을 할 때가 있다. 에드바르 뭉크의 파스텔화 작품 ‘절규’를 감상하다가 그림 속에서 어떤 외침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구체적이고 특별한 공감각 체험이 아니라도 우리는 압도적인 경치나 새로운 체험, 특별한 건축물이나 미술품을 만났을 때 어떤 전율을 느낀다. 이때 느끼는 전율도 시각이 촉각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첫눈 내린 설악산 공룡능선을 종주했을 때,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 섰을 때 느꼈던 전율이 그런 체험일 것이다.
 
인간은 몸을 통해 모든 감각을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외부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친다. 영어로 말하면 ‘im-pression(인상)’에서 ‘ex-pression(표현)’이 된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교향악적 화법을 세 단계로 설명한다. 내면의 과정을 하나 더 추가했다. 첫 단계는 외부 자연에서 오는 감각을 즉각적으로 기록한 ‘인상(impression)’이다. 두 번째는 내면의 변화체험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즉흥(improvisation)’ 단계이다. 세 번째는 이 안팎의 인상을 치밀한 실험과 반복을 통해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표현하여 완성하는 ‘구성(composition)’단계이다. 영어로 ‘composition’은 음악의 작곡, 문학의 창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를 짓는 작업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세계미술사를 살펴보면 미술가들은 외부 세계를 ‘재현’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그래서 각 민족과 시대는 각각 나름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통해 세계의 재현을 작품으로 승화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이 발명되면서 2차원 화폭에 3차원의 입체감을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도리어 현대 미술에 와서는 형태와 색깔의 재현이 아니라 내면의 느낌을 더 강조하는 ‘표현’에 힘쓰게 되었다. 그래서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추상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여러 유파가 연이어 등장하게 되었다. 재현에서 표현으로 무게 중심추가 이동한 셈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끌릴 때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어떤 물질적인 것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자기 형편과 상황에 알맞은 것을 찾아 거기에 자기 마음을 담아내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매번 성공하지는 못한다. 가끔은 어그러져 실망할 때가 생긴다. 그런데 묘한 점은 바로 그런 실수를 통해서 뜻밖의 것을 얻는 귀중한 체험을 한다는 데 있다.
 
네 잎 클로버는 웬만해서는 마주치기 어려워 꽃말이 행운이다. 서로 상대방을 위해 그런 행운을 찾던 순간, 그때의 기억은 평생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사진 pixabay]

네 잎 클로버는 웬만해서는 마주치기 어려워 꽃말이 행운이다. 서로 상대방을 위해 그런 행운을 찾던 순간, 그때의 기억은 평생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사진 pixabay]

 
요즘 젊은이들이 썸을 타다가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는 순간도 아마 그럴 것이다. 주머니 가벼운 처지에서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나무라기는커녕 웃음으로 넘겨주는 센스를 발견한다면 첫사랑의 촛불이 살포시 점화하지 않을까.
 
네 잎 클로버는 웬만해서는 마주치기 어렵다. 그래서 꽃말이 행운이다. 서로 상대방을 위해 잔디밭에 무릎을 꿇고 그런 행운을 찾아보다가 그만, 잘 차려입고 나온 원피스와 바지 무릎에 물이 들고 말았다. 한두 번 세탁해서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초록 물이 든 것이다. 남자는 얼마나 무안하고 걱정되며 창피했을까. 아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을 게다.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까르르 웃으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일까. 아마 그때의 기억은 평생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첫사랑은 꼭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에 매력이 있다. 하지만 대개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고, 또 뒤돌아보았을 때 미소 짓게 한다. 아마도 그것은 미숙했기에 신선했고, 순수하며 진심에서 나온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몸에 스며들어 평생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향기 짙은 그리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 여백을 주는 의미기억으로 남는다. 의미기억은 구체적 장소와 시간에 대한 정보가 사라져도 결코 잊히지 않는 내용기억을 말한다. 그것은 마치 산수화나 서예작품에서 화선지 여백에 먹이 번져나간 자국을 음미하는 정취와 닮았다. 그런 쉼표를 통해 긴장되고 바쁜 삶에서 활력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순수했던 자신의 인간적 면모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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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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