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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지지 89→59%' 다급한 푸틴, 바이든 당선위해 美대선 개입?

중앙일보 2020.07.12 07:46
애국주의라는 이름의 괴물이 러시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1일 끝난 러시아 개헌 국민투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36년 장기독재의 길을 열면서 투표를 앞두고 그가 내세웠던 ‘애국주의’ 국가 이념이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이번 개헌 국민투표 결과를 살펴보면 애국주의의 위력이 잘 드러난다.   

집권연장 개헌 국민투표서 77.9% 찬성
코로나 와중에 퍼레이드 벌인 뒤 투표
푸틴, ‘애국주의가 국가이념’ 수시 강조
맹목적 국수주의와 반대파 혐오 조장
국민투표, 애국주의 상징조작 현장으로
러시아 거대한 전체주의 사회 변질 우려
장기집권 길 열었지만 경제난 해결 난제
저유가·경제제재 푸틴 앞날 흐림 기상도
11월 미 대선 뒤 미국과 화해 가능성 주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인근 추빈카에 있는 군사시설인 애국자 공원을 방문해 저격 소통을 들고 목표물을 조준하고 있다. 애국주의를 내세운 푸틴이 정치적으로 저격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2018년 9월 자료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인근 추빈카에 있는 군사시설인 애국자 공원을 방문해 저격 소통을 들고 목표물을 조준하고 있다. 애국주의를 내세운 푸틴이 정치적으로 저격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2018년 9월 자료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집권연장 개헌 국민투표, 77.92% 통과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열렸던 개헌 국민투표는 전체 유권자 1억918만 1263명의 67.88%(7410만 8049명) 참가에 투표자의 77.92%(5774만 3820명) 찬성으로 통과됐다고 러시아 연방 중앙선거관리 위원회가 2일 발표했다. 반대는 21.27%(1575만9500명), 무효는 0.82%(60만4729명)로 집계됐다. 러시아 연방을 이루는 22개 공화국, 46개 주, 9개 변경주, 1개 자치주, 4개 자치구, 3개 연방시 등 94개 연방주체 가운데 북극해에 접한 인구 4만2000명의 네네츠 자치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찬성이 더 많이 나왔다. 국민투표는 푸틴의 압승으로 끝난 셈이다.  
중앙선관위는 원래 7월 1일 하루에 국민투표를 치르려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투표자를 분산한다며 투표 기간을 1주일로 연장했으며 일부 지역에선 전자투표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는 투표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통과한 개헌안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현 임기가 끝나는 2024년 대선 이후 대통령에 두 차례 더 출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이 두 차례를 초과해 연속으로 임기를 맡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헌은 푸틴이 현 임기를 포함해 기존에 맡았던 재임 횟수를 이 규정에 해당하지 않도록 제외하는 ‘황당한’규정을 담았다. 그럼에도 높은 한성으로 끝났으니 푸틴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푸틴은 러시아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어 이번 개헌에 따라 2024년과 2030년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 남성의 평균수명은 66.6세 정도지만 푸틴의 건강 상태는 아직 문제가 없어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의 건강과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기를 즐긴다. 휴가 중 시베리아 남부 키질에서 말을 타고 트래킹을 하는 모습. 2009년 자료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의 건강과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기를 즐긴다. 휴가 중 시베리아 남부 키질에서 말을 타고 트래킹을 하는 모습. 2009년 자료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민족주의 자극하면 푸틴 지지율 급상승  

러시아에서 푸틴의 지지율은 민족주의와 관련이 크다. 푸틴의 지지율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병합한 2014년 80%를 넘었으며 2015년 서방의 경제제재 결정으로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압박을 받았던 2016년 89%로 정점을 찍었다. 그 뒤 인기 없는 연금개혁안 발표 등을 거치면서 떨어져 올해 59%를 기록했다. 이번 개헌 국민투표에서 러시아 유권자들이 보여준 77.92%의 찬성률은 푸틴에 대한 지지율보다 크게 높은 셈이다.    
푸틴은 국민투표에서 어떻게 이렇게 대승을 거뒀을까? 국민투표를 앞두고 푸틴이 벌인 행동이나 발언, 이를 바탕으로 행정조직 등을 동원해 벌인 캠페인 등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애국주의’가 한몫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푸틴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애국심’을 강조해왔다. 지난해 12월 연례 기자회견에서 푸틴은 “현대 민주사회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이념은 애국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애국심은 가장 광범위하고 최고의 가치”라며 “애국심은 정치를 넘어서서 러시아의 기틀을 튼튼하게 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파를 넘어서서 애국심이라는 가치관 아래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애국주의의 이름 아래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사고를 할 것을 강요하며 여기에 반대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지난 5월 10일에는 국정 홍보 방송 프로그램인 ‘모스크바·크렘린·푸틴’에서 ‘러시아의 국가이념을 묻는 말에 “애국심 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애국심이란 조국 발전에 헌신하는 것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애국심은 영웅적인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웅적이고 성공적인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 AFP=연합뉴스

