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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가 여자라서 그래"…박원순 의혹에 또 등장한 '펜스룰'

중앙일보 2020.07.13 15:43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는 이른바 ‘펜스룰’을 지지하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안희정과 박원순 의혹의 공통점은 여자 비서”라면서다.  
 

고 박원순 시장 의혹에 또 '펜스룰' 등장 

13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여성 비서는 앞으로 직장에서 쓰면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10일 박 시장이 성추행 의혹 속에 숨진 채 발견된 뒤 빚어진 풍경이다. 이날 온라인에서는 박 시장 관련해 “진짜 남자는 펜스룰이 정답” “비서는 남자 비서로 하자”는 의견이 속속 이어졌다.
 
펜스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하원의원 시절이던 2002년 인터뷰에서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미투(#MeToo) 운동이 확산하면서 직장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현상을 뜻하는 부정적인 말로 쓰일 때가 많다. 성폭력 무고에 대한 대비책이라며 미투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는 펜스룰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며 오히려 2차 피해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변호사협회 공보이사 장윤미 변호사는 “지근거리에서 일하는 여성과 무작정 거리를 두고 오인을 피하려고 하는 펜스룰은 그 자체로 차별”이라며 “펜스룰이 정답인 것처럼 권고하는 행태는 여성 전반에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펜스룰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며 “여성 차별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펜스룰이 피해 여성이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주저앉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 시장 조문을 거부한다고 밝혀 논란에 휩싸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이날 오전 YTN라디오와 인터뷰에서 “펜스룰 관련 언급은 피해 호소인의 입을 막는 행위”라고 말했다.
 

"제왕적 권력이 근본적 문제" 

안희정 전 충남지사(왼쪽), 오거돈 전 부산시장(가운데)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투 논란에 휩싸였다. 박 시장은 최근 자신의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뒤 실종·사망했다. [연합뉴스·뉴스1]

안희정 전 충남지사(왼쪽), 오거돈 전 부산시장(가운데)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투 논란에 휩싸였다. 박 시장은 최근 자신의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뒤 실종·사망했다. [연합뉴스·뉴스1]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연루된 성추문 의혹은 박 시장 외에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이들 사건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비서이거나 개인 집무실을 단독으로 드나든 직원이라는 것이다. 이때도 펜스룰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지자체장 등이 견제와 감시 없이 누리는 제왕적 권력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 측의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비서가 시장에 대해 절대적으로 거부나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전형적인 권력과 위력에 의한 피해”라고 밝혔다. 이 소장은 이번 사건을 ‘시장 위력에 의한 비서 성추행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처럼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근접한 위치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빈번하게 생기고 있다. 자신이 모시던 한 기업 임원을 강제추행 혐의로 지난해 고소한 20대 여비서 A씨는 “(가해자와는) 뚜렷한 상하관계에 놓여있는 채 근무했다”며 “업무상 대화를 나누는 등 겹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인사권자인 상사와 업무상 접촉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그가 저지르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강병수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직장에서 남자·여자를 가르고 편을 짓기보다는 저지르는 권력자가 제왕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자체장 등 권력자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이 내부에서 건전하게 이뤄지는 구조가 아니면 성추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들의 범행을 옆에서 목격해도 그 권력이 주변인의 입을 닫게 한다”며 “권력자 견제를 할 수 없는 막강한 구조를 탈피해서, 문제가 생기면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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