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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고삐 풀린 돈, 머니게임 몰려갔다

중앙일보 2020.07.16 00:03 경제 4면 지면보기
생산·투자·소비 등 실물경기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 시중에는 돈이 넘쳐난다. 고삐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우고 있다.
 

5월 한달새 사상최대 35조 증가
경제 살리려 3차 추경까지 했지만
생산·투자·소비에 가야 할 돈
단기자금돼 주식·부동산 시장 과열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5월 중 통화 및 유동성’ 통계에 따르면 5월 광의 통화량(M2)은 3053조9000억원으로 전달보다 35조4000억원(1.2%) 늘었다. 한 달 전과 비교한 증가액은 1986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다. 4월 기록(34조원)을 한 달 만에 갈아치웠다. 1년 전과 비교하면 9.9% 증가해 4월(9.1%)보다 증가세가 확대됐다. 이는 2009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너무 많이 풀린 통화량

너무 많이 풀린 통화량

M2는 현금이나 쉽게 현금화가 가능한 단기자금을 통틀어 유동성을 가리킬 때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상품별로는 요구불예금(15조7000억원), 머니마켓펀드(MMF·10조9000억원),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10조4000억원) 등에서 많이 늘었다.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은 7조9000억원 줄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가계가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고 대출을 늘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은 관계자는 “금리 하락 등의 영향으로 시중 유동성이 정기 예·적금에서 빠져 요구불예금·MMF 같은 단기 자금으로 옮겨간 것 같다”며 “은행에서 받은 대출은 예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M2로 잡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유동성 증가는 한은과 정부의 합작품이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0.5%)으로 낮췄다. 정부는 3차까지 총 60조원에 가까운 추가경정예산을 풀었다. 각종 대출 지원 정책을 편 것도 한 요인이다. 돈을 푼 것은 경기 부양을 위해서다. 돈이 기업과 가계로 흘러가 생산·투자를 북돋고, 고용을 늘리며, 적극적인 소비를 이끌어 내는 식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다.
 
문제는 넘치는 유동성이 계획과 달리 부동산과 주식시장 등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잇단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정부가 7·10 대책을 추가로 내놓고, SK바이오팜 공모에 31조원의 자금이 몰린 배경이다. 위기 극복용으로 풀린 돈이 생산·투자·소비 등 생산적인 부문보다는 비생산적인 ‘머니게임’에 쓰이고 있다는 얘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물 경기가 안 좋으니 돈을 풀어야 하는데, 이게 실물 경기로 흘러가지 않으니 문제”라며 “개인이 소비를 꺼리고, 기업이 투자를 미뤄 돈이 돌고 있지 않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돈맥경화’ 현상은  화폐유통속도에서도 나타난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M2로 나눈 수치로 통화 1단위가 상품·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몇 번이나 쓰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2012년까지 0.8 수준을 유지하다 2016년 0.75 수준으로 하락한 후 올해는 0.64까지 떨어졌다. 저금리·저성장의 고착화로 하향추세를 이어가다 최근 들어 둔화하는 정도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자금들이 계속 부동산에 몰리다 보니 초강력 부동산 규제책에도 집값은 요지부동”이라며 “민간의 자율성을 높이고, 규제를 풀어 유동성을 생산적인 투자로 유도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손해용 경제에디터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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