 

푸틴, ‘애국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이런 일련의 발언을 통해 애국심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애국주의‘는 푸틴의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아 왔다. 애국심의 이름으로 푸틴에 대한 이의 제기나 반대, 토론 대신 일률적인 복종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 애국주의다.  
영국 정치학자이자 교과서 집필자인 엔드루 헤이우드의 『정치 이데올로기(Political Ideology)·맥밀란』에서 애국주의(Patriotism)를 ’소속 국가에 대한 심리적인 애착이나 집착의 감정‘이라고 설명하고 민족주의의 한 형태로 분류했다. 민족주의는 ‘국가가 정치 조직과 활동의 중심’이라고 믿는 신념이다. 애국주의는 이런 믿음에 대한 정서적인 기반을 제공하면서 모든 종류의 민족주의에 바탕을 제공하는 수단이다. 애국주의에 기반을 둔 충성심이나 민족적 인식은 민족주의의 기반을 강화해준다. 애국주의는 민족주의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이야기다.  
나치식 경례를 하는 러시아 스킨헤드족의 모습[ 중앙포토]

나치식 경례를 하는 러시아 스킨헤드족의 모습[ 중앙포토]

 

애국주의, 우월주의나 혐오증 유발 우려  

문제는 민족주의나 애국주의가 어떠한 비판도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인 성격을 띨 경우 맹목적인 국수주의인 쇼비니즘(Chauvinism)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민족주의나 애국주의가 특정 국가가 소속 국민이 다른 국가나 국민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 ‘민족우월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1930~40년대의 독일 나치즘이나 현대 미국 등의 백인우월주의가 그것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남성우월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인식은 때로 병적인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혐오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노포비아는 외국인이 민족의 공동체적 특질을 파괴할지 모른다는 공포증과 이들을 증오하는 혐오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차별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민족정체성이 다른 외국인·소수민족이나 종교적 정체성이 다른 타종교인, 성적 정체성이 다른 동성애자 등 소수집단, 정치적 입장이 다른 반대파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벌일 수 있다. 실제로 이는 스킨헤드족을 비롯한 러시아 극우파들의 일반적인 행동이다.  
러시아에서 한국 유학생을 비롯한 외국인에 대해 ‘묻지마 공격’이 잦은 것도 그 연장 선상에서 볼 수 있다. 모스크바 등에서 열리는 동성애자 행사가 극우파들의 무자비한 습격으로 끝나는 경우가 잦은 것도 그 하나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난해 7월 27일 공정선거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연행되고 있다. AFP통신 등은 시위대 3500여 명 중 1000여 명이 체포됐고 이 과정에서 일부가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다시 시위는 지난해 9월 열린 시의회 선거에 유력 야권 인사들의 후보 등록이 거부된 데서 촉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난해 7월 27일 공정선거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연행되고 있다. AFP통신 등은 시위대 3500여 명 중 1000여 명이 체포됐고 이 과정에서 일부가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다시 시위는 지난해 9월 열린 시의회 선거에 유력 야권 인사들의 후보 등록이 거부된 데서 촉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입장·견해 다르면 매국노 몰아 탄압도

여기에 더해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집단, 즉 푸틴에 반대하는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푸틴 시위는 경찰에 의해서만 저지되는 게 아니라 상당수 경우 극우세력의 폭력에 의해 방해받아왔다. 푸틴으로서는 애국주의를 정치이념으로 던져 놓고 이런 반대파에 대한 폭력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애국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들고 나왔으니 일부 광적인 푸틴 지지자들이 반대 세력을 ‘위대한 러시아의 적’ ‘서방의 스파이’ ‘매국노’로 몰아서 공격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서 시위대를 잡아갔다는 뉴스는 자주 볼 수 있지만,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하는 극우세력을 체포하고 저지했다는 소식은 듣기 힘든 이유다. 반대파에 대한 폭압이 정당화하고 상설화하는 근거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르스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AP=뉴시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르스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AP=뉴시스

 

