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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 어기면 '탕탕탕'…콜롬비아 무장단체의 살벌한 코로나 방역

중앙일보 2020.07.16 06:49
지난 2월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경찰이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월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경찰이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로는 모두 막혔다. 식료품점 개점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 2시 이후 거리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숨을 거둔다.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남아메리카 콜롬비아의 무장단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주민들에게 시행하고 있는 방역지침이다. 반군·마약카르텔 등 무장단체들은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자신들의 방역 지침을 배포해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주민들의 살해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15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콜롬비아 32개 주 가운데 11개 주에서 무장단체들이 주민들에게 코로나19 자체 방역지침을 준수하도록 압박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콜롬비아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정부도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 3월부터 국민에게 격리령을 내리는 등 엄격한 조치를 시행했다. 
 
지난 3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콜롬비아 정부가 예방적 격리를 의무화 하자 메델린의 노숙자들의 식료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3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콜롬비아 정부가 예방적 격리를 의무화 하자 메델린의 노숙자들의 식료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 AFP=연합뉴스

 
하지만 무장단체의 '주먹'은 정부의 '법'보다 강했다. 이 단체들은 자신이 관리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스스로 공권력 행세를 하며 야간 통행금지령과 봉쇄, 이동 제한, 상점 영업시간 제한 등의 조치를 내렸다. 반군 민족해방군(ELN)은 지난 4월 북부 볼리바르 주민들에게 '식료품가게·빵집·약국 직원만 일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은 집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다른 단체는 외부인의 진입을 막았다. 무장단체들은 주민에게 SNS 메신저로 지침을 전파하고, 순찰을 하며 준수 여부를 점검했다. HRW는 "통금시간에도 필수 외출을 허용한 정부와 달리, 일부 무장단체는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갈 수도 없게 제한했다"고 밝혔다.
 
지침을 어긴 사람에겐 '조직의 쓴맛'을 보여줬다. 무장단체의 통행금지 원칙 등 방역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콜롬비아 3개 주에서 8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다고 HRW는 밝혔다. ELN은 "또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지침 위반자들을 어쩔 수 없이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엔 푸투마요 지역 대표가 정부에 무장단체의 방역지침을 고발하는 서한을 보냈다가 살해되기도 했다. 이밖에 방역지침 위반한 10여명이 무장단체의 공격으로 다쳤다. 이동제한을 어긴 오토바이가 불태워졌다.
 
'서슬 퍼런' 무장단체의 위협 때문에 콜롬비아 주민들은 생계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HRW는 전했다. 필수적인 외출이나 돈벌이까지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구도시 투마코에선 무장단체들이 주민이 물고기 잡는 일을 막고, 오후 5시 이후엔 외출하지 못하게 했다. 이 지역 주민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밖에 나가도 음식 파는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가 15일(현지시간) 발표한 '콜롬비아 무장단체의 잔혹한 코로나19 조치' 보고서. HRW홈페이지 캡처

휴먼라이츠워치(HRW)가 15일(현지시간) 발표한 '콜롬비아 무장단체의 잔혹한 코로나19 조치' 보고서. HRW홈페이지 캡처

 
호세 미겔 비방코 HRW 미주 국장은 "무장단체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부과하는 가혹한 '처벌'로 빈곤한 지역 주민들이 공격받고 있다.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며 "주민의 안전 보장과 생필품 확보를 위한 콜롬비아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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