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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주총 안 거친 보수 받다가 수십억 토해낸 회장님

중앙일보 2020.07.09 12:00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25)

 
해마다 약 10만 개의 주식회사가 설립됩니다. 법인이라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것이 바로 주식회사인데요. 상법에는 주식회사보다 폐쇄성이 강한 유한회사, 유한책임회사 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활발히 활용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주식회사를 선호하는 편이지요.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입니다. 하지만 바쁜 다수의 주주가 회사 업무에 일일이 관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주주는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의사결정을 합니다. 물론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은 주주총회에서도 합니다. 이사회에서는 대표이사를 선정하고 그 대표이사가 회사업무를 집행합니다. 다만 주주는 감사(감사위원회)를 선임해 이사를 감사(감시)합니다. 자산총액이 500억 원이 넘는 주식회사라면 독립된 감사까지 받아야 합니다. 어려운 말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지만 다수의 주주가 회사 업무에 일일이 관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주주들은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의사결정을 합니다. [사진 pixnio]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지만 다수의 주주가 회사 업무에 일일이 관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주주들은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의사결정을 합니다. [사진 pixnio]

 
그러나 주식회사에서 정식으로 주주총회, 이사회까지 열고 의사를 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회장, 사장 지시에 따라 일사천리로 의사 결정하고, 문제가 되면 그때야 부랴부랴 의사록을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경우에도 절차만 생략했을 뿐 주주의 의사에 부합하는 경우라면 이를 인정하는 것이 관행이라면 관행이었습니다. 어차피 주주가 동의하거나 승인할 것이라면 굳이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최근 그런 관행에 제동을 가하는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A는 주식회사인 X사의 회장이자 대표이사로서 2008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무려 약 182억 원의 보수를 받았습니다. 상법 제388조는 회사 임원의 보수는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정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X사는 A의 보수를 정하는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X사의 주주는 주식회사인 Y사가 유일했습니다. 또 다른 법인이 1인 주주였던 셈이지요.
 
Y사의 주주는 주식회사인 Z사 A였습니다. Z사는 대표이사 C와 그 가족들이 주주였고요. 복잡한 지배구조지만 쉽게 말해 X사의 주주는 실질적으로는 C와 A였던 것입니다.
 
A 이사가 퇴임한 후 X사는 A를 상대로 과다하게 지급된 182억의 보수를 내놓으라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자, A는 오히려 X사가 52억 원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면서 맞소송을 했습니다. A는 실질적인 주주인 C와 자신이 승인해 X사의 주주총회결의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X사 인사팀에서 임원별 구체적 연봉 액수를 기재한 문건을 Z사의 대표이사 C에게 보고해 결재받았습니다. 하급심은 A 주장을 받아들여 보수를 반환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X사가 A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대법원 2020. 6. 4. 선고 2016다241515, 2016다241522)
 
대법원은 1인회사가 아닌 주식회사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1인회사 아닌 주식회사는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의사를 결정하라는 취지입니다. [사진 pexels]

대법원은 1인회사가 아닌 주식회사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1인회사 아닌 주식회사는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의사를 결정하라는 취지입니다. [사진 pexels]

 
대법원은 1인 회사가 아닌 주식회사에서는, ‘C가 동의하거나 승인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주주총회에서 그러한 내용의 결의가 이루어질 것이 명백하거나 그러한 주주총회 결의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여기서 1인회사는 말 그대로 주주가 한명 뿐인 회사입니다. 회사의 주인이 한명이라면 그 주주가 마음대로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의 보수도 내키는 대로 줄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한 위험을 감수하면 됩니다.
 
따라서 1인 회사는 굳이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1인회사가 아닌 주식회사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설사 의결정족수를 충족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가 평소에 동의·승인했더라도 주주총회 결의에서 같은 내용의 결의가 이루어질 것이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1인회사 아닌 주식회사는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의사를 결정하라는 취지입니다.
 
만약 A가 C의 승인을 토대로 자신의 보수를 결정하는 X사 주주총회 결의 의사록을 제때 작성해 뒀다면, X사에 수십억 원의 보수를 되돌려 주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A로서는 수십억 원을 날린 실로 뼈아픈 실책이지요. 어쨌든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이제 주주총회나 이사회 결의를 생략하던 주식회사 업무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적어도 적절한 주주총회 소집통지와 의사록 작성은 꼭 해둬야 뒤탈이 없겠지요.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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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김용우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필진

[김용우의 갑을전쟁] 갑질이 난무하는 사회다. 하지만 법 앞에 권력이 군림할 수 없다. 갑이 을이 될 수도, 을이 갑이 될 수도 있다. 분쟁의 최전선에서 쌓은 내공을 통해 갑질에 대처하는 법(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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