국민투표는 애국주의 상징조작의 전주곡

이번 국민투표는 ‘애국주의 상징조작’의 전주곡로 평가받는다. 코로나19가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하는 와중에 푸틴 정권은 대놓고 투표율·찬성률을 높이는 공작을 벌였다. 6월 14일에는 소련과 러시아에서 ‘대조국전쟁’으로 부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됐던 러시아군을 기리는 대성당을 기공했다. 6월 18일에는 2차대전 소련과 러시아의 역할을 찬양하는 논문을 푸틴 이름으로 발표했다. 2차대전을 러시아인이 피로써 파시스트들을 물리친 전쟁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러시아 민족주의를 앙양하는 행사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이 미국의 랜드리스법에 따라 미국산 군사장비를 대대적으로 보급받아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은 빼놓는다.  
특히 러시아군이 2차대전 발발 당시 나치의 동맹이자 침략군이었다는 사실은 교묘하게 묻었다. 유럽전 시작인 폴란드 침공 당시 소련군은 나치 독일군과 손잡고 폴란드에 쳐들어가 영토를 나눠 먹었으며, 카틴 숲에서 폴란드 장교와 지식인을 대대적으로 학살해 폴란드 말살 정책을 펼쳤다. 나치의 유대인 절멸 기도에 버금가는 잔혹한 민족주의적 인종청소다. 푸틴은 이런 명백한 사실을 두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핀란드를 침략해 겨울전쟁을 벌이다 괴멸적인 패배를 당한 역사도 무시했다. 소련은 러시아인을 중심으로 거대한 나치 독일을 물리쳤다는 것만 강조했을 뿐이다. 민족주의, 애국주의에는 역사적 진실이나 사실은 애써 무시한다. 다만 선택적 기억으로 민족주의를 찬양하고 애국주의를 고양할 뿐이다. 종교 수준으로 열광적인 애국주의에서 국민의 숭배를 받는 ‘토템’은 바로 푸틴 자신이다. 소련 몰락으로 땅에 떨어졌던 러시아를 이젠 전 세계가 강대국으로 두려워한다는 믿음이 이를 받친다.  
2019년 7월 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진행된 해군의 날 퍼레이드 리허설에 참여한 러시아군의 Tu-95 전략폭격기들. EPA=연합뉴스

2019년 7월 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진행된 해군의 날 퍼레이드 리허설에 참여한 러시아군의 Tu-95 전략폭격기들. EPA=연합뉴스

 

코로나 와중 종전 75주년 행사하고 투표

푸틴이 24일 늦깎이 종전 75주년 행사를 연 것도 이런 애국주의 열기를 고조하기 위해서다. 소련은 1945년 5월 8일 서방 연합군이 나치 독일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자 자신들이 빠졌다며 분노했다. 그래서 그다음 날 나치 독일군으로부터 별도의 항복을 받았다. 그래서 서방은 5월 8일, 소련과 이를 승계한 러시아는 5월 9일이 종전기념일 또는 전승기념일이다. 소련과 러시아에선 이날 모스크바 붉은 광장을 포함한 상징적인 장소에서 온갖 첨단무기와 정예부대, 그리고 참전 노병과 가족, 유가족을 모아 대대적인 퍼레이드를 벌였다. 소련과 러시아의 군사력을 가름할 수 있는 전시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가 사용했던 T-34 전차와 러시아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T-34 아르마나 전차와 핵미사일이 함께 거리를 활보하는 행사다.  
푸틴 시대가 되면서 당시 참전했다가 이제는 고인이 된 용사들의 2세, 3세가 자랑스러운 참전 가족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아버지가 2차대전 당시 해군으로 참전했던 푸틴도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나섰다. 푸틴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의 대도시였으며, 나치독일의 장기 포위로 수많은 사람이 숨졌다. 푸틴의 형도 당시 병과 굶주림으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은 전쟁이 끝나고 귀향한 부친과 도시를 지키던 어머니 사이에서 1952년 태어났다. 러시아에서 전승기념일 퍼레이드는 러시아가 피로써 세계 역사를 새로 썼다는 것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고양장과도 같은 행사다.  

 

러시아판 전체주의 부상 우려

하지만 올해 5월 9일은 코로나19로 러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가 어려운 상황을 맞은 상태였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다면 코로나19 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푸틴은 5월 9일 전승기념일 퍼레이드를 연기했다. 일부 지역에서 약식으로 치러졌다.  
푸틴은 연기했던 전승기념일 퍼레이드를 6월 24일 열고 바로 다음날인 6월 5일부터 7월 1일까지 개헌 국민투표를 한다고 발표했다. 7월 1일 퍼레이드와 국민투표를 함께 치르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렇게 중요한 행사를 국민투표와 함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누가 봐도 애국주의를 고조하는 정치 일정 순서다. 25~7월 1일 진행된 국민투표에서 푸틴은 압승을 거뒀다. 전체주의 나치즘을 누른 종전기념일이 현재 러시아에선 러시아판 전체주의 부상의 상징이 되는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6월 5일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있다. 두 사람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6월 5일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있다. 두 사람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AP=연합뉴스

