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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권력 앞에서 숨이 막힌다" 박원순 前비서 처음 입열었다

중앙일보 2020.07.13 15:15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사망 전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여비서 A씨 측이 13일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후 2시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는 A씨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박 시장의 성추행이 4년간 지속됐고, 안희정지사와 오거돈 시장의 미투가 발생한 상황서도 멈추지 않았다"고 밝혔다. 
 

"속옷 사진 보내고, 신체접촉 요구"

A씨 측과 여성단체는 박 시장 고소 사건을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으로 규정했다. 위력이란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적 힘을 뜻한다. 박 시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그의 비서였던 A씨를 성추행했다는 게 A씨 측 주장이다. 8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형법상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한 이후 A씨 측이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고소인 A씨는 "저도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유튜브 캡처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고소인 A씨는 "저도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유튜브 캡처

 
A씨는 변호인을 통해 구체적인 피해 사실도 밝혔다. 지원단체로 참여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박 시장) 본인의 속옷 차림의 사진 전송, 음란문자 발송 등 점점 가해 수위는 심각해졌다. 부서 변동이 이뤄지는 동안에도 개인적인 연락이 지속됐다”며 “업무시간뿐 아니라 퇴근 후에도 사생활을 언급하고 신체를 접촉하고, 사진을 전송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이어 “이 사건은 결코 진상규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박 시장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사죄의 뜻이기도 했다면 어떤 형태로라도 피해자에게 성폭력에 대해 사과와 책임을 진다는 뜻을 전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 직전 남긴 유서에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A씨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김재련 변호사는 “(박 시장이) 피해자의 무릎 멍을 보고 ‘호’ 해준다며 무릎에 입술을 접촉했다”며 “집무실 안에 있는 내실, 침실로 피해자를 불러 안아달라며 신체적으로 접촉하고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초대해 지속적으로 음란한 문자와 속옷 입은 사진을 전송하는 등 성적으로 괴롭혔다”고 말했다. A씨는 텔레그램 포렌식 결과물 등을 경찰에 제출한 상태다.
 

서울시 내부에 도움 요청했으나 '묵살'당해 

A씨는 고소 이전에도 박 시장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고백했다고 한다.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박 시장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는 발언이 이어져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고, 부서 변경을 요청했으나 시장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올해 5월 12일 피해자를 1차 상담했고, 26일 2차 상담을 통해 구체적 피해 내용을 상세히 들었다”고 했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리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고소' 전 비서 측 측 기자회견" 입장을 위해 취재진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리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고소' 전 비서 측 측 기자회견" 입장을 위해 취재진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A씨 측과 여성단체는 경찰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서울시도 진상을 밝히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피고소인이 부재한다고 사건의 실체가 없어지지 않는다. 경찰에서 조사를 통해 파악한 사건의 실체를 토대로 입장을 밝혀달라”며 “서울시는 제대로 된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박 시장 발인 기다려 회견…"최대한 예우"

박 시장의 장례절차가 끝난 당일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2차 피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입장을 밝혀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이미경 소장은 “장례가 마무리되기를 최대한 기다려 발인을 마치고 나서 기자들을 만났다”며 “최대한 예우했다”고 했다.
 
A씨가 직접 작성한 글을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대신 읽었다. A씨는 이 글을 통해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며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게 한다”고 전했다.
 
정진호·허정원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A씨 입장문 전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습니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의 보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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