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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도 하늘과 땅 차이…1200원부터 7000만원까지

중앙선데이 2020.07.11 00:04 694호 12면 지면보기
우산 썼다고 맞은 시절이 있었다.  

장마·땡볕 버팀목 되는 우산·양산의 세계

120여 년 전,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왔다. 한데, 외국인 선교사가 그날 우산을 썼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독립신문은 전한다.
장마 전선이 제주·남해에서 올라오고 있다. 비 오는 틈새로 뙤약볕이 내리쬔다. 장마를 즐기는 법, 태양을 피하는 법으로 우산과 양산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기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45호 우산장인 윤규상 명장이 만든 지우산. 아시아권 지우산은 생김새가 비슷해 한국의 지우산은 일본 우산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사진 비꽃]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45호 우산장인 윤규상 명장이 만든 지우산. 아시아권 지우산은 생김새가 비슷해 한국의 지우산은 일본 우산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사진 비꽃]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45호 우산장인 윤규상 명장이 만든 지우산. [사진 비꽃]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45호 우산장인 윤규상 명장이 만든 지우산. [사진 비꽃]

 
# 우산의 조상은 양산
지난 9일 전남 여수에서 만난 김여령(27)씨는 하늘과의 눈치싸움에서 졌다. 그는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어 6000원짜리 우산을 샀더니, 실내에 있을 때 비가 내렸을뿐"이라며 "대신 양산으로 썼다"고 말했다.
 
우산의 조상은 양산이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중국의 유적·유물에는 햇볕을 가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파라솔’이다. 우산(umbrella)의 어원은 라틴어 옴브라(ombra). 그늘을 뜻한다. 우산은 비가 아니라 햇볕을 막는 용도에서 출발했다는 얘기다.
  
전국적으로 장맛비가 내린 12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광장을 지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전국적으로 장맛비가 내린 12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광장을 지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7세기까지 유럽에서는 우산과 양산의 구분이 없었다. 우산(혹은 양산)은 여성이 쓴다는 인식이 강했다. 남자들은 비 오는 날 마차를 이용하거나 외투·모자를 쓰며 ‘센 척’했다. 18세기 영국의 조나스 한웨이가 당시로는 혁신인 우산을 쓰고 다녔다. 성 정체성이 문제시 됐고 돌팔매질을 당했다. 생업에 위협을 느낀 마부들은 마차로 그를 위협했다. 개화기 조선에서 선교사들이 봉변을 당한 것과 같이, 생소한 물건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었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연구관은 “우리가 현재 쓰는 우산은 개화기 때 선교사들이 들여왔다”며 “당시만 해도 우산은 하늘을 가린다는 이유로 평민들에게는 금기시된 물건”이라고 밝혔다.
  
하늘과 동격은 오직 임금이었다. 임금은 우산보다 양산을 썼다. 일산(日傘)이라고도 했다. 슬금슬금 고위공직자들도 썼다. 이 일산이 지방수령의 공덕을 기리는 만인산(萬人傘)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백성 1만 명이 이름을 새겨 수령께 올렸다. 천인산(千人傘)도 있다. 우·양산은 이처럼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높으신 분들이 햇볕을 피하는 만인산과 백성들이 비를 피하는 갈모, 대롱이(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 높으신 분들이 햇볕을 피하는 만인산과 백성들이 비를 피하는 갈모, 대롱이(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프랑스 루이 14세는 1740년에 접이 우산을 개발한 쟝 마리우스에게 우산 제조 독점권을 부여했다. 미셸 오르토(54)는 프랑스가 낳은 우산 장인이다. 2013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장인의 최고 영예인 ‘메티에르 아트’를 받았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3000여 점의 빈티지 우산을 모은 그는 이를 토대로 명품을 만든다. 지난해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프랑스인의 우산에 대한 사랑은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도 나온다.
 
