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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상 감염 없다→있다"…체면만 구긴 WHO 뒷북 대응, 왜

중앙일보 2020.07.11 05:00
 
세계보건기구(WHO)를 상징하는 로고에는 뱀이 휘감긴 지팡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들고 다닌 것인데요. 뱀은 그에게 사람을 치료하는 지혜를 알려줬다고 합니다.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구하겠다는 WHO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데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장악한 지 반년째, WHO는 인류의 ‘아스클레피오스’가 되고 있을까요.  
 
세계보건기구(WHO) 상징 로고. 뱀이 휘감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그려져 있다. [AFP=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 상징 로고. 뱀이 휘감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그려져 있다. [AFP=연합뉴스]

 
적어도 코로나 사태 속에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거로 보입니다. 1948년 설립 이후 72년 만에 최악의 전염병을 만나면서 WHO도 매일이 준전시 상황일 겁니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탄식이 194개 회원국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태 초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과 마스크 착용 권고도 뒤늦더니 공기 전파(에어로졸 감염), 무증상 감염, 변이 바이러스와 같은 핵심 정보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있어서도 과학계에 계속 뒤처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입장을 번복하며 혼란을 키우고 있지요. 
 
스위스 제네바의 본부와 세계 6개 지역 150개 국가 사무소엔 세계적인 감염병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법률·인사 전문가들과 일반 행정직을 포함해 직원이 총 7000여 명(본부 3000여 명)에 이르지요. 그런데도 WHO는 왜 코로나 국면에서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는 걸까요.  
 
WHO 내부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원인이 WHO의 조직 구조와 의사 결정 과정의 문제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 건물. [EPA=연합뉴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 건물. [EPA=연합뉴스]

 
"WHO에는 다양한 문화의 세계 각지에서 온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 나라의 정부 부처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힘들다.”(전문가 A)
 
"현재의 팬데믹 대응 상황을 주도하는 위원회의 경우 사무총장이 외부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하는데, 결국 최종 의사 결정은 사무총장이 하게 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에티오피아 외교부 장관 출신으로 사안을 외교·정치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전문가 B) 
 
즉,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외교적 이해관계가 고려된다는 이야기입니다.  
 

"WHO는 너무 느리고 지나치게 신중하다" 

WHO는 지난 7일 코로나19의 ‘공기 전파’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이틀 후인 9일 방역 지침도 이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그동안 WHO는 코로나19는 주로 침방울 같은 호흡기 비말을 통해 전파된다는 견해를 고수해왔는데요. 그 사이 국내외에선 실내 공기 중 떠다니는 에어로졸(미세 침방울)을 통한 감염 의심 사례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보다 못한 과학자들이 WHO가 이런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정면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세계 32개국 전문가 239명은 WHO에 공개서한을 보내 코로나19의 공기 전파 가능성을 주장하며 방역 지침 변경을 촉구했지요. 이에 검토를 거친 WHO 측은 “사람이 밀집한 실내 환경에서 코로나19의 공기 중 전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바꾼 겁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 등 WHO 주요 관계자들이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 등 WHO 주요 관계자들이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코로나 확산의 또 다른 변수엔 ‘무증상 감염’이 꼽힙니다. 코로나19에 걸렸는데도 기침‧발열 등의 증상 없이 다른 사람을 전염시키는 것이지요. WHO는 이 ‘무증상 감염’ 가능성에 대해선 하루 만에 말을 바꿨습니다.
 
“무증상 감염자가 다른 사람에게 코로나바이러스를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가 비판이 일자 다음 날 이 발언을 철회했지요. 국내외에서 무증상 감염자가 상당히 많고, 이들이 더 오랜 기간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WHO는 체면을 구기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2차 유행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변이 바이러스’ 문제에선 어땠을까요.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 가능성에 부정적 관측을 내놓던 WHO 측은 이달 초가 돼서야 “스파이크 단백질과 같은 치명적인 부분에서 변이가 일어난다면 실제 백신 개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과학계에선 지난 4월부터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변이를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여러 건 내놓고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 [로이터=연합뉴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 [로이터=연합뉴스]

 
‘뒷북 대응’은 사태 초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WHO는 114국에서 11만8000여 명이 감염된 지난 3월 11일에야 팬데믹 선언을 했지요. 마스크 착용 권고는 어떻고요. 마스크가 코로나 전염을 막는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던 WHO는 지난달 5일 드디어 “일반인도 마스크를 쓰라”고 권했는데요. 이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던 터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WHO의 ‘코로나 뒷북 경력’에 한 가지가 더 늘었습니다. WHO는 코로나19의 기원조사를 위해 전문가를 중국 베이징에 보냈다고 10일 밝혔는데요. 코로나19가 대유행한지 반년 만에 사실상 처음으로 ‘기원’을 조사하겠다는 겁니다. 
 
