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아직도 ‘피해호소 직원’이라는 서울시 조사 믿을 수 있나

중앙일보 2020.07.16 00:04 종합 30면 지면보기
서울시가 어제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민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최고 권력자의 성추행이 4년 넘게 지속되는 동안 피해자의 호소가 묵살되는 등 내부 성폭력 방지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대책 마련은 필요하다. 하지만 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 전체를 서울시 자체 조사로 갈음하려는 의도는 적절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민관 합동 구성해도 공정·중립성 한계
자체 조사와 별개로 엄정한 수사가 필요

서울시가 객관적으로 조사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서울시는 어제 입장문에서도 피해자를 ‘피해호소 직원’이라고 표현했다. 여전히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태도는 조사 의지에 대한 우려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특히 박 전 시장의 유고로 권한대행을 맡은 서정협 행정1부시장은 박 전 시장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임기가 성추행이 일어나던 시기와 일부 겹치는 등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 피해자의 고통 호소와 부서 이동 요청이 묵살되는 과정에 전·현직 비서실과 정무라인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제 몸에 칼을 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서울시는 공정한 조사를 위해 여성·인권·법률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박 전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 직후 보여준 일부 여성·인권단체의 이중적 행태는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기에 앞서 박 전 시장에 대한 추모와 업적 되새기기를 강요했다. 스스로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나 직장 내 성폭력 문제의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조차 입을 닫았다. 단순히 서울시 밖에 있는 인사라고 해서 중립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을까?
 
조사단에 강제조사권이 없다는 한계도 있다. 서울시 황인식 대변인은 “외부 전문가들이 조사에 관한 경험·지식·방법을 많이 가진 분들이라 극복 가능하다”고 했지만, 당사자들이 진술을 거부할 경우에 대해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설령 진술하더라도 사실 여부를 따지려면 휴대전화와 통화 내역, 컴퓨터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조사단으로서는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서울시 자체 조사는 진행하더라도 이와 별도로 수사기관의 수사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수사기관은 진상 파악을 조사단에 미루고, 조사단은 권한이 없어 못 밝히겠다는 식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특히 박 전 시장에게 고소 사실이 유출된 것은 중대한 범법 행위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와 서울시, 경찰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경찰이 스스로 피의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검찰이 직접 나서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 봐야 한다. 또 서울시 전·현직 직원들의 은폐, 직무유기 등 혐의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