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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돈 움직이는 '걸크러시' 라가르드, ‘그린’ 화두를 던지다

중앙일보 2020.07.13 17:30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AFP=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AFP=연합뉴스

 
“나도 할머니예요. 어여쁜 손주들이 커서 ‘할머니, 지구에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예요?’라고 묻는 일은 없어야죠.”  

 
유럽 경제를 관장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64)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 9일 게재된 인터뷰에서 기후변화 대처에 우선순위를 두고 통화 정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회사채 등 자산 매입에서 녹색 산업 분야에 힘을 싣겠다는 약속이다. FT는 “ECB 총재가 ‘그린’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 약속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움직일 수 있는 ECB 자금은 2조8000억 유로(약 3805조원)에 달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발 등의 불 끄기가 미래에 있을 손주의 질문보다 더 급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는 그린 여부를 따지지도 않는다.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ECB는 지난달까지 화석연료 부문 지원에 76억 파운드(약 11조5400억원)를 쏟아부었다. 그간 ECB가 매입한 회사채의 4분의 1규모다. 그래서 영국 가디언지는 라가르드의 발언을 '립서비스'라고 평가 절하한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애틀랜틱 카운슬 ‘세계시민상’을 시상하는 라가르드 총재. 김상선 기자

2017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애틀랜틱 카운슬 ‘세계시민상’을 시상하는 라가르드 총재. 김상선 기자

 
그러나 라가르드 총재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지난해 11월 여성 최초 ECB 수장으로 선출될 때도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정통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게 발목을 잡았다. 9월 실시된 비밀 투표에서 찬성 394표, 반대 206표, 기권 49표로 가결됐다. 기권표를 빼고도 투표자 셋 중 하나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후해졌다. FT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그의 정치적 전투력이 돋보였다”고 전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지난 6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 현안을 설명하는 모습. 남성 일색인 좌중을 휘어잡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지난 6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 현안을 설명하는 모습. 남성 일색인 좌중을 휘어잡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라가르드 총재의 '그린 카드'는 ECB가 운용하는 2조8000억 유로의 채권 매입 기금이다. 이 기금 운용을 운용할 때 기후변화 대처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FT는 이를 두고 “ECB는 세계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환경 문제를 위해 채권 매입 기금을 쓰게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EU 내 다른 여성 지도자의 협력도 그에겐 든든한 지원군이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EU 행정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등이 그와 보조를 맞춰왔다.  
 
라가르드 총재는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도 유명하다. '라가르드처럼 옷 입는 법'이 구글에 넘친다. [중앙포토]

라가르드 총재는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도 유명하다. '라가르드처럼 옷 입는 법'이 구글에 넘친다. [중앙포토]

 
코로나19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도 남다르다. 말 잔치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다. 경제가 3분기엔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V자’ 회복 주창자들도 있는 반면, 회복세가 더딘 ‘L자 회복’을 점치는 이들도 있다. 라가르드는 이에 대해 “알파벳 장난은 필요 없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는 FT에 “회복세는 제한적이고 불확실하며 파편적일 것이며, 우리는 그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라가르드 총재의 유대감은 깊다. 로이터=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라가르드 총재의 유대감은 깊다. 로이터=연합뉴스

 
라가르드는 미국 로펌에서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5~2007년 프랑스 상무부 장관, 2007년엔 농업부 장관, 2007~2011년까지 재무부 장관으로 활약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첫 여성 총재로 선출됐다. 남편은 없다. 대신 2006년부터 마르세이유에 기반을 둔 사업가 자비에 지오칸티와 동거 파트너로 교제해오고 있다. 프랑스는 비혼 동거 파트너도 법적으로 보호한다. 이혼한 남편과 사이에서 아들 둘을 뒀다. 화려하지만 어디서나 잘 어울리는 파워 패션 스타일링으로도 유명하다. 
 
유럽의 돈을 움직이는 라가르드 ECB 총재와 권력을 움직이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AP=연합뉴스

유럽의 돈을 움직이는 라가르드 ECB 총재와 권력을 움직이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AP=연합뉴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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