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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장군 유족 “생전 대전에 안장 마음 굳혀, 대전도 대한민국”

중앙일보 2020.07.13 00:02 종합 6면 지면보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11일 고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항상 갖고 다닌다“며 유가족에게 보여준 사진. 2018년 11월 21일 백 장군의 백수(白壽) 축하 행사를 찾은 해리스 대사가 무릎을 꿇은 채 대화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중앙포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11일 고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항상 갖고 다닌다“며 유가족에게 보여준 사진. 2018년 11월 21일 백 장군의 백수(白壽) 축하 행사를 찾은 해리스 대사가 무릎을 꿇은 채 대화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중앙포토]

“한·미 동맹의 상징이시고, 한국군 발전의 증인이신 백선엽 장군을 애도합니다.”
 

백 장군, 어떤 특혜도 원하지 않아
서울아산병원 빈소 조문 줄이어
이해찬, 유족에 “후배 많이 아낀 분”
김종인, 의원 17명과 함께 찾아와

12일 오후 고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백 장군이 별세한 뒤 하루가 지난 후 청와대에서 나온 ‘입장’인 셈이다. 노 실장은 이날 서훈 국가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김현종 안보실 2차장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노 실장은 유가족들에게도 “고인은 한·미 동맹의 산증인이고, 한국군 발전에 이바지했다”며 조의를 표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엔 함구했다. 전날인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12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원 안)가 고 백선엽 장군 조문 뒤 한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이 대표 뒤는 민홍철·송갑석 의원(오른쪽 둘째부터). [뉴스1]

12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원 안)가 고 백선엽 장군 조문 뒤 한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이 대표 뒤는 민홍철·송갑석 의원(오른쪽 둘째부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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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후 8시25분쯤 조문한 뒤 내실로 이동해 유족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표는 백 장군과 2005년 만난 일을 떠올리며 “대단히 후배들을 아끼는 분이었다”고 말했다고 송갑석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표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빈소를 떠났다. 앞서 이낙연 민주당 의원도 조문했는데, 역시 서울현충원 안장 논란 등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까지 백 장군 별세에 대한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원 17명과 함께 조문했다. 김 위원장은 “백 장군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해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혁혁한 공로를 세운 분”이라며 “장군의 서거를 굉장히 애도하고, 최대한 예우를 갖춰 장례가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정해졌다. 유가족들은 “지난해 건강하셨을 때 이미 대전에 안장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셨다”며 “서울이나 대전이나 다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 백 장군은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내심 6·25전쟁 전우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동작동)에 묻히길 바라기도 했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뒤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는지 “어떤 특혜 없이 대전현충원으로 가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장례 예우를 놓고 야당과 군 단체들이 반발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백 장군이 생존하셨을 때 국립서울현충원 국군묘지를 방문해 전사한 장병과 같이 안장되기를 원했고, 아마 (묏자리까지) 함께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정부가 무엇 때문에 서울에 있는 현충원에 안장을 못 하게 하고 (대전에) 내려가야 한다고 하는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향군인회(향군)는 “국민 모두가 존경하고 추앙받아야 할 분을 일제강점기의 일본군 경력만을 이유로 매도하고 폄하하는 것은 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자 국군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육군 예비역 단체인 대한민국육군협회는 고인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에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은 정부가 고인의 대전현충원 안장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결식은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리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한다. 영구차가 지나는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선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운구를 맞을 예정이다.
 
한편 이날까지 정세균 국무총리, 정경두 국방장관 등이 빈소를 찾은 것과는 달리 강경화 외교장관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엔 여성·인권 문제 전문가 출신인 강 장관은 앞서 10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를 찾았지만 프랑스·캐나다 대사를 역임했던 고 백선엽 장군 빈소에는 이날 오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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