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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핀란드판 백선엽' 72세 노장군…적군 장교출신이 '국부'로

중앙일보 2020.07.13 07:15
6·25전쟁에서 다부동 전투 등을 치르며 공산 세력의 침략에 맞섰던 백선엽(1920~2020) 장군이 지난 10일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공과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6·25전쟁 당시의 전공을 인정해 예우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본 강점기 때인 1940년 만주국(1931~45년 만주에 존재했던 일제 종속국가)의 중앙육군훈련처(펑톈(奉天)군관학교)에 들어가 만주군 장교가 되고 1943~45년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다는 점을 들어 친일인사로 보고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펑톈군관학교는 박정희 전 대통령(1917~79년, 재임 62~79년)이 1942년 3월 2기 예과를 수석 졸업하고 일본 육사 57기로 유학 간 만주군관학교(신징(新京) 군관학교)와는 다른 학교다.) 백 장군을 둘러싼 논란은 과거사에 초점을 맞추느냐, 신생 조국을 위한 헌신에 무게를 두느냐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백 장군 논란을 보면서 1939년 핀란드의 선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러군 30년 복무에 러일전쟁 참전 용사
핀란드 소수민족 스웨덴계 만네르하임
소련군 침공하자 그에게 총사령관 맡겨
핀란드어도 서툴렀지만 통역 대동 활약
저격수·스키부대·기관단총·화염병 도입
신출귀몰 지혜 모아 100만 대군 꺾어
전후 시장경제·민주주의·자유인권 지켜
소련도 경계하는 고슴도치 국가로 우뚝
과거사와 신생조국 헌신 군형 판단해야

겨울전쟁 당시 설상복으로 위장한 핀란드 기관총 분대. [위키피디아]

겨울전쟁 당시 설상복으로 위장한 핀란드 기관총 분대. [위키피디아]

 

핀란드, 소련 침공에 만네르하임 총사령관으로

핀란드는 영토욕에 가득 찬 소련의 침략을 당하자 소련의 전신인 러시아군에서 30년간 복무하고 장군까지 지낸 인물을 총사령관에 임명해 맞서게 했다. 핀란드는 1939년 11월 30일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국경을 맞댄 소련이 대대적인 침공을 받았다. 1940년 3월 13일까지 계속된 겨울전쟁이다. 1차 핀란드-소련 전쟁이라고도 한다. 신생 대한민국이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을 당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당시 소련은 핀란드와의 국경이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불과 32㎞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국경 인근 영토를 넘기라고 압박했다.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정권이 ‘정명가도(征明假道·명나라를 치러가니 길을 비켜라)’를 내세우며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과 비교될 정도로 황당한 개전 명분이다.  
사실은 소련은 이미 1939년 8월 23일 이념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적국이자 경쟁국인 나치독일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비밀협정을 맺었다. 나치가 폴란드 서부를 차지하면 소련은 폴란드 동부와 핀란드, 그리고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발트3국을 차지하는 걸로 밀약했다. 강대국들이 작은 나라를 힘으로 유린하고 영토를 나눠 먹기로 밀실에서 약속한, 침략의 검은 협정이다.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장기판의 졸로 여긴 상황이다.  
 
겨울전쟁을 이끈 핀란드의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1867~1951) 원수. 스웨덴계 소수민족으로 핀란드어에도 서툴었지만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1944~46년 대통령을 지냈으며 지금도 '핀란드의 국부'로 통한다.[중앙포토]

겨울전쟁을 이끈 핀란드의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1867~1951) 원수. 스웨덴계 소수민족으로 핀란드어에도 서툴었지만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1944~46년 대통령을 지냈으며 지금도 '핀란드의 국부'로 통한다.[중앙포토]

러 장군 출신 만네르하임, 신생조국에 헌신

하지만 핀란드는 작다고, 약하다고 해서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하지 않았다.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에서 갓 독립한 신생국가였다. 1808년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지배권이 넘어가 러시아 산하 핀란드 대공국으로 존재했던 핀란드는 1917년 3월 7일 2월혁명으로 러시아 제정이 붕괴하고 11월 7일 볼셰비키 혁명으로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자 그해 12월 6일 독립을 선언했다. 원로원이 임시 통치하면서 1918년 1월 27일~5월 15일 내전까지 겪었다. 핀란드 백위대가 소련 볼셰비키의 지원을 받은 적위대를 물리치고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1919년 3월 3일 총선을 거쳐 6월 21일 핀란드공화국 정부가 출범했다.  
신생 핀란드는 소련의 무도한 요구를 당연히 거절했다. 소련은 대규모 병력과 무기를 동원해 즉각 침략에 나섰다. 당시 인구 1억6852만 명의 소련은 무려 99만8100명의 병력과 2514~6514대의 전차, 3880대의 항공기를 동원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핀란드를 누르려고 시도했다. 이렇게 시작된 겨울전쟁은 누가 봐도 소련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신생국 핀란드는 단호히 침략에 맞섰다. 당시 인구 300만 명의 핀란드는 인구의 10분의 1 수준인 25만~34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고 32대의 전차와 114대의 항공기로 맞섰다. 병력 1대4 또는 1대3, 전차 1대100, 항공기 1대30의 열악한 조건이었다. 적군 병력은 핀란드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이르렀다.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를 맞은 신생국가 핀란드는 그야말로 지혜로 침략자에 대응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라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이 연상된다.  
 
