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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김현미밖에 없나

중앙일보 2020.07.09 00:5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 2일 대통령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렀을 때, 이번엔 김 장관이 혼쭐 좀 나겠거니 했다. 김 장관은 3년간 21번의 대책을 내놓고도 ‘투기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 잡겠다던 강남 아파트는 훨훨 날고 있다. 김 장관에 대한 문책의 강도가 셀수록 대통령의 부동산 안정 의지가 강하게 전달될 것이었다. 청와대가 전날 예고까지 한 터였다. 시장에 강한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굳이 김 장관만 콕 집어 예고하고 부를 이유가 없다.
 

당장 경질해도 시원찮을 판에
힘 더 실어주고 전권 맡기다니
부동산 정치 잘했다고 그런 건가

그런데 아니었다. 되레 대통령은 김현미에게 더 힘을 실어 줬다. 공급과 세금 대책까지 주문했다. “발굴해서라도 (주택 공급을) 늘려 달라”는 주문은 주무 장관이니 그럴 수 있다. 신혼부부·청년의 취득세를 낮추고 “종합부동산세를 최우선으로 처리하라”는 지침은 과했다. 세금은 경제부총리 소관이다. 기획재정부에 세제실이 있고, 경제정책국 산하에 부동산팀도 따로 있다. 그런데도 홍남기 부총리를 제쳐놓고 김현미를 불러 이벤트 하듯 전권을 쥐여 줬다.
 
대통령이 모르고 그랬을 리는 없다. 시장은 벌써 ‘김현미 사령탑’ ‘홍남기 패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과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22번째 대책도 실패할 것이다. 21번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했는데 뭐가 달라지겠나. 항간에선 문재인 정부의 진짜 목표가 ‘부동산 안정’이 아니라 ‘부동산 양극화’라고 의심한다. 지지층 확보를 위해 1%대 99%, 편 가르기를 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강남 아파트값 기획 인상설’까지 나오겠나. 김현미에게 힘을 더 실어 주는 것은 이런 민심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바란다면 김현미부터 당장 경질해야 한다.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첫째, 부동산 정치를 한다는 오해를 풀 수 있다. 대통령이 전문가 대신 정치인 장관을 쓴다면 대개 이유는 한 가지다. 정치가 필요해서다. 김현미는 장관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국토부 업무를 다뤄 본 적이 없다. 그런 김현미를 장관에 앉혔을 때 시장은 “대통령이 부동산 정치를 하려 한다”고 받아들였다. 그러니 김현미를 문책하지 않으면 “임명권자의 의도대로 김현미 장관이 부동산 정치를 잘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술 더 떠 “강남 아파트값이 뛰고 양극화·불평등이 심해져 강남에 대한 대중의 증오가 폭발하도록 하는 게 대통령의 속뜻이었구나” 하고 오해하게 될 것이다. 이래서야 강남 집값이 잡힐 리 없다.
 
둘째, 일벌백계·읍참마속해야 한다. 대통령은 6일 “지금 최고의 민생 과제는 부동산”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걸 대통령도 잘 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패장을 되레 중용하면 또 다른 오해를 살 수 있다. 일은 못 해도 대통령과 친분만 잘 챙기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내각에 줄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이 측근에게 자상하다는 건 잘 안다. 조국 사태 때도 “조국에게 큰 마음의 빚을 졌다”고 한 대통령이다. 김 장관에 대해서도 총선 출마를 막고, 장관직에 붙잡아 놓은 “마음의 빚”이 클 수 있겠다. 그럴수록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성난 민심이 가라앉고 정책에 영이 선다. 김여정의 한마디에 통일부 장관을 경질한 것과 비교해 보라. 계속 김현미를 고집하면 실력만 없는 게 아니라 사람도 없다는 소리나 듣게 될 것이다.
 
셋째, 선수 보호를 위해서라도 바꿔 줘야 한다. 에이스 투수도 연속 안타를 맞으면 견딜 수 없다. 아끼는 투수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교체해 주지 않는 건 감독의 직분을 포기하는 것이다. 때를 놓치면 그 게임만 잃는 게 아니다. 시즌 전체를 잃을 수 있다. 선수 생명이 끝나는 건 물론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여권에서도 문책론이 나온다. 맷집 좋다는 김현미도 더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부동산은 특히 발화성이 큰 이슈다. 때를 놓치면 부동산 민심만 잃는 게 아니다. 정권 전체를 잃을 수 있다. 선수 생명이 끝나는 건 물론이요, 감독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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