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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 오비추어리]인천상륙작전을 만든 사투의 다부동전투 그리고 백선엽

중앙일보 2020.07.11 01:04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전투에서 당시 백선엽 국군 1사단장이 참모들과 작전회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전투에서 당시 백선엽 국군 1사단장이 참모들과 작전회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피아(彼我)공방의  포화가 한달 내리 울부짖던 곳…/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들이 이제/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조지훈 「다부원에서」)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다부동(다부원)은 북한군의 침공에 마지막 남은 한반도 귀퉁이를 지키기 위해 지난 10일 별세한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국군이 결전을 벌인 곳이다. 당시 국군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 준장의 목숨을 건 사투가 없었다면 북한군은 부산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 
 
북한군의 남하에 대응해 국군과 유엔군이 구축한 낙동강전선 부도. [중앙포토]

북한군의 남하에 대응해 국군과 유엔군이 구축한 낙동강전선 부도. [중앙포토]

 
이 전투에 참전한 전자열씨는 “다부동 격전 뒤 고지를 오르는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많은 주검이 풍겨내는 냄새 때문이었다”고 증언했다.
 
전투는 참혹하고 치열했다. 당시 백 사단장은 부하들에게 “내가 등을 돌리면 나를 쏴라”고 말한 뒤 선두에 섰다. 백 장군은 굶고 지친 장병들에게 “여기서 물러서면 바다뿐이다. 후퇴하면 나라가 망한다. 내가 앞장서겠으니 나를 따르라”고 했다.
 
다부동 전투는 1950년 6월 25일 남침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대구의 운명은 촌각에 달렸다. 김일성은 마산-왜관-영덕을 잇는 낙동강 방어선을 뚫기 위해 4개 사단을 대구 축선에 집중, 국군 1사단을 공격했다. 그 중심이 다부동이다. 대구에서 불과 20㎞ 떨어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지역으로 유학산(839m)과 팔공산(1193m) 사이의 큰 골짜기다.
 
다부동전투 당시 국군이 엎드린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중앙포토]

다부동전투 당시 국군이 엎드린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중앙포토]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1일∼9월 24일 사이 55일 동안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은 5690여 명이, 국군과 미군은 3500여 명이 전사했다. 부상자까지 더해 남북이 2만75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캄캄한 밤에 지척의 거리에서 서로 쏘고 찌르고 후려쳤다. 어둠 속에 비명이 절규했다.
 
다부동 전투는 전세를 바꿨다. 북한군의 기세를 꺾었다. 북한군은 다부동 패전으로 낙동강 전선 돌파에 실패했다. 반면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을 고수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 전쟁은 역전됐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kim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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