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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 나와!” 한국 대표 청주 청하

중앙일보 2020.07.11 09:00
 
1986년 출시된 청하는 34년 동안 다섯 차례 패키지 리뉴얼을 했다. 현재 청하의 모습. 사진 롯데칠성음료

1986년 출시된 청하는 34년 동안 다섯 차례 패키지 리뉴얼을 했다. 현재 청하의 모습. 사진 롯데칠성음료

1986년 나온 청하(淸河)는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냉(冷) 청주다. 청하 이전엔 청주는 으레 데워 마시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시원한 청주가 나오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한국의 장수 브랜드] 47. 청하

 
출시 첫해 약 256만병이 팔리며 그해 주류 시장을 뒤흔들었다. 이후 연평균 90% 이상씩 성장하면서 세를 넓혔다. 청하는 현재 냉청주 시장 점유율 93%인 청주계의 ‘절대 강자’다. 주로 겨울에만 마시던 한국 술 청주는 청하의 탄생을 계기로 사계절 내내 마실 수 있는 주종으로 대중화됐다.     
 
청하의 성공비결은 독한 ‘소주파’와 순한 ‘맥주파’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도’ 소비자를 틈새 공략한 데 있다. 청하는 출시 당시 16도였다가 94년 14도로 내리고 2004년 다시 13도로 조정해 지금까지 이 도수를 유지하고 있다. 
 
15도 이하의 저온에서 발효시키고 냉각 여과장치로 쓴맛과 알코올 향을 제거했다는 설명이다. 군맛과 잡향이 적고 깔끔한 맛으로 낮은 알코올 도수의 맥주와 높은 알코올 도수의 소주 사이에서 마땅한 선호 주종을 찾지 못하던 사람에겐 제격이었다. 87년에는 437만병, 88년에는 700만병이 판매됐다.  
1986년 출시 당시 청하. 16도로 지금보다 독했다. 이 포장은 94년까지 유지됐다. 사진 롯데칠성음료

1986년 출시 당시 청하. 16도로 지금보다 독했다. 이 포장은 94년까지 유지됐다. 사진 롯데칠성음료

청하가 단기간 크게 성공하자 각 주류 회사는 냉청주 생산 경쟁에 돌입했다. 금관청주의 ‘만향’(1987년), 경주법주의 ‘슈퍼 淸’(1992년) 등이 나왔지만, 청하를 뛰어넘지 못했다. 이후 청주 시장은 89~91년 전년 대비 각각 92.7%, 99.1%, 90.5% 성장했다. 이런 열풍 속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청하는 일본(1989년), 호주(1990년), 미국(1992년), 대만(1994년), 중국(1996년)에 진출해 청주의 세계화에도 도전하기도 했다. 세계 시장에선 일본 사케 선호가 강해 큰 성공을 거두진 못해 현재는 내수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화이트 와인 맛 나는 한국 술 만들기 

  
청하가 나오기까지는 복잡한 사연도 있다. 냉청주를 내기로 한 결정은 주류 회사의 인수합병(M&A) 때문이다. 롯데칠성음료의 전신인 두산주류는 청하 출시 직전인 85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 청주인 백화수복(1945년)을 생산하는 백화양조에 대한 경영권을 인수했다. 백화양조 인수 뒤 당시 두산주류의 히트작이었던 국산 와인 마주앙의 발효 기술을 접목해 화이트 와인 맛이 나는 청주를 만들기로 했다.   
역대 청하 모델. 송혜교, 한지혜, 선우선, 청하, 박소담, 유인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등이 활약했다. 사진 롯데칠성음료

역대 청하 모델. 송혜교, 한지혜, 선우선, 청하, 박소담, 유인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등이 활약했다. 사진 롯데칠성음료

'와인같은 청주'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신제품 이름만은 고민이었다. 당시로는 드물게 네이밍 관련 외부 전문가를 불러 이름 지어주기에 나섰지만 아무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의 지명이 후보로 떠올랐다. 어감과 한자가 제품 컨셉트와 잘 맞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만든 이름을 포함해 청하가 제안됐고, 최종 회의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청하가 낙점됐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해당 지역과 제품은 아무런 인연이 없었지만, 단순 이미지만을 고려해 제품명이 정해진 독특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사케 비켜, 청주 간다

청주(淸酒)의 사전적 정의는 그 뜻 그대로 ‘맑은 술’이다. 똑같이 쌀로 빚었으나 맑지 않은 탁주와 비교해 붙어진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청주와 유사한 사케(酒)를 국주(國酒)로 여기며 전 세계 청주 시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때문에 청주를 일본 고유 술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청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 시대 의학서인 「신라법사방」에는 ‘온주’, 즉 따뜻한 술을 약용으로 쓰기도 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여기서 말하는 따뜻한 술이 청주라고 한다. 조선 시대엔 청주를 약주로 통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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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록을 종합해 보면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많이 마시던 탁주와 구분되는 맑은 술 청주를 생산해 마셨음을 알 수 있다. 백제 시대 청주가 일본으로 건너가 사케가 됐다는 주장도 있으나, 근거는 희박하다. 결국 청주는 유럽의 와인처럼 동아시아에서 각각 발전한 형태의 술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청하 실검 1위(?)

청하 실검 1위를 자축한 포스팅. 청하 페이스북 캡처

청하 실검 1위를 자축한 포스팅. 청하 페이스북 캡처

“청하 실검 1위 경축. 여러분이 차려놓은 밥상에 저는 젓가락질만 했을 뿐. #청하길만 걷자”
 2017년 6월 7일 롯데주류 청하 페이스북에는 갑자기 이런 글이 올랐다. 실은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오아이’ 출신 가수 청하가 솔로 데뷔하면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자 능청스럽게 자축 글을 올린 것이다. 청하가 젊은 소비자를 잡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페이스북에서 담당자가 한 ‘드립’은 온라인에서 유쾌한 반응을 일으켰다. 
  
청하는 ‘어르신’이 좋아할 것 같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시도 중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청하 페이스북은 코믹하고 재치있는 포스팅으로 유명하다. 팔로워가 14만명 이상으로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수백 개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린다. 이런 청하 페이스북 등에 “청하가 청하 광고를 해야 한다”는 요청이 이어졌고 2018년 10월엔 실제로 청하가 청하 광고 모델 활동을 시작해 화제가 됐다.   
청하 페이스북은 기발한 농담과 사진으로 고정팬이 많다. 청하 페이스북 캡처

청하 페이스북은 기발한 농담과 사진으로 고정팬이 많다. 청하 페이스북 캡처

당시 롯데칠성음료는 ”청하가 밝고 쾌활한 이미지로 술 ‘청하’의 주 고객층인 2535 세대에게 사랑받고 있고 제품명과 이름이 같아 직관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접근이 가능해 모델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롯데 관계자는 “청하도 본인과 이름이 같은 청하 모델이라는 점에 애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14년 롯데칠성음료는 청하의 30여년간의 라벨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청하 4본입 기획 팩’을 한정 출시하는 등 뉴트로와 굿즈에 열광하는 젊은 층을 잡기 위한 마케팅을 이어왔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청하는 30년간 14억병이 넘게 팔리면서 청주의 대명사 가 된 제품”이라며 “청하가 계속 사랑받을 수 있도록 소비자와 지속적인 소통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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