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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빚만 보고 나쁜 빚 눈 감고…文, 이야기 않는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2020.07.14 00:27 종합 20면 지면보기

모르핀·스테로이드로 한국 경제 고질병 고칠까

칼럼니스트의 눈 메인

칼럼니스트의 눈 메인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붕괴할 위기다.  
 

[이철호 칼럼니스트의 눈]
노무현 “부동산 말고 꿀릴 게 없다”
부동산 정책 잘못했다는 참회록
문 대통령, 소득 줄고 성장률 추락
부동산은 치솟는데 지나친 자신감

1인당 GNI는 2018년 3만3434달러에서 2019년에 3만2047달러로 쪼그라든 데 이어 올해는 3만 달러 밑으로 주저앉을 분위기다. 국민소득을 좌우하는 성장률·환율·물가상승률 중 성장률과 환율이 맥을 못 추기 때문이다. 실질경제성장률은 2017년 3.2%→2018년 2.7%→2019년 2%로 3년 연속 곤두박질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1%로 전망했다. 성장판이 닫혀 버린 것이다. 여기에 환율까지 달러당 1220원대로 내려앉으면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붕괴된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얼치기 생체실험으로 소득도 없어지고 성장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처방은 딱 하나다. 현금 살포다. 이미 3차 추경에 이어 4차 추경까지 불사하며 재정 확대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르핀이나 스테로이드를 놓는 응급처방이나 다름없다.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중독되고 더 강한 모르핀과 더 많은 스테로이드를 처방해야 한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사람들이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금융시장의 반응도 시들해지고 있다. 무차별 현금 살포는 마약이나 매한가지다.
 
노무현 청와대는 2004년 이렇게 경고했다. “경제 지표의 자의적 인용과 해석은 경제에 대한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자기편에 유리한 지표만 인용하면서 정치적으로 달콤한 해석을 달고 있다. 청와대는 아예 “대통령께서 좋은 지표를 적극 발굴해 홍보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경제 홍보가 넘쳐나면서 “경제 지표를 정치적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다음의 3가지 통계만 짚어봐도 문 대통령은 불편한 진실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좋은 빚만 보이고 나쁜 빚에는 눈 감고 …
 
문 대통령이 “국가 채무비율을 40%로 유지하는 근거가 뭔가”라고 몰아붙인 이후 정부 부채의 천정이 뚫려 버렸다. 청와대 전 대변인은 “곳간에 있는 작물들을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린다”고 우겼다. ‘적극 재정’은 현 정부의 재정 철학이 돼 버렸다. 참모들은 맞춤형 논리 개발에 열심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실효이자비용(국채 금리-명목 성장률)이 하락하면 재정 여력이 증가하는데 금리와 물가상승률이 낮아진 만큼 중단기 재정 여력은 충분하다”며 “따라서 국가채무비율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이 요즘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국가부채비율 110%다. 우리는 3차 추경을 포함해도 43.5%다. 재정 건전성을 잊고 마음껏 돈을 더 써도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문별 부채 순위〈그림1〉

한국의 부문별 부채 순위〈그림1〉

하지만 OECD의 그 통계 옆에 또 하나의 부채 통계가 있다. 바로 OECD 회원국별 민간 부채 통계다. 한국의 민간신용(가계와 기업의 대출 및 채권)은 올 3월 말 기준 3866조원에 이르러 GDP 대비 201.1%를 기록했다. 주요 43개국 평균(156.1%·2019년 말 기준)보다 45%포인트나 높다. 한마디로 ‘빚 공화국’인 셈이다. 가계의 주택 담보대출이 많은 데다 빚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이 늘어난 탓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한국의 민간 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경보 수준을 ‘주의’로 끌어올렸다. 소득 대비 민간부채가 장기추세에 비춰보면 중국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림 1〉
 
문재인 정부가 국가 부채비율이 건전하다고 재정을 퍼붓는다면 민간부채 통계에서는 섬뜩한 미래를 읽어내야 한다. 어떻게 가계대출을 줄여 경제위기의 뇌관을 미리 제거할지 고민해야한다. 하지만 그럴 기미는 전혀 없다. 현 정부에 유리한 빚 통계만 이야기하고 골치 아픈 빚 통계에는 눈을 감고 있다.
  
임금 올려야 소득주도 성장?
 