핀란드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네르하임 원수의 묘지에 헌화하고 있다. 만네르하임의 묘지는 핀란드 독립과 위엄, 자존의 상징이다.[중앙포토]

핀란드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네르하임 원수의 묘지에 헌화하고 있다. 만네르하임의 묘지는 핀란드 독립과 위엄, 자존의 상징이다.[중앙포토]

핀란드어도 서툰 스웨덴계 소수민족

핀란드는 우선 한 번도 치러보지 못한 큰 전쟁의 사령관으로 72세의 노장군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1867~1951)를 기용해 방위군 총사령관을 임명했다. 만네르하임은 독특한 인물이다. 핀란드 인구의 6~10%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인 스웨덴어 사용자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제정 러시아군 장교로 임관해 1887년~1917년 30년간 복무하며 중장까지 지냈다. 러시아제국의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신임을 얻어 대관식에도 참석하고 수시로 독대하는 사이였다. 러시아군으로 복무하면서 1905년 러일전쟁과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핀란드가 독립하자 귀국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핀란드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늘 통역을 데리고 다녔을 정도였다.  
겨울전쟁 중 활약했던 핀란드군 스키부대.하양 설상복을 입어 눈속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위키피디아]

겨울전쟁 중 활약했던 핀란드군 스키부대.하양 설상복을 입어 눈속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위키피디아]

그는 핀란드 내전 당시 백위대를 지휘해 러시아 볼셰비키의 지원을 받은 적위대를 물리치고 현대 핀란드 건국의 초석을 놓았다. 적위대가 승리했으면 핀란드는 소련 산하 한 공화국이 될 뻔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벨라루스·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이 적위대의 승리로 독립 기회를 잃고 소련의 한 행정구역으로 전락했다.  
공격 준비 중인 소련군. 이들은 겨울에 전쟁을 시작했지만 설상복이 없어 핀란드 저격병에게 쉽게 노출되면서 엄청난 곤혹을 치렀다. [위키피디아]

공격 준비 중인 소련군. 이들은 겨울에 전쟁을 시작했지만 설상복이 없어 핀란드 저격병에게 쉽게 노출되면서 엄청난 곤혹을 치렀다. [위키피디아]

 

스키부대·기관단총·화염병으로 소련군 무찔러

겨울전쟁을 맞아 재기용된 만네르하임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를 기용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겨울전쟁은 핀란드인이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지혜로 ‘세계 최초’를 양산한 자랑스러운 전쟁이다. 첫째 세계 최초로 겨울용 백색 설상군복을 도입했다. 차량과 야포에도 흰 천을 덮어 위장했다. 카키색 군복을 입은 소련군은 눈 덮인 벌판과 숲에서 쉽게 발각돼 눈밭에 숨은 핀란드군의 집중 사격을 받고 줄줄이 쓰러졌다.  
도로에서 핀란드군의 습격을 받아 전멸한 소련군 부대의 잔해. 공산제국주의 국가 소련이 작은 나라를 얕보고 침략한 대가는 이처럼 혹독했다. [위키피디아]

도로에서 핀란드군의 습격을 받아 전멸한 소련군 부대의 잔해. 공산제국주의 국가 소련이 작은 나라를 얕보고 침략한 대가는 이처럼 혹독했다. [위키피디아]

세계 최초의 스키부대도 핀란드인의 아이디어였다. 하얀 설상복을 입어 눈에 잘 띄지 않은 핀란드군은 눈밭을 스키로 종횡무진 질주하며 소련군을 기습했다. 얼어붙은 빙판길에 미끄러지며 행군하던 소련군은 갑자기 나타나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사라지는 핀란드 스키부대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핀란드군은 기관단총을 실전에 대대적으로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겨울전쟁 기간 중 눈덮인 핀란드 숲속에서 얼어 죽어간 소련군들.[위키피디아]

겨울전쟁 기간 중 눈덮인 핀란드 숲속에서 얼어 죽어간 소련군들.[위키피디아]