프랑스의 우산 장인 미셸 오로토가 2019년 한국에서 연 ‘Summer Bloom-여름이 피다’전 포스터와 전시장 모습. [중앙포토]

프랑스의 우산 장인 미셸 오로토가 2019년 한국에서 연 ‘Summer Bloom-여름이 피다’전 포스터와 전시장 모습. [중앙포토]

이탈리아의 파소티가 흑돼지 송곳니로 만든 우산 손잡이. [사진 파소티]

이탈리아의 파소티가 흑돼지 송곳니로 만든 우산 손잡이. [사진 파소티]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도 우산을 중요한 아이템으로 여긴다. 파소티는 흑돼지 송곳니로 손잡이를 만든 우산도 내놨다. 파소티 코리아가 올해 선보이는 제품 중 최고가는 70만원. 크리스털로 만든 분홍색 해골 손잡이가 독특하다. 여기에 0을 두 개 더 보태 7000만원에 달하는 우산도 있다. 런던에 자리 잡은 빌리어네어꾸뛰르에서 2008년에 악어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내놓았다.
 
영국도 우산에서는 둘째라면 서럽다. 배우 콜린 퍼스가 영화 ‘킹스맨’에 들고나온 스웨인 애드니 브리그라는 브랜드가 있다. 이 우산은 영화에서 ‘신사의 품격’을 유지해주면서 살상 무기로 변신한다. 엘리자베스 2세 등 영국 왕실은 펄튼이라는 브랜드를 애용한다. 실용성을 강조한 명품이라는 평이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펼친 우산도 펄튼 제품이다. 곽기연 펄튼코리아 대표는 “우산은 몇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길게 써야 하는 내구재”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슈룹과 두색하늘처럼 명품 우산을 내건 업체도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한 영국 왕실이 애용하는 펄튼의 라인업. 왼쪽 아래가 배우 공유가 드리마 ‘도깨비’에서 쓴 우산이다. [사진 펄튼 코리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한 영국 왕실이 애용하는 펄튼의 라인업. 왼쪽 아래가 배우 공유가 드리마 ‘도깨비’에서 쓴 우산이다. [사진 펄튼 코리아]

비가 많이 내리는 일본에서는 1958년에 획기적인 우산을 개발했다. 화이트 로즈라는 회사에서 기존의 섬유 소재 우산에서 벗어나 비닐우산을 만든 것.이 회사는 1721년에 세워진 다케다 상점이 이름을 바꾼 곳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한 미국인 바이어가 일본에서 유행하는 비닐 우산을 보고 깜짝 놀라 수입하면서 전 세계에 퍼졌다.
 
# 수리는 비싸고, 분리수거 번거롭고
한국에서는 협립이 1956년부터 우산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당시 종이우산(지우산)을 쓰기도 했다. 1970년대는 파란 비닐우산의 전성기였다. 500원으로, 자장면 한그릇 값이었다. 이후 중국산이 들어왔다. 협립을 비롯한 국내 우산 제조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우산의 국내 최저가는 1200원. 편의점에서는 3500원 안팎이다. 협립코리아 관계자는 “우리도 현재 공장은 직영 형태로 중국에 있다”며 “국내 유통 우산의 원단은 국산이 있기도 하지만 살은 99%가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우산은 언제나, 싸게 살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쉽게 버리기도 한다.

빌리어네어꾸뛰르 만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산. 악어 가죽으로 만들어 2008년에 5만달러로 출시했다. 당시 환율로는 7000만원이었다. [중앙포토]

빌리어네어꾸뛰르 만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산. 악어 가죽으로 만들어 2008년에 5만달러로 출시했다. 당시 환율로는 7000만원이었다. [중앙포토]

1970년대를 풍미한 파란 비닐 우산.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인 500원이었다. [사진 보물섬인부산]

1970년대를 풍미한 파란 비닐 우산.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인 500원이었다. [사진 보물섬인부산]

경기도 일산에 사는 백경애(49)씨는 “지난 1년간 우산 10여 개가 이래저래 현관 옆 구석 차지하게 됐는데, 그 중엔 살이 부러진 것, 헤드 꼭지가 빠진 것도 몇 개 있다”며 "수리를 맡기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말했다. 부러진 살 하나 고치는 데 3000원이다. 헤드 꼭지만 500~1000원이다. 한 쇼핑센터의 잡화점 직원은 “헤드만 교체하지 않고 우산대를 통째로 바꾸기 때문에 5000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부러진 살 두 개 고치고 헤드를 끼우면 1만1000원이란 얘기다. 
 
