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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2000개 치고, 200m 앞 전봇대 10번 맞혀야 연습 끝냈다

중앙선데이 2020.07.11 00:02 694호 24면 지면보기

스포츠 오디세이 ‘수퍼땅콩’ 김미현

‘수퍼 땅콩’ ‘작은 거인’이라 불리며 여자 골프에 큰 획을 그었던 김미현(43) 프로를 만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작고 왜소했다. 저 체격으로 어떻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8승을 했나 싶었다.
 

LPGA 8승 ‘우드·숏게임 여왕’
남다른 노력으로 ‘작은 키’ 극복
이젠 골퍼 도전 아들 키우는 아줌마

코스 길어지면서 전략 없고 ‘밋밋’
거리 집착 후배들 과도한 스윙 걱정

그를 만난 곳은 인천 논현동에 있는 김미현골프월드였다. 10년 전에 지은 대규모 골프연습장이다. 레슨 프로들이 꿈나무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주로 아마추어 골퍼들이 연습을 하고 레슨도 받는다. 김 프로는 아들 예성(11)군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유도 스타 이원희와 이혼한 뒤 그는 외아들을 키우는 데 삶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 골프 선수가 꿈인 예성이와 하루 종일 함께 연습하고, 밥 먹고, 시간을 보낸다. 인터뷰 중간에 예성이가 쑥 들어와 “엄마, 숏게임장 갔다 와도 돼?” 하고 물었다. 김 프로는 “그래, 장난치지 말고”라며 만면에 ‘엄마 미소’를 지었다.
 
열한 살 아들이 드라이버 비거리 200m
 
김미현 프로가 인천 논현동에 있는 김미현골프월드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경빈 기자

김미현 프로가 인천 논현동에 있는 김미현골프월드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경빈 기자

예성이 운동신경이 남다르지요?
“유전자는 거짓말 못 합니다. 어떤 운동을 시켜도 금세 익혀요. 드라이버 비거리가 200m까지 나가니까 골프 배운 경력에 비하면 장타죠. 스윙을 제가 가르쳤지만 정신적인 면을 더 강조합니다. 필드 나갔을 때 잘 안되면 남자니까 짜증 내는 경우가 있어요. 스윙 못하는 건 그럴 수 있어도 짜증을 내거나, 그로 인해 다음 샷이 나빠지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치죠. 마음 다스리지 못하면 골프는 끝이거든요.”
 
키 때문에 핸디캡을 느낀 적이 있나요?
“국내에선 그냥 그런가 싶었는데 미국 가서 키 크고 덩치 좋은 선수들 상대하면서 실감했죠. 사람들 기대치도 크지 않았어요. ‘쟤는 체격조건도 안 좋고 힘들 거야’ 했는데 성공하니까 가치가 더 올라갔죠. 핸디캡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우드나 숏게임에 집중했어요. 저를 박세리 선수와 붙여서 동갑내기 라이벌이라고 하시는데 세리의 업적은 저보다 훨씬 높거든요. 세리가 얼마나 억울하겠어요(웃음). 그런데도 저를 동급에 놓아주는 건 핸디캡을 뛰어넘은 부분을 인정해서였겠죠.”
 
남다른 노력이 있었겠네요.
“한번 타석에 들어가면 밥 먹고 화장실 갈 때 빼고는 나오지 않았어요. 오전수업 받고 연습장 가서 1000개든 2000개든 목표 숫자를 채운 뒤 그날 연습이 잘됐는지를 시험했죠. 제가 다닌 연습장에는 타석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전봇대가 하나 있었는데, 드라이버로 공을 쳐서 지름 30cm 정도 되는 그 전봇대를 10번 맞혀야 장갑을 벗었어요.”
 
그 긴 시간을 초집중했나요?
“스윙이나 자세를 연구하기보다는 목표지점에 공을 떨어뜨리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골프연습장엔 원 안에 거리를 표시하는 ‘120’ 같은 숫자가 있잖아요. 저는 그 원이 아니라 ‘2’ 또는 ‘1’자를 맞히려고 했어요. 거리가 짧아질수록 목표물을 더 작게 했죠. 50m라면 근처 볼 하나를 맞혀야 다음 단계로 가고, 30m면 볼을 끼워서 미는 기구 세 번째 구멍에 넣는다, 이런 식이죠. 가끔씩 멍때릴 때도 있지만 금방 정신 차립니다. 체격은 작지만 체력은 좋았거든요. 체력이 딸리면 정신력이 흐트러져요.”
 