핀란드군은 사우나를 하면서 전쟁을 치른 최초의 군대다. 핀란드 군인들은 토치카 내부에서 적을 감시하면서 교대로 전통의 핀란드식 사우나를 하며 혹한의 피로를 풀었다. 얼어붙은 참호에서 사주경계를 하던 소련군은 아침에 얼어붙은 채로 발견되기 일쑤였다. 군인을 전쟁 도구로 소모한 소련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우한 핀란드의 차이일 것이다.  핀란드군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군인들을 한 달에 한 번씩 후방으로 휴가를 보내 사기를 유지했다. 특히 소련의 잔혹한 민간 지역 폭격으로 집과 가족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군인들이 전선으로 돌아와 소식을 전하면서 핀란드군은 ‘왜 싸워야 하는가’를 더욱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다.  
대전차무기가 부족했던 핀란드군은 겨울전쟁 중 에탄올과 가솔린 등이 섞인 750㎖짜리 화염병 45만 개를 정식 무기로 실전에 사용했다. 헬싱키 주류회사인 ‘알코’가 술 대신 이를 대량 생산해 공급했다. 소련 외무장관 바체슬라프 몰로토프가 소련군의 민간지역 폭격에 대해 “빵 바구니를 떨어뜨렸다”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자 핀란드인은 그런 몰로토프에게 던진다는 의미로 화염병을 몰로토프 칵테일로 불렀다. 핀란드군은 소련 전차가 접근하면 뒤에서 몰래 다가가 전차보병을 기관단총으로 사살하고 몰로토프 칵테일을 취약한 전차 후면 엔진에 던져 불태웠다. 지금도 게릴라전에서 활용되는 전술이다. 그 뒤 독·소 전쟁에서 소련군과 독일군도 다량으로 이를 사용했다. 6·25전쟁 때 국군 6사단도 춘천전투 등에서 화염병과 수류탄으로 적 전차와 자주포를 파괴함으로써 당시 서울을 점령했던 적군의 남진을 사흘간 미루게 한 전공을 세웠다. 이로써 주일미군이 한반도에 투입될 수 있는 황금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핀란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1905~2002)는 겨울전쟁 중 542명(800명이라는 설도 있음)을 사살했다.

핀란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1905~2002)는 겨울전쟁 중 542명(800명이라는 설도 있음)을 사살했다.

 

세계 최초 저격수 본격 양성한 핀란드

병력이 부족했던 핀란드군은 저격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저격수들은 지형지물을 활용해 위장하고 숨어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먼 곳에서 필살의 총탄을 날렸다.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저격수를 전문적으로 훈련해 전술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핀란드인의 지혜가 현대전 교리까지 바꿔놓았다. 핀란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1905~2002년)는 겨울전쟁 중 542명(800명이라는 설도 있음) 사살의 기록을 세웠다. 소련군은 이름도 모르는 핀란드군 저격수를 ‘하얀 죽음의 신’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당황한 소련군 지휘부는 총알이 날아오는 쪽으로 무턱대고 대규모 포격과 폭격을 가했다. 해위해는 1940년 3월 6일 턱에 파편을 맞아 얼굴이 함몰됐지만, 다행히 살아남았다. 그가 개발한 저격 전술은 지금도 전 세계 훈련장에서 저격수를 교육하고 있다.  
핀란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1905~2002)는 겨울전쟁 중 542명(800명이라는 설도 있음)을 사살했다. 자신을 노린 소련군의 포격으로 얼굴에 파편을 맞았다.

핀란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1905~2002)는 겨울전쟁 중 542명(800명이라는 설도 있음)을 사살했다. 자신을 노린 소련군의 포격으로 얼굴에 파편을 맞았다.

여기에 핀란드는 소련을 상대로 대대적인 기만작전을 벌였다. 합판과 풍선으로 비행기, 전차, 야포를 다량으로 만들어 지상 주요 지역에 ‘배치’했다. 소련군 항공 정찰대를 이를 그대로 찍어갔으며 소련은 핀란드가 상당한 전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오판했다. 결국 소련은 약간의 영토만 가져가는 조건으로 협상과 휴전에 나섰다. 핀란드는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역사는 핀란드가 겨울전쟁에서 지혜로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스키와 설상복을 착용하고 교전 중인 핀란드군. 지형지물을 이용한 유격전으로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위키피디아]

스키와 설상복을 착용하고 교전 중인 핀란드군. 지형지물을 이용한 유격전으로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위키피디아]

