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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 서예가 이렇게 소중한 장르이던가

중앙일보 2020.07.09 00:53 종합 31면 지면보기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속되면서 거의 모든 분야가 말할 수 없는 손실과 상처를 입고 있다. 미술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처럼 공들인 기획전이 일반에게 제대로 공개되지 못한 채 막을 내려야 하는 허망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 본래 미술관의 전시 스케줄은 최소 1년 전에 확정된 것이기 때문에 변경할 수도, 연기할 수도 없다.
 

서예는 전통미술의 당당한 장르
한국 서예, 중국 서법, 일본 서도
한글 서예도 다양한 멋을 구현
IT 시대 생활 캘리그래피의 원천

이런 상태에서 지난 3월 30일에 온라인으로 개막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한국 근현대 서예 특별전인 〈미술관에 서(書)〉라는 전시회가 5월 3주간의 공개 이후 휴관에 들어가 이달 말에 끝나고 만다는 것은 너무도 억울한 일이다. 근현대 서예가의 대표작 300여점과 관련 자료 70여점으로 꾸며진 이 전시회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서예의 어제와 오늘을 본격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지필묵의 시대가 끝나고 펜글씨 시대도 지나고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아이티 시대로 바뀌면서 깊은 침체에 빠져 있지만 서예라는 장르가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운 예술세계인가를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전체 4부로 구성된 이 전시회의 제1부는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라는 프롤로그로 서화가 하나로 어우러진 전통을 상기시켜 준다. 근원 김용준, 수화 김환기의 작품에서는 그림과 글씨가 행복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고암 이응노, 남관은 문자추상에로 나아갔으며, 이우환의 회화와 김종영의 조각에서는 서예의 필획이 창작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예가 근현대 미술가에게 창작의 중요한 원천이자 자양분이었음을 여실히 말해준다.
 
서희환, <높이 올라 멀리 보라>, 1978년, 종이에 먹, 84.0x64.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희환, <높이 올라 멀리 보라>, 1978년, 종이에 먹, 84.0x64.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제2부는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글씨가 그 사람이다’라는 주제로 일제강점기부터 활약한 한국 근현대 서예 제1세대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모던한 형태미를 추구한 소전 손재형, 필획의 조형성을 굳게 견지한 일중 김충현과 여초 김응현 형제, 획에서 칼맛을 느끼게 하는 검여 유희강 등의 개성적인 작품들에서는 서예의 멋과 힘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여초 김응현의 광개토대왕비의 웅혼한 서체와 금강경 5천5백 자의 흐트러짐 없는 대작은 그 공력에 압도되고, 오른손이 마비되자 왼손으로 극복한 검여 유희강의 좌수서는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려준다. 그리고 제주도의 소암 현중화는 취필로, 전주의 강암 송성용은 현대적 문기로 지방 서예계의 존재감을 확고히 드러내주고 있다.
 
아울러 한글 서예의 다양한 모습도 보여준다. 소전 손재형의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일중 김충현의 ‘유관순 기념비’. 여초 김응현의 ‘세종어제훈민정음’ 등은 한글서예의 고전으로 삼을 만한 것이며, 갈물 이철경의 궁체와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는 평보 서희환의 파격적인 한글예서체, 원곡 김기승의 성경글씨, 쇠귀 신영복의 ‘어깨동무체’ 등은 한글 서예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디스플레이도 대단히 현대적이어서 한문 서예는 검은 톤, 한글서예는 흰 톤으로 분리해 놓았다.
 
제3부는 ‘다시 서예: 현대 서예의 실험과 파격’이라는 주제로 1세대들에게 서예를 배운 제2세대의 개성 넘치는 작품세계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초정 권창륜, 하석 박원규 등 오늘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원로 중진 서예가로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지만 대체로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전이된 현대서예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제4부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는 21세기의 일상 속에 소비되는 서예의 ‘팝 아트’ 코너이다. 흔히 캘리그래피, 타이포그래피라 불리며 책 표지, 영화 포스터, TV프로그램의 제목, 술을 비롯한 상품 이름 디자인에 활용된 글씨는 서예가 우리 생활 속에 깊이 파고 들어있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예는 결코 잊혀져가는 지난날의 장르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깊은 각성에 이르게 된다.
 
사실 서예는 서양에 대한 동양 문화의 진수이다. 지필묵을 매개로 한 같은 글씨이지만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 우리는 서예(書藝)라고 부르고 있는 데에서 한중일 문화의 보편성과 독자성이 간취된다. 우리는 모름지기 서예 문화를 중국, 일본의 그것과 보조를 맞추어가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2018년 국회에서는 ‘서예진흥법’이 통과된 바 있다. 서예계는 내심 이 전시회를 계기로 ‘서예진흥법’ 시행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중등학교에서 서예교육의 부활, 예술의전당 서예관의 위상 재정립, 국립서예박물관의 건립 등 당면과제가 도출되기를 희망했는데 이렇게 관람조차 막히고 만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미술감상법이 나왔다. 지난 3월30일 유튜브를 통해 중개된 ‘온라인 오픈’에서는 전시 기획을 담당한 배원정 학예사가 4개 전시실 전체를 안내한 90분짜리 동영상이 소개되었는데 단기간에 무려 7만7천여 명이 접속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를 본 열람자들은 한결같이 ‘서예가 이렇게 소중한 장르이던가’라는 새로운 일깨움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지금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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