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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신고 학생과 야구할거냐” 피해학생 앞에서 물은 감독

중앙일보 2020.07.16 05:00
한 중학교 야구감독이 따돌림 등 학교폭력을 신고한 야구부 학생에게 공개적으로 2차 피해를 보게 한 사실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감독은 피해 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야구부원들을 향해 "(학교폭력을) 신고한 학생과 야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광주서 학교폭력 공개조사…인권위, "2차 피해"
피해 학생 "감독이 피해자를 가해자로 낙인찍어"
감독, 인권위 조사에서 "화해 유도" 주장하기도

학교폭력 공개조사한 야구부 감독

광주시교육청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시교육청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15일 광주광역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광주의 한 중학교 야구부 감독이 소속 학생 전원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학교폭력을 공개조사했다. 당시 이 중학교 야구부원 A군과 B군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갈등이 있었고 A군은 학교 측에 학교폭력 확인을 요청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 측은 관련 학생을 분리된 공간에서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감독은 야구부원 전원을 집합시킨 뒤 A군과 B군을 앞으로 불러세웠다. 감독은 학교폭력을 신고한 A군 앞에서 B군에게 고의로 부딪혔는지 물었다.
 
 감독은 또 야구부원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A군에게 "다른 학생들과 함께 야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어 A군을 지켜보던 다른 야구부원들에게는 "A군과 함께 야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다른 야구부원들은 A군을 향해 "함께 야구하기 싫다"고 했다. 피해 학생은 다른 야구부원들이 자신과 야구를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중학교 1학년부터 따돌림과 폭력"

 
 A군과 학부모는 "야구부 감독이 2년간 괴롭힘을 당해오던 피해 학생이란 사실을 몰랐을 수 없다"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낙인 찍은 셈"이라고 했다. A군은 2018년부터 시작된 따돌림과 학교폭력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A군 측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폭력에 시달렸고 화장실도 맘 편히 갈 수 없었다"며 "가해 학생들을 피해 칸막이가 있는 좌변기로 몸을 피하면 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A군은 교사가 보는 앞에서도 학교폭력이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A군 측은 "화장실에서 물을 맞고 3교시 수업에 들어갔는데 가해 학생이 교실에서 또다시 물을 부었다"며 "선생님은 신경도 안 쓰시는 것 같았고 물에 젖은 상태에서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1학년 때 A군을 괴롭힌 학생 2명이 전학을 갔지만, 2학년이 된 뒤에는 또 다른 학생들이 부모 욕을 하며 괴롭혔다. A군 학부모는 "훈련 도중에 야구공이 날아드는 일까지 발생해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증거가 없으니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감독이 따돌림 조장·인권침해"

 
 야구부 감독은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조사한 것"이라며 "함께 운동할 수 있겠냐고 물은 것은 화해를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감독이 A군에 대한 2차 가해를 저지른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A군과 학부모는 공개조사까지 한 학교 측의 부당함을 광주시교육청에도 알렸지만, "조사과정에서 특이사항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A군과 학부모는 "감독이 학교폭력을 신고한 학생을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되레 따돌림을 조장했고, 피해 학생이 문제아나 다름없으니 야구를 그만두고 알아서 나가라는 식으로 압박했다"며 "광주시교육청도 제대로 진상을 조사하지 않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광주시교육청은 "특이사항이 없었다는 것은 학교폭력 여부를 놓고 A군과 B군의 주장이 달랐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있었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며 "공개조사는 잘못이란 점을 학교 측에 알렸고 학부모에게는 인권위 결과에 따라 징계 등 후속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었다"고 설명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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