우산은 또 버리자니 번거롭다. 분리수거 대상이라 방수 원단(옷감) 따로, 살(고철) 따로, 손잡이(플라스틱) 따로 버려야 한다. 
 
게다가 생활필수품이기는 하나 그다지 애지중지하지는 않는다. 실제 1~8호선 지하철에 놔두고 간 우산을 되찾은 비율(인계율)은 지난 2년간 45%. 올해 6월까지는 37%로 뚝 떨어졌다. 반면 분실물 1위인 휴대폰은 인계율 95%다. 서울 시청역 유실물센터의 선우해아늠(39) 주임은 “우산은 봄비 내리는 4월, 장마철인 7월, 태풍이 부는 9월에 분실이 잦은데, 연중 7월에 20% 넘게 몰린다”며 “분실 당일에 찾으러 오지 않으면 영영 이별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하철 유실물센터에서는 분실물을 7일간 보관한 뒤 경찰서에 보낸다. 9개월이 지나면 국가에 귀속된다. 우산의 경우에는 복지단체에 보내기도 한다. 상태가 안 좋은 일부는 폐기한다.

 
숫자로 보는 우산.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숫자로 보는 우산.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서울 1개 구에서 한 주에 버려지는 우산은 약 1톤. 전국에서 연간 4000만개가 폐기된다는 추정치도 있다. 그래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재활용을 유도하기 위해 무료 수선센터를 마련했다. 서울 강동구청 관계자는 “제 기능을 못 하는 우산이라도 쓸모 있는 재료가 있다”며 “기부를 받아 다시 구민들에게 무료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큐클리프라는 업체에서는 우산천을 재활용해 지갑·파우치를 만들기도 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우산이 너무 싸면 경제성을 따져 수리하지 않게 된다”며 “우산 쓰레기가 쌓이다 보니 지자체 등에서 공용 우산 개념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이마저 곳곳에 버려지기 일쑤”라고 밝혔다. 그는 “우산의 고급화와 수선 인프라가 확대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여러분의 우산은 안녕한지?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200만원 한지 우산, 인테리어용으로 팔려'
“실생활용보다는 인테리어용으로 주로 나간다.”
 
종이우산, 그러니까 지우산(紙雨傘)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만드는 윤규상(79) 명장의 말이다. 그는 전북 무형문화재 45호 우산장이다. '비꽃'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윤규상 명장이 전주 한지와 대나무를 이용해 지우산을 만들고 있다. [사진 비꽃]

윤규상 명장이 전주 한지와 대나무를 이용해 지우산을 만들고 있다. [사진 비꽃]

전주 한지에 들기름을 먹인다. 바짝, 오랫동안 말린다. 우산살과 대가 되는 대나무를 깎고 다듬는다. 쇠꼬챙이를 달궈 대나무에 구멍을 뚫는다. 몇 명이 분업으로 하던 일이다.

 

이젠 그걸 혼자 힘으로 한다. 윤 명장은 17세인 1957년부터 우산을 만들었다. 25세에 독립해 우산공장을 차렸다. 지우산은 1960년대까지, 비닐우산이 나오기 전에 많이 썼다. 50대 중후반 이상은 기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닐우산에 밀리면서 1985년에 사업을 접었다. 우산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다시 뛰어들었다.
 

아들 성호(41)씨는 반도체 회사에서 나와 지우산 제작의 유일한 이수자로 나섰다. 성호씨는 “생각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성호씨는 “웬만한 큰비라도 이 지우산으로 막을 수 있었다”며 “한 번 비를 맞으면 물기를 완전히 말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지우산 가격은 30~40만원이다. 파라솔 크기도 만든다. 주로 호텔 인테리어용으로 들어간다. 200만 원대다.
 

윤 명장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사실 돈벌이는 되지 않는다. 나는 예전부터 기술이 있었으니까 한다. 아들이 해보겠다고 뛰어들었다. 원활하게 돌고 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지우산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마지막까지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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