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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럼스 “전우여 안녕히 가시라”…당·청, 안장식 안 왔다

중앙일보 2020.07.16 00:02 종합 6면 지면보기
15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오른쪽)와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참석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15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오른쪽)와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참석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고(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혔다. 고인의 수의는 70년 전 6·25전쟁의 최전선에서 입었던 것과 비슷한 차림의 전투복이었다. 고인의 관에는 경북 칠곡 다부동, 경기도 문산 파평산 등 그가 싸웠던 격전지 8곳의 흙이 뿌려졌다. 생전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패전”이라고 했던 6·25전쟁의 영웅은 이날 유족과 한·미 군 장성, 장병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전현충원에서 영면했다.
 

백선엽 장군 대전현충원에서 영면
청와대·여당 인사, 영결식만 참석
관 위에 6·25 격전지 8곳 흙 뿌려져
광화문 분향소 2만5000명 조문
문 대통령 추모 메시지는 안 나와

고인을 보내는 이날 오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영결식이 열린 데 이어 5시간 후 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으로 이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90여 명만 출입이 허용된 아산병원 영결식장엔 정경두 국방부 장관, 박한기 합참의장,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역대 참모총장 등 전·현직 군 인사와 정치권 인사들이 자리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 등에는 2만5000명가량의 시민이 조문했다.
 
“국가장으로 모시지 못해 안타깝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추도사에서 “백 장군은 지상 전투의 가장 절망적이며 가장 암울한 순간에 유엔군 전력과 어깨를 나란히해 한국군을 이끌었다”며 “백 장군의 삶을 조용히 기억하고 되돌아보자”고 말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전우여, 안녕히 가시라(Farewell, friend)”고 작별을 고했다.  
 
함께 추도사에 나선 송영근 예비역 중장은 “한미연합사령부에 근무할 때 고인의 저서가 미군 장병 필독서로 활용되고 미군들이 ‘진정한 영웅’이라며 고인에게 인사 드리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미군은 이렇게 백 장군을 수호하는데 정작 우리는 살아 있는 영웅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나 회한이 컸다”고 했다. “국가장으로 동작동(서울현충원)에 모시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도 말했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도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버웰 벨 전 사령관은 “백 장군은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과 같은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했고, 빈센트 브룩스 전 사령관은 “백 장군의 한·미 동맹에 대한 영향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장식에서 고인의 부인 노인숙 여사(94·사진 왼쪽)가 부축을 받은 채 6·25전쟁 격전지의 흙을 관 위로 뿌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장식에서 고인의 부인 노인숙 여사(94·사진 왼쪽)가 부축을 받은 채 6·25전쟁 격전지의 흙을 관 위로 뿌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미 국무부는 14일(현지시간)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 명의로 백 장군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는 성명을 냈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한국 최초의 4성 장군으로 한국 전쟁 당시 자신의 조국을 향한 백 장군의 헌신은 미국과 한국이 오늘날까지 옹호하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라며 “외교관으로서 정치인으로서, 백 장군은 위대한 탁월함으로 그의 국가에 봉사했으며 한·미 동맹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영결식에 참석한 18명의 정치권 인사 대부분은 야권 인사들이었다. 미래통합당에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이종배 정책위의장, 김선동 사무총장, 성일종·김현아 비대위원, 재외동포위원장인 김석기 의원,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 배준영 대변인, 합참 차장 출신인 신원식 의원 등이 참석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당에선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홍철 의원, 국방위 간사인 황희 의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인 김병주 의원 정도가 자리를 지켰다. 청와대에선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대표로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화는 보냈으나 조문하거나 추모 메시지를 내지는 않았다.
 
40분간의 영결식 후 국군 부대기에 둘러싸인 차량은 고인의 영현을 모시고 대전현충원으로 출발했다. 영결식장 바깥에선 시민 200여 명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고인을 배웅했다. 고인의 운구 행렬이 대전현충원에 들어설 때는 고인의 국립묘지 안장을 놓고 찬반 단체들이 대치하기도 했다. 경찰은 8개 중대 420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대전현충원 입구 안장 찬반단체 대치 
 
대전현충원 안장식에는 서울 영결식장에 있었던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또 자리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지방 일정을 마친 뒤 합류했다. 해리스  대사는 이날 트위터에 “백 장군은 그의 조국과 한·미 동맹에 크게 봉사했다”고 올렸다.  
 
빗속에 진행된 안장식엔 장병·시민 등 1000여 명이 모였다. 장의위원장인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추도사에서 “눈 감는 순간까지도 백 장군은 국가와 국민의 발전을 기원했다”며 “무거운 짐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편하게 눈을 감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판규 전 육군참모총장은 추도사에서 “호국의 큰 별이 돼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안장식엔 정부 대표로 정경두 국방부 장관 대신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참석했다. 청와대와 여당 인사는 안장식에 불참했다. 반면에 야당에선 국회 국방위 소속의 통합당 하태경·신원식 의원이 참석해 헌화했다.
 
영면에 들어간 고인이 생전 중앙일보에 연재한 6·25전쟁 회고록을 마무리하며 했던 얘기는 다음이었다(중앙일보 2011년 3월 5일자 4,5면 인터뷰).
 
“나는 큰일을 한 게 없어요. (중략) 나는 다 누리지 않았습니까. 그들(전선의 장병들)은 장군도 아니었고, 남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일 계급장도 없었어요. 그들이 우리나라를 지킨 겁니다…. 나는 정말 그 부하들에게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감사합니다.”
 
서울·대전=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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