‘경제 성장에 비해 임금 상승이 더디다’ ‘기업의 이익을 임금으로 제대로 배분하지 않는다’는 게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토대였다. 좌파 경제학자들은 생산성 증가율보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낮다면서 ‘임금 없는 성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해 63.8%로, 2000년 58.1%에서 추세적으로 개선되는 흐름을 나타냈다. 특히 지난해 노동소득분배율이 유난히 오른 것은 아이러니다. 임금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한데다 최저임금 지원금 등 사회보장부담금도 집중 살포된 반면 기업들의 실적은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평균임금 상승〈그림2〉

선진국의 평균임금 상승〈그림2〉

또 하나 눈을 돌려야 할 OECD 통계가 있다. 바로 2000년 이후 국가별 평균 임금 상승률이다. 〈그림 2〉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후유증으로 제자리걸음을 했고 미국과 영국도 15% 남짓 올랐을 뿐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평균 임금은 36% 올랐다. 여전히 좌파 학자들은 “2000년 이후 임금상승률이 낮아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저성장으로 인한 낮은 임금 증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OECD 통계에는 국가별 시간당 노동생산성 순위도 있다. 한국은 미국·독일·일본 등에 크게 뒤처진 28위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내년 최저임금을 25.4%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급으로는 올해(8590원)보다 훨씬 많은 1만770원에 해당한다.
  
OECD 최고의 아파트 공화국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다주택자에게 고통을 안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주택자는 웃었고 무주택자만 고통을 떠 안았다. “뉴욕 맨해튼보다 더 비싼 서울 강남 아파트”는 빈말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반포의 한강 조망이 가능한 80㎡ 아파트가 24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평당 1억208만원꼴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수리하이라인 아파트의 평당 가격 1억757만원에 버금갔다. 참고로 2018년의 1인당 소득은 미국이 6만2152달러, 한국은 3만2774달러다.
 
올해는 강남과 맨해튼의 판도가 아예 뒤집힐 조짐이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맨해튼의 부동산이 코로나 사태로 역대급 하락세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올 2분기에 거래된 맨해튼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해 2분기보다 17.7% 떨어진 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억 원이었다. 이는 올해 거래된 서울의 한강 이남 11개 구 아파트값 중위가격(11억 6345만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아파트의 중위 가격은 무려 16억3000만원으로 맨해튼을 압도한다.
 
OECD 주요 도시 PIR〈그림3〉

OECD 주요 도시 PIR〈그림3〉

몇 년 치 소득을 모아야 평균 가격 주택을 살 수 있을지를 따지는 PIR(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도 마찬가지다. 올해 서울의 PIR은 24년으로 런던(21.21년)과 파리(22.02년)를 제쳤다. 참고로 도쿄는 13.97년이고 뉴욕은 10.76년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는 OECD 도시 중 압도적 1위로 뛰어올랐다. 〈그림 3〉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동산 말고 꿀릴 게 없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부동산은 잘못했다는 참회록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저 평균 성장률, 사상 최고의 부동산 상승률을 앞두고도 전혀 꿀릴 게 없다는 눈치다. 문 대통령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선 “총체적으로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높아질수록 자꾸 공허해지는 느낌이다. 문 대통령이 절반 이상의 불편한 진실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넘치는 유동성이 더 위험하다
문재인 정권의 주적은 투기 세력이 아니라 넘치는 유동성이다. 최근 하루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을 파는 ‘레포(REPO) 펀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은행들의 지급 준비일이나 국채 만기가 몰리는 날마다 기술적 디폴트(부도)가 일상 다반사다. 코로나 사태로 당국이 무차별 자금을 풀었으나 우량기업에만 돈이 몰렸고, 이들이 뭉칫돈을 초단기로 운용되는 레포 펀드에 밀어 넣어 빚어진 현상이다.  일반 가계도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초저금리와 생활고로 인해 22조원의 예·적금을 깼다. 갈 곳 없는 이 돈이 단기 부동화하면서 은행의 현금성 요구불 예금이 작년 말 대비 15.6% 증가한 427조원에 달했다. 전체 시중 부동 자금은 1100조원을 넘는다.
 
토지 보상금도 뇌관이다. 전국에서 이달부터 내년 말까지 풀릴 토지보상금이 줄잡아 49조2125억원이다. 이 중 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이 절반을 넘는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2007년에도 혁신도시 등에 약 60조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려 수도권 부동산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이로 인해 서울 아파트값은 32% 급등했다. 이번에도 토지보상금이 언제 수도권 부동산을 자극할지 모른다.
 
“아무리 경제위기에 대응해 재정을 쏟아붓고 양적 완화를 하더라도 정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타깃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좁혀져야 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나 준 기축통화국인 유럽·일본이 한다고 한국도 현금을 무차별로 살포하면 부동산은 과열되고 환율이 급등해 언제 경제 위기를 부를지 모른다.” 최근 국제 경제 전문기관들의 공통된 경고다. 자칫 경제를 살리려다 부동산만 살리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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