고슴도치 핀란드에 소련도 두손 들어

핀란드는 1941년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을 시작하자 동맹을 맺고 소련에 대한 보복에 나섰다. 1941년 6월 25일부터 1944년 9월 14일까지 진행된 핀란드와 소련 간의 계속전쟁, 또는 2차 핀란드-소련 전쟁으로 부르는 전쟁이다.  
하지만 소련의 반격으로 나치가 밀리자 핀란드는 1944년 9월 소련과 모스크바 정전협정을 맺고 총부리를 나치 쪽으로 돌렸다. 1944년 9월 15일부터 1945년 4월 25일까지 핀란드 지역에서 나치 병력을 몰아내는 라플란드 전쟁, 또는 핀란드-나치독일 전쟁을 벌였다. 이런 사태를 겪으면서 소련은 ‘핀란드 트라우마’를 겪게 됐다. 핀란드는 작은 나라지만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갖게 됐다.  
결국 핀란드는 2차대전이 끝난 1947년 파리강화조약에서 독립을 보장받았다. 다만 무기 정도는 소련제를 사주는 것으로 타협했다. 나치와 일시 협력했지만, 소련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핀란드를 전범국으로 보지 않았다. 소련의 우방으로도 여기지 않았다. 핀란드는 냉전 시절 미국 주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도 가입하지 않고 미국이 제공하는 마셜 플랜도 받지 않으면서 미소 사이에서 미묘한 중립을 유지했다.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의 스키 착륙 비행기.하이켄크로이츠 마크는 나치독일과 흡사하지만 나치와 무관하게 당시 핀란드도 이를 별도로 휘장으로 사용하다 최근에야 이를 폐기했다. [위키피디아]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의 스키 착륙 비행기.하이켄크로이츠 마크는 나치독일과 흡사하지만 나치와 무관하게 당시 핀란드도 이를 별도로 휘장으로 사용하다 최근에야 이를 폐기했다. [위키피디아]

민주주의·번영·자유인권 지켜낸 핀란드  

핀란드는 의회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인권체제를 고스란히 유지하며 가치적으로는 ‘서방권’으로 평가됐다. 소련과 마찰을 줄이려고 애쓰면서도 국가의 존엄과 명예, 그리고 가치는 확고하게 지키고 있는 셈이다. 냉전 당시 핀란드는 주변 강대국을 비난하지 않는 대신 주권과 체제를 유지한다는 의미의 ‘핀란드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핀란드의 중립은 온국민이 단결력과 의지로 소련에 맞선 ‘겨울전쟁 정신’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핀란드인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는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져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 이상을 유지하는 부자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겨울전쟁 정신과 핀란드인의 선택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나라가 택할 수 있는 생존전략의 하나로 주목받는다.  
핀란드는 1993년 11월 1일 공식출범한 유럽연합(EU)에 1995년 1월 스웨덴·오스트리아와 함께 가입해 공식적으로 경제적 서방권이 됐다. 2016년 10월에는 미국과 안보협력협정을 맺었으며 현재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산 K9 자주포 48문을 수입하는 등 한국과 방위협력도 적극적이다.  
1956년 헬싱키에서 열린 만네르하임 국장.

1956년 헬싱키에서 열린 만네르하임 국장.

 

점령당하지 않는 나라 만든 장군, 국민이 기억

국가 존망이 걸린 위기 속에서 러시아군 장군 출신 만네르하임을 최고사령관으로 기용했던 핀란드는 여러 가지 기록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10월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독립한 나라 중 소련에 병합되지도, 점령당하지도 않은 국가가 됐다. 소련과 전면전을 2차례나 치르고도 정복당하지 않은 국가의 기록도 갖게 됐다.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도 시장경제, 의회민주주의, 자유인권을 누린 드문 나라다. 미소 냉전 시대 중립을 지킨 드문 유럽 국가이기도 하다.  
만네르하임은 전쟁을 치르던 1939~1945년 최고사령관을 지낸 것은 물론 1944~46년에는 대통령도 맡았다. 1951년 1월 27일 만네르하임이 세상을 떠나자 핀란드는 국장으로 정중하게 장례를 치렀다. 그 뒤 수도 헬싱키에 만네르헤임 박물관을 세워 그를 기억하고 있다. 
겨울전쟁을 이끈 핀란드의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1867~1951) 원수. 1944~46년 대통령을 지냈다.

겨울전쟁을 이끈 핀란드의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1867~1951) 원수. 1944~46년 대통령을 지냈다.

이런 핀란드는 한국과 다른 점도 많지만 역사적 배경과 지정학적 상황은 상당히 비슷하다. 갓 독립한 국가 공동체가 적의 침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과거 출신과 상관없이 능력 있는 인물을 기용하고 전 국민이 지혜를 모으고 헌신해 이겨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핀란드는 겨울전쟁을, 대한민국은 6·25전쟁을 극복했다. 논란 속에서도 분열을 피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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