2007년 LPGA 셈그룹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당시 김미현. [중앙포토]

2007년 LPGA 셈그룹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당시 김미현. [중앙포토]

김미현 프로는 부산에서 자랐다. 사업을 하는 부친 김정길씨와 함께 초등학교 5학년에 골프를 시작했다. 일찍 두각을 나타냈지만 키가 워낙 작았고 청소년기에도 잘 크지 않았다고 한다. 고2 때 인천으로 올라왔고, 대학 1학년 마치고 프로로 전향했다. IMF 구제금융 사태로 국내 프로 대회가 싹 없어져 일본을 가려고 준비하던 중에 박세리가 미국에서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세리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체격조건·언어·인종차별 같은 건 상상도 못 하고 건너간 거죠. 아빠가 운전하는 밴 타고 미 대륙을 누볐습니다. 방송에는 좀 안쓰럽게 나왔지만 사실 다닐 만했어요. 한 주 벌어 한 주 지내는 형편이라 좀 쪼들렸지만 한 주 쓸 만큼은 벌었고, 교민들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김미현은 ‘우드의 여왕’이다. “‘어떻게 그렇게 우드를 잘 치세요?’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열심히 한 것밖에요. 저는 우드보다 숏게임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숏게임에 자신 있으니까 우드를 잡는 거죠. 우드 샷이 그린을 넘어가도 숏게임으로 파세이브 할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벙커 세이브 1등을 한 시즌도 있고, 퍼트 라인도 정말 잘 봐요”라고 그는 설명했다.
 
여성 골퍼를 위해 우드 잘 치는 팁을 하나만 주시죠.
“우드는 채를 빨리 끌고 내려와야 해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연습볼을 많이 치면 힘이 생깁니다.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는 장점을 확실하게 내 걸로 만드는 데 시간을 투자하세요. ‘난 퍼팅은 자신 있어. 연습 안 해도 돼’ 하면서 안 되는 드라이버만 엄청 치면서 체력 낭비하고 스트레스 받고 가는 분들이 많아요.”
  
여성 골퍼는 패션도 폼도 예쁜 게 좋아
 
김미현은 체격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오버 스윙을 했다. [중앙포토]

김미현은 체격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오버 스윙을 했다. [중앙포토]

골프는 전략이 중요하겠죠?
“물론이죠. ‘앞에 해저드 있으니 잘라 가세요’ 말을 듣고는 ‘이거 잘 맞으면 빠질 텐데’ 하면서 굳이 그 채를 들고 백스윙 때까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걸로 가볍게 치면 되지’ 하는데 한 클럽 작은 걸로 자신 있게 치는 게 낫죠.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해요. 저도 다른 선수들이 넘길 수 있는 해저드를 보면 망설일 때가 많거든요. ‘조금만 잘 맞으면, 뒷바람만 좀 불어주면 나도 넘길 텐데’ 하는 동요가 오면 미스샷이 납니다. 그런 마음을 내려놓을 때 성적이 좋았어요.”
 
코스가 점점 길어지는 추세죠.
“제가 은퇴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웃음). 비거리가 짧아서 불리한 건 물론이고, 남들 세 걸음 갈 때 저는 다섯 걸음 걸어야 하잖아요. 골프장이 길어지면서 코스가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졌어요. 나무가 우거지고 개울도 흐르고, 코스가 아기자기해야 선수들이 전략을 짜고 샷을 하잖아요. 멀리 치고 또 멀리 쳐서 홀 가까이 붙으면 버디 하고,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요.”
 
후배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롱런하는 선수가 많지 않은 거 같아요. ‘그렇게 치면 나이 들어서 아파. 다쳐’ 라고 얘기해 줘요. 특히 남자들이 거리에 집착해서 과도한 스윙을 하는 걸 보면 멋있기보다는 ‘저러면 몸에 무리가 가는데. 내가 그랬는데…’ 싶어요. 여기저기 아프니까 아이도 신경이 쓰이나봐요. ‘몸을 아꼈어야 하는데, 내 몸 갉아먹고 살았구나’ 싶은 거죠.”
 
운동보다는 패션에 관심 두는 여성 골퍼들이 많다고 하네요.
“저는 여성 회원들한테 원 포인트 레슨을 해 주면서 ‘이왕이면 폼도 예쁘게 치세요’ 합니다. 치마 입고 다리를 남자처럼 벌리는 것도 썩 좋아보이지 않고요. 메이크업도 예쁘게 하고, 화사하게 소풍 나온 기분으로 라운딩을 즐기면 스트레스도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복장이 아니면 괜찮겠죠.”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이렇게 계속 아줌마로 살 거예요(웃음). 예성이가 자기 앞가림 할 때까지 건강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제 차에는 짐이 잔뜩 실려 있어서 언제든 단둘이 떠날 수 있죠. 어느 날은 ‘여수 밤바다’ 노래에 꽂혀 오후에 출발했는데 새벽 두 시에 여수 도착했어요. 요 녀석이 가끔 퉁명스럽게 대할 때가 있어서 ‘난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니 친구는 아냐. 건방지게 까불지 말라고’ 그러면 아직은 무서워합니다. 하하.”
 
김미현은…
●1977년 1월 13일생
●키 1m53㎝, 별명 ‘수퍼 땅콩’
●부산진여고-성균관대
●1996∼2000년 KLPGA 우승 11회
●1999년 LPGA 2승, 신인왕
●LPGA 통산 8승
●숏게임ㆍ우드 샷 뛰어남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인터뷰 전문은 월간중앙 8월호 〈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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