푸틴, 스탈린 넘어서는 장기독재의 길로

지난 5월로 대통령 집권 20주년을 맞은 푸틴은 현재 임기가 끝나는 2024년 이후 6년 임기의 대통령 임기를 두 차례 추가로 맡으면 러시아·소련을 통틀어 최장기 집권 권력자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금까지 기록은 29년 소련을 통치했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장기집권이다.  
그런 푸틴은 통치방식도 스탈린식 통제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단일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공포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러시아는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을 국민의 직접 선거로 뽑지만, 조직적 통제로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동굴 속 전체주의나 다름없는 셈이다.  
실제로 러시아에선 푸틴의 반대파가 암살당해 영원히 입을 닫는 경우가 왕왕 벌어지고 있다. 경찰과 푸틴 지지자들은 푸틴 반대파를 탄압하고 서방의 부추김을 받은 매국노 딱지를 붙이기 일쑤다. 권력의 미디어와 사이버 조작이 일상화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 경찰은 물론 강경 푸틴 지지자 그룹까지 나서 ‘사적 폭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연금법 개정에 반대하는 한 시위자가 길바닥에 붙어 있는 푸틴 대통령의 얼굴 그림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푸틴은 남성의 경우 65세부터 연금을 지급하는 연급 개혁을 시도했지만 러시아 남성의 평균 연령이 66.5세로 애초 설계가 잘못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정부의 연금법 개정에 반대하는 한 시위자가 길바닥에 붙어 있는 푸틴 대통령의 얼굴 그림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푸틴은 남성의 경우 65세부터 연금을 지급하는 연급 개혁을 시도했지만 러시아 남성의 평균 연령이 66.5세로 애초 설계가 잘못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AP=연합뉴스

 

저유가·서방제제 해결은 푸틴의 과제  

문제는 푸틴이 장기집권 개헌 뒤 경제부흥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푸틴은 현재 정치적 사면초가에 처한 형국이다. 러시아 경제는 오일머니의 대대적인 투자로 석유·가스 의존을 넘어서는 경제·산업 구조 현대화가 절실하다.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국에서 진정한 글로벌 경제 강자로 올라서기 위해선 발달한 과학기술을 활용해 자동차·항공·기계·화학 등 다양한 산업을 일으켜 경제부흥을 노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러시아 경제의 목을 짓누르는 가장 큰 압박이 저유가다. 지난해부터 공급 과잉으로 국제유가가 고개를 숙이더니 올해 들어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자존심 경쟁과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로 폭락 수준의 저유가를 기록했다. 가스 공급망 확충 작업에 제동이 걸린 것도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옥죄는 또 다른 불안 요인이다. 독일과 손잡고 야심적으로 추진하던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공사가 미국의 경제 제재로 중단되는 등 악재의 연속이다. 노르트스트림은 기존 러시아에서 동유럽을 지나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대신할 목적으로 북해 바다를 지나는 노선에 건설하던 가스파이프다. 하지만 미국의 도널드 푸틴 대통령이 미국이 독일에 미군을 주둔해 러시아에 대항할 군사력을 제공해주고 있는데 독일은 러시아에서 거액을 주고 가스를 사서 쓴다며 압박했다. 아무래도 독일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적어도 올해 11월 3일 미국 대선 전까지는 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명용사의 묘를 방문해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2017년 자료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명용사의 묘를 방문해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2017년 자료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미 11월 대선 바이든 당선하면 관계개선?

푸틴에겐 경제난·연금·인권·코로나19 등에 따른 지지율 저하 추세도 마음의 짐이 될 수밖에 없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2015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등으로 민족주의가 고양하면서 푸틴의 지지도는 2016년 역대 최고인 89%까지 치솟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 4월에 실시해 5월 발표한 지지율 조사 결과는 59%로 나타났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러시아인의 요구가 커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서방의 경제제재 해결이 푸틴의 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방 경제제재는 푸틴에게 ‘입속의 검은 잎’이 되고 있다. 물론 푸틴도 한 방을 노릴 수 있다. 올가을 미국 대선에서 국제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해온 조 바이든이 당선해 러시아에 화해와 협력의 손을 내밀면 푸틴에게 ‘멋진 신세계’가 열릴 수도 있다. 러시아가 사이버 전력을 활용해 선거개입이나 조직 공작을 획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푸틴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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