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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폭탄이 된 민주당의 ‘다주택 매각 서약서’

중앙일보 2020.07.09 00:29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을 앞두고 “다주택자는 2년 안에 한 채만 남기고 죄다 팔겠다”는 서약서를 출마자 전원에게 받았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지난해 12월 이인영 당시 원내대표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청와대 다주택자 1채만 남기고 매각’ 권고에 호응해 당도 같은 조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게 발단이었다.
 

‘다주택 의원 다 판다’ 서약서 선전
경실련 공개 요구 한달 넘게 침묵
쇼 대신 ‘보수 정부 역설’ 배울 때

그런데 이 서약서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에 177명 당선자 전원으로부터 받았다는 ‘부동산 매각 서약서’를 공개하고 매각 현황을 밝히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 서약서도, 매각 현황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김태년 원내대표, 이인영 전 원내대표에게 서약서와 매각 현황을 공개해달라는 공문을 여러 번 보냈는데 8일 현재까지 전혀 답변을 받지 못했다. 김태년 측에서 ‘전임자 때 일이라 우리는 모르니 이인영 의원이나 윤호중 사무총장에 문의하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지난달 19일 윤호중 총장에게도 공문을 보냈지만 역시 지금껏 답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인영 의원실은 “이 의원은 ‘매각하자’는 메시지만 냈을 뿐이고 서약서 받는 건 당에서 했다. 당에 알아보라. 공문을 받은 바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당을 지휘하는 윤 사무총장에게 물어보니 “경실련에서 공문을 한차례 보내왔지만, 사무총장실이 아니라 윤호중 의원실로 보낸 데다 내용이 사무처 소관이라 업무가 진행되지 못했다”고 했다. 서약서 한번 구경하기 힘들다.
 
이뿐 아니다. 경실련은 지난달 3일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에게도 공문을 보냈다. 청와대의 다주택 공직자들이 노 실장 권고대로 집을 팔았는지 현황을 공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도 꿀 먹은 벙어리였다. 경실련 관계자는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 청와대로부터 답변 한 줄 받지 못했다.”며 “청와대 행정관에 전화하니 ‘(노영민 실장에) 전달은 됐고 답변도 줄 텐데, 언제 줄지는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청와대가 이메일 주소도 알려주지 않아 팩스로 공문을 보내야 했다”고도 했다.
 
경실련은 7일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이인영·김태년 가면을 쓴 두 청년이 ‘서약서’ 폭탄을 서로에게 돌리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서약서도 공개 못 하는 총선 보여주기식 서약 사과하라!”고 외쳤다. 한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서약서 공개가 안 되는 본질적 이유는 따로 있다. 의원들이 집을 팔기 싫은 거다. 이는 당 지도부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서약서가 공개되면 어쨌든 집을 팔아야 하는 부담이 높아질 것 아닌가. 또 의원들이 집을 판다고 해도 누구에게 팔았는지, 꼼수는 없었는지 감시해야 하는 데 이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니 가급적 서약서 공개를 피하고 싶을 거다.”
 
이러니 경실련에선 “부동산만 보면 이명박·박근혜가 노무현·문재인보다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김헌동 부동산건설개혁 본부장의 일갈이다. “노무현 정부 5년간 4억짜리 아파트가 14억원으로 올랐고 문재인 정부 3년간 12억짜리 강남 아파트가 20억원으로 올랐다. 2016년 12억원 하던 이낙연 전 총리의 강남 아파트는 그가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는 동안 19억5000만원이 됐다. 3년 사이 7억여원이 오른 거다. 이게 ‘부동산과의 전쟁’을 부르짖는 진보 정부의 실상이다.”
 
이런 딜레마를 탈출할 해법은 뭘까. 민주당은 ‘보수 정부의 역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김헌동 본부장의 말이다. “보수 정부가 부동산은 더 실질적이고 친서민적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는 취약한 정통성을 메꾸려고 토지공개념 등 개혁적 정책을 폈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분양가 상한제를 밀고 나가고, ‘반값 아파트’법을 당론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가 안 팔려 미분양이 백만채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아파트가 너무 안 팔려 ‘어음 줄 테니 아파트 좀 사라’고 했는데도 안 살 정도가 됐다. 집값이 내려가는데 누가 사겠나? 오히려 이 기조를 무너뜨린 게 당시 민주당 박기춘 의원이 위원장이던 국회 국토위원회였다. 여기서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면서 집값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저금리로 유동성이 3000조 넘게 풀린 상황에서 재산세·종부세 올린다고 집값이 내려갈 리 만무하다. 집값이 뛰는 근본 원인을 해소해야지, 보여 주기용이란 비판을 자초한 ‘서약서’ 퍼포먼스 따위로 넘어가려 한다면 민심의 매서운 채찍을 피할 수 없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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