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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물수능’이 ‘고3 구제책’이라고?

중앙일보 2020.07.13 00:24 종합 28면 지면보기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상대평가에서 난이도를 낮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아이디 east****) “문제를 쉽게 내는 거랑 ‘고3 구제’랑 관련 없을 텐데… 변별력이 없어져 눈치 싸움만 치열해질 것 같다”(kims****)
 
‘쉬운 수능’으로 고3 수험생을 ‘구제’하자는 교육감들의 제안을 비웃는 네티즌들의 댓글이다. 지난 9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총회를 열고 12월 3일 예정인 올해 수능의 난이도를 조정해달라는 대정부 건의안을 통과시켰다. 감염병 사태로 학사 일정이 비정상적으로 진행돼 대입에서 고3이 재수생보다 불리할 게 뻔하니, 쉬운 수능으로 이를 막자는 얘기다.
 
취지야 나무랄 데 없지만, 댓글에서 보듯 반응은 신통치 않다. 영어·한국사를 제외하곤 모든 영역이 상대평가인 수능의 특성을 다들(교육감들만 빼고) 잘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물수능’이 되면 수험생의 ‘체감 난도(難度)’야 떨어지겠지만, 고3이 상대적으로 좋은 표준점수를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사실 난이도를 조정하면 ‘현역’·‘N수’ 여부보다 성적대에 따라 유·불리가 엇갈릴 확률이 훨씬 크다. 몇몇 교육감들의 제안대로 수학·과학에서 최고 난도 문항을 출제하지 않는다면 중상위권 재수생이 한결 유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노트북을 열며

노트북을 열며

건의안을 채택하기 하루 전날(8일) 나온 6월 모의평가 분석 결과도 교육감들의 제안이 과연 타당한 지 의문을 품게 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일반적으로 재학생과 졸업생의 성적 차이가 있지만, 이번 모의평가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에서 차이가 나타났을 뿐”이라고 했다. 애초 우려와 달리 실제 데이터로 보면 ‘고3 불리’가 그리 심하지 않다는 얘기다.
 
사실 ‘시험(수능)을 바꿔 수험생 부담을 줄이자’는 식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사교육 경감을 위해 추진된 ‘EBS 교재 70% 연계’로 EBS 교재를 요약해 가르치는 학원들이 성행했고, EBS 교재의 문제·답만 외우는 기현상이 초래됐다. ‘수능 만점자 1%’ 정책도 과목 간 ‘널뛰기’ 현상 등으로 혼란만 빚다가 결국 공식 폐지됐다.
 
대학교수, 전교조 간부 출신이 다수인 교육감들은 이런 ‘대입의 흑역사’를 미처 알지 못하는 듯하다. 서울의 한 고교 진로교사는 “교육감들의 주장대로 입시를 바꿨다간 정부의 부동산 대책 수준의 대참사를 일으킬 것”이라고 걱정했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교육 정책의 실행엔 충분한 사전 검토와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걸 ‘지역 공교육의 수장’인 교육감들이 꼭 기억했으면 한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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