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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맥주 3에 위스키 1… ‘보일러 메이커’ 아세요?

중앙일보 2020.07.14 11: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76) 

폭탄주와의 첫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처음 출근하던 날, 함께 일할 동료들과 회식을 했다. 제일 나이가 많던 선배가 ‘올드파(Old Parr)’ 위스키를 꺼내더니 삐딱하게 세웠다. 잠깐의 쇼 타임이 끝나고, 빈 맥주잔의 절반을 올드파로 채우고 남은 절반은 맥주로 채웠다. 손바닥으로 맥주잔의 윗부분을 꽉 틀어막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탁자에 ‘쾅!’. 신입은 모두의 ‘원샷’이라는 주문에 폭탄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같은 레시피로 두 잔 더. 기억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내 방 침대 위였다.

 
첫 폭탄주의 추억을 가진 위스키, 올드파. [사진 안성도]

첫 폭탄주의 추억을 가진 위스키, 올드파. [사진 안성도]


폭탄주는 우리나라에서만 마시는 것 같지만, 외국에서도 즐기는 칵테일 중 하나다.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라고 부르는데, 발전용 보일러 건설업에 종사하던 한 미국인이 빨리 취하려고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재료는 맥주 120mL와 위스키 45mL. 잔에 맥주를 따른 후, 위스키가 담긴 숏글라스를 떨어뜨린다. 우리가 흔히 아는 폭탄주 제조법과 똑같다. 마시면 보일러가 가열되는 것처럼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어떤 위스키와 맥주를 쓰는지에 따라 보일러 메이커 맛은 완전히 달라진다. 페이스북 위스키 동호회 그룹 ‘위스키러브’에 자신만의 보일러 메이커 제조법이 있는지 물어봤다. ‘하이랜드파크와 임페리얼스타우트’, ‘아드벡에 기네스’, ‘조니워커 블루라벨에 모델로 다크’, ‘글렌드로낙에 카스’, ‘발베니 14년에 카스’ 등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임페리얼이나 스카치 블루 등 폭탄주 제조에 흔히 쓰는 위스키가 아니라, 풍미가 뛰어난 싱글몰트 위스키나 고급 블렌디드 위스키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이 꽤 많았다.
 
수많은 위스키의 종류만큼 보일러 메이커도 다양할 것이다. [사진김대영]

수많은 위스키의 종류만큼 보일러 메이커도 다양할 것이다. [사진김대영]

 
얼마 전 바에 가서 한창 신나게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데 바텐더가 보일러 메이커 한 잔을 서비스로 줬다. 그는 조니워커 더블 블랙에 홉하우스13이라는 아일랜드 맥주를 섞었다. 라거 스타일이지만 홉 향이 많이 나는 맥주라서 보일러 메이커에서도 홉 향이 많이 났다. 여기에 조니워커 더블 블랙의 스모키한 향이 더해져 그럴듯한 술이 됐다. 폭탄주라고 폄하할 수 없는 잘 만든 칵테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조니워커 더블블랙과 홉하우스13으로 만든 보일러 메이커. [사진 김대영]

조니워커 더블블랙과 홉하우스13으로 만든 보일러 메이커. [사진 김대영]


폭탄주도 알고 보면 꽤 맛있는 술이다. 마치 폭탄을 투하하듯 쉼 없이 마시지만 않으면 칵테일처럼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다. 위스키도 맥주도 보리에서 태어난 술이라 서로 잘 어울린다. 기왕이면 폭탄주도 맛있게 만들어 마시자. 취하기 위한 폭탄주가 아니라 술맛을 즐기기 위한 폭탄주. 10년 전 내가 경험했던 폭탄주 문화는 이제 사라졌으면 한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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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김대영 위스키 인플루언서 필진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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