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박원순 이후, 5가지 책임적 과제

중앙일보 2020.07.16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고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4년여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는 A씨의 절규다. 이것은 A씨만이 아니라 곳곳에 있는 피해자들의 절규이며, 우리를 향한 엄중한 질문이다.
 

A씨의 절규는 우리를 향한 질문
개인 문제만 아닌 모두의 문제로
진상규명과 구조적 문제제기 필요
모든 단체 성평등교육 제도화해야

2019년 5월 30일, 영국 잡지 〈스탠드포인트〉에 마틴 루터 킹에 관한 충격적인 글이 실렸다. 저자 데이비드 개로우 (D. Garrow)는 킹의 전기를 써서 1987년 폴리쳐 상을 받은 역사학자다. 인권 운동가·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이 호텔 방에서 동료인 침례교 목사가 교인을 강간하는 것을 다른 남성들과 보며 웃고 즐겼다는 것, 그리고 3명과의 지속적인 혼외관계를 포함해서 수십 명의 여성과 성적 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이다.  
 
FBI는 1963년 11월부터 킹을 계속 감시하고 도청하면서 그 행적을 기록한 문서와 도청 테이프를 보관했다. FBI 자료들은 국가 기록보관소에 있고, 2027년 1월 31일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개로우의 글은 특정한 경로로 유출된 FBI문서의 일부에 근거해 있다. 이 글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미투 운동의 씨앗을 뿌린 타나라 버크(T. Burke)는 2020년 1월 강연에서 자신이 전개한 운동의 모델은 바로 ‘킹 박사’라는 입장을 강조한다. 킹의 이러한 행적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현재 알 수 없지만, 개로우의 글은 ‘박원순-사건’과 함께 한 인간이 지닌 복합적 결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한다.
 
‘박원순 이후’ 지지자든 반대자든 해서는 안 되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A씨를 ‘정치적 도구화’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박원순’이라는 한 개인의 전적 ‘이상화’ 또는 ‘악마화’하는 양극적 프레임 속으로 ‘박원순 이후’를 고착시키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일은 A씨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를 마주하며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사회로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과제들을 모색하는 일이다.
 
첫째, 성추행 사건에 대하여 진상규명과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서울시청만이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단체와 집단에서 벌어지는 성비위 사실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공적으로 나와야 한다.
 
둘째, 이 사건을 ‘모두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권력의 위계 구조에 의한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적인 것으로만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개인에게 일어난 일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과 연관되는 복합적인 사회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스트 운동의 모토가 중요한 이유이다.
 
셋째, 성폭력은 물론 다층적 혐오에 저항하는 운동에 연대해야 한다. 미투 운동을 시작한 버크에 따르면, 미투 운동이 지닌 핵심적인 요소가 있다. 우선은 피해자가 ‘피해자’ 위치성으로부터 벗어나, ‘변화의 주체자’로 전이하기 위한 두 가지 선언, 즉,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다’이다. 그 다음에는 ‘당신과 함께 한다(with-you)’는 타자들의 연대다. 또한 연대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넷째, 각자의 ‘인식론적 사각지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한 곳에서의 불의는 모든 곳에서의 정의를 위협한다”며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계를 지향하는 “나는 꿈이 있다”의 ‘킹 박사’, 그 역시 인식의 사각지대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대상화하는 여성 혐오적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의 사각지대를 지닌 이들은 도처에 있다. 여비서, 여학생, 여신도, 여직원, 여종업원, 여목사, 여선생, 여기자, 여검사, 여교수, 여류작가 등 ‘여(女)’라는 생물학적 표지를 지닌 사람들이 지금도 권력 구조의 상하를 막론하여 도처에서 다양한 얼굴을 한 성폭력에 노출되는 이유이다.
 
다섯째, 지속적인 성평등 교육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개인의 생물학적 성에 상관없이, 무엇이 차별과 폭력인가를  자동적으로 알 수는 없다. 모든 기관들에서 성평등·성적 권력남용 등 전반적인 성인지 교육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미투 운동의 씨앗을 뿌린 버크는 2018년 듀크 대학교에서의 강연에서, 미투 운동이 여성-남성간의 대립구도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미투 운동은 사회의 전체적 변화를 도모하는 ‘모두의 운동’이기에 여성과 남성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미투 운동의 토대는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 인간에 대한 사랑이 되어야 한다. 미투 운동이 ‘인간에 대한 사랑’에 근거해 있을 때만, “우리는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이 결국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A씨는 절규한다. 자신도 강간의 피해자였던 버크가 이 물음을 듣는다면, 그가 한 강연에서 말한 것처럼 다음과 같이 응답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 것도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 ‘피해자(victim)’로부터, ‘생존자(survivor)’로, 그리고 ‘성공자(thriver)’로 당신의 삶을 당당하게 꽃피우며 살아가십시오.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가 사라지기 위해, 우리는 이러한 책임적 과제를 따로 그리고 함께 수행해야 할 것이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