빌 하니지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는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이렇게 일침을 가했습니다. "WHO는 새로운 증거에 근거한 예방책을 내놓는데 너무 느리고, 지나치게 신중하다."  

 

“하루 평균 500편의 논문이 쌓인다”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과학계는 나날이 발전된 연구 결과들을 빠른 속도로 내놓고 있는데요. WHO는 이를 검토해 대중에게 명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정작 파급력을 고려해 발언을 신중하게 해야 했던 부분에선 안 그랬다는 겁니다. ‘공기 전파’와 ‘무증상 감염’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감염병 전문가 윌리엄 알디스 박사는 NYT에 "WHO는 '증거의 부재(absence of evidence)'를 마치 '부재의 증거(evidence of absence)'처럼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을 뿐인데, "무증상자가 전염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식으로 발표해 헷갈리게 한다는 것이지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 건물. [로이터=연합뉴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 건물.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날까요. WHO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 C가 중앙일보에 전한 내부 상황은 이렇습니다.
 
“다국적 집단을 통솔하기 위해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독재형의 리더십’을 택했다. 하지만, 그래도 과학에 근거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이고 필요하면 수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WHO 관계자 역시 NYT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보수적인 소수가 의견을 주도하며 그에 반하는 견해를 내면 그들은 난리를 칠 것이다.” 또 다른 과학자는 "WHO는 융통성이 없고, 위험을 피하려 하며 지나치게 의학적인 관점만을 고수해 방역 지침을 업데이트하는 속도가 늦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7일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 [EPA=연합뉴스]

지난 7일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 [EPA=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결정적 증거가 없더라도 WHO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방역을 최상에 둔 경고를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WHO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WHO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 A는 중앙일보에 "WHO는 세계적인 표준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곳이다. 어떤 증거가 나와도 이게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지 알기 위해선 증거가 쌓이고,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WHO의 의사 결정이 회원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수미야 스와미나단 WHO 수석 과학자는 NYT에 "하루 평균 500편의 새로운 논문을 검토하는데, 이중 많은 논문이 불확실하다. 우리가 내놓는 지침은 전 세계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WHO의 ‘정치 행보’

WHO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 중심에는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있습니다. 그는 2017년 중국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고 알려졌지요. 중국은 그가 당선되면 “WHO에 향후 600억 위안(약 1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WHO가 팬데믹 선언을 3월 11일에서야 한 것, 국경봉쇄는 필요없다고 한 것 모두 중국을 의식해서란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심지어 그는 “중국이 코로나 사태 대처를 잘하고 있다”고 칭찬까지 했지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WHO에 코로나19에 대한 중요 정보 공개와 팬데믹 경고를 늦춰달라고 한 첩보를 독일 연방정보국(BND)이 입수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지난 1월 28일 코로나19 관련 회담을 위해 베이징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지난 1월 28일 코로나19 관련 회담을 위해 베이징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WHO의 정치적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서 급속한 확산이 우려되는 국가에 한국‧이탈리아 등과 함께 일본을 언급했다가 그다음 날부터 뺐는데요. 일본 측이 “이들 나라와 같은 대열에 다루지 말아달라”고 한 요구가 수용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WHO의 친중 행보에 뿔이 난 미국은 결국 지난 8일 WHO 가입 72년 만에 공식 탈퇴를 선언했는데요. 앞서 미국이 탈퇴를 예고하자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미국과의 협력이 계속되길 희망한다”며 자세를 낮추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WHO에 연간 4억 달러(약 4800억원)를 내는 최대 자금 지원국입니다. 
 
아프리카 말라위의 한 어린이가 말라리아 예방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리카 말라위의 한 어린이가 말라리아 예방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중앙일보를 통해 “WHO는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오직 방역과 생명을 최고의 가치에 두는 초심을 회복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박 교수의 조언처럼 WHO가 어서 빨리 끝이 안 보이는 이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인류의 ‘아스클레피오스’가 되어주길 희망합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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