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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의 액션 쾌감…인간성의 폐허를 질주하는 ‘반도’

중앙일보 2020.07.09 19:49
'부산행' 4년 후를 그린 좀비 재난영화 '반도'에서 주연 강동원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탈출했지만, 피치 못할 제안을 받고 폐허가 된 반도에 다시 돌아온 생존자 정석 역을 맡았다. [사진 NEW]

'부산행' 4년 후를 그린 좀비 재난영화 '반도'에서 주연 강동원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탈출했지만, 피치 못할 제안을 받고 폐허가 된 반도에 다시 돌아온 생존자 정석 역을 맡았다. [사진 NEW]

‘부산행’의 속편이라는 꼬리표는 잊어라.
아귀 같은 좀비떼, 한국 땅에서 펼쳐지는 필사의 도주라는 공통점은 같지만 2020년 찾아온 ‘반도’는 한층 격렬한 액션과 스펙터클에 충실하다. 현대 문명이 말살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들개가 되고 좀비와 구분 되지 않는 ‘개싸움’을 벌인다. 희망을 향한 여정이 아니라 지옥 탈출이 목적일 때 ‘인간성’의 고민 따윈 사치다. 좀비 바이러스를 매개로 하는 ‘연니버스’(연상호식 유니버스라는 뜻)가 이번엔 이렇게 서바이벌게임 같은 가상세계에서 관객을 롤러코스터 태운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속편…15일 개봉
좀비떼보다 절망적인 야만의 인간군상
압도적 스펙터클 볼거리, 드라마는 '밋밋'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침체된 극장가를 되살릴 기대작으로 꼽혀온 연상호 감독의 신작 ‘반도’가 9일 베일을 벗었다. 올 칸국제영화제에 공식초청됐지만 영화제가 취소되면서 이날 언론 시사가 ‘월드 프리미어’가 됐다. 총제작비 190억원대로 코로나 사태 이후 공개된 한국영화 중에 가장 대규모다.
 
‘부산행’ 4년 후를 그린 이번 영화는 이 땅 전체가 좀비 바이러스로 감염돼 전 세계로부터 고립됐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단 하루 만에 정부 기능이 멈춘 땅은 암흑의 무법 천지가 됐다. 한국에서 탈출한 이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난민이자 기피 대상으로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군인 출신 정석(강동원)은 거액 제안을 받고 제한 시간 내 지정된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 나온다는 미션 하에 버려진 땅으로 되돌아간다.
 

압도적인 세트, 소품이 돼버린 좀비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출연. [사진 NEW]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출연. [사진 NEW]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출연. [사진 NEW]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출연. [사진 NEW]

2016년 ‘부산행’은 한국 영화에서 드물었던 좀비 소재를 재난블록버스터에 본격 도입해 1157만 관객을 빨아들였다. 그새 넷플릭스 ‘킹덤’을 위시해 ‘창궐’ ‘#살아있다’ 등 좀비물이 쏟아지면서 더 이상 소재 자체는 신선하지 않다. 이를 대체한 승부수가 ‘한국 최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Apocalyptic fiction·멸망 이후 세계를 그린 장르)’다. 뉴욕을 ‘고담 시티’로 변형한 ‘배트맨’ 시리즈처럼, 좀비가 쥐떼처럼 창궐하는 서울 도심을 스크린에 구현한 것 자체가 ‘반도’의 첫째 볼거리다.
 
핵전쟁이라도 벌어진 듯 폐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와 고층건물을 휘감고 자란 덩굴 식물, 육지로 떠내려온 선박 등이 방치된 4년을 드러낸다. 나라 전체가 공동묘지처럼 변한 이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들개’로 불린다. 전작에서 관객을 옥죄었던 ‘감염의 공포’ 따위는 없다. 어둠에 취약하고 빛과 소리에 민감한 좀비의 특성은 어린아이가 조종해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좀비떼는 돌진하는 차량을 가로막는 쓰레기더미처럼, 혹은 고가도로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는 장애물쯤으로 치부된다. 앞서 ‘부산행“과 ‘염력’(2018) 등을 연 감독과 함께 했던 이목원 미술 감독 등 미술팀과 음악, ‘부산행’과 ‘킹덤’의 전영 안무가가 다시 합류해 완성도를 높였다.
 

진짜 야만은 인간이 만든 경기장에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출연. [사진 NEW]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출연. [사진 NEW]

이런 비인간의 세상에서 ‘야만’을 주도하는 건 오히려 인간이다. 구조의 희망이 사라진 세상에서 밤의 지배자가 된 631부대는 한때 음식점‧옷가게가 늘어섰던 쇼핑몰을 아지트 삼아 지옥도를 즐긴다. 콜로세움을 방불케 하는 물웅덩이 무대에서 인간들은 죄수처럼 번호를 부여받아 네 발로 공격하는 좀비들에 맨몸으로 대항한다. 이처럼 “이성이 무너진 세상, 야만성이 지배하는 세상”(연상호 감독)을 강조하지만, 실은 우리 현실에서 이미 존재하는 풍경과 닮았다.
 
속도전에 치중한 영화는 황 중사(김민재)와 서 대위(구교환) 등 631부대원들에게 별다른 전사를 제시하지 않는다. 각자 어떻게 살아남아 모였을지 모를 이들이 제풀에 좀비떼에게 당하는 장면은 별다른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631부대 손아귀의 철민(김도윤)이 겪을 공포감과 절망도 오락거리가 된 ‘숨바꼭질’ 액션에 가려 관객의 감정이입을 이끌지 못한다. “미안해 이런 세상에 살게 해서”라는 어른들의 한탄은 ‘이런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당찬 어린이들에 비추어 공허하게 들린다.
 

오락에 충실한 강동원 액션과 카체이싱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출연. [사진 NEW]

연상호 감독의 K-좀비물 흥행작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그려냈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출연. [사진 NEW]

‘부산행’에서 공유가 체현했던 부성애와 가족 구출 책임감은 민정(이정현)의 모성애로 대체됐다. 차량 31대가 지나갈 동안 구조받지 못하고 폐허에 남겨졌던 그는 준이(이레), 유진(이예원) 두 딸에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김 노인(권해효)까지 이 지옥에서 살려보내겠다는 투지의 눈빛으로 화면을 장악한다. 대범하게 차량 질주(카 체이싱)를 해내는 준이나 RC카(일종의 무선 조종 장난감 차량)로 좀비를 따돌리는 유진의 활약이 기존 재난영화의 ‘어린이=약자’ 통념을 깨는 활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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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분 러닝타임을 리드하는 에너지는 사실상 강동원의 총기 액션과 이정현 일행 등의 카 체이싱에서 나온다. 군인 출신으로서 자유자재로 총기를 다루며 막강한 좀비떼를 쓸어버리는 강동원의 액션은 외화 ‘본 시리즈’ 같은 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묵시록적 세계로 잠입해서 최후까지 생존을 도모해야 할 동기가 애초에 강력하지 않아 마무리도 싱겁게 느껴진다. 감염의 공포 속에 마스크를 쓴 채 영화를 볼 관객들로선 오히려 ‘부산행’의 울림이 현실적일지 모른다. ‘반도’는 그 세계로부터 도피하는 오락거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폐허가 된 쇼핑몰에서 환호지르는 631부대가 우리 자화상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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