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편 가르기 프레임이 부동산 정책 망친 것 아닌가

중앙일보 2020.07.09 00:08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세균 국무총리가 어제 “다주택 고위 공직자는 하루빨리 집을 매각하라”고 지시했다. “고위 공직자들이 집을 여러 채 갖고 있으면 어떤 부동산 정책을 내놓아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버티던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달 안에 서울 반포의 아파트를 처분하겠다고 했다. 국회의원 176명 가운데 40명이 다주택자인 여당은 하루 앞서 의원 부동산 실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투기 세력 규정해 세금 때리기 일변도
공격 대상 만드는 정치 쇼에서 벗어나
시장 원리 맞춘 제대로 된 정책 세워야

문재인 정부는 그간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국민에게는 “빨리 팔라”는 메시지를 연신 전했다. 그러고서 자신들은 다주택을 쥐고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이런 정치인과 고위 관료에게 국민은 배신감을 느꼈다. 치솟은 집값 앞에서 “평생 내 집 마련하기 어렵겠다”는 좌절감마저 맛봐야 했다. 잇따라 쏟아진 다주택 매각 지시는 이렇게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조치다. 그러나 지금 국민에게 꼭 필요한 건 분노 달래기보다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 불어넣기다. 보여주기식 ‘부동산 쇼’가 아니라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이다.
 
정부가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방향은 보유세·거래세 인상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 정부가 강력히 추진했다가 역효과만 봤던 바로 그 정책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재정 중독에 빠진 정부의 세수 늘리기 대책이라는 혹평이 나온다. 세금 폭탄은 ‘부동산 대물림’을 늘리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의 부동산 증여는 지난해보다 49% 급증했다. 양도소득세가 증여세와 차이 없을 정도로 높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비슷하게 세금 내면서 팔아치우느니 자식이나 손주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여당의 윤호중 사무총장부터 집 한 채를 아들에게 증여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재인 정부는 3년 동안 무려 21번의 부동산 대책 발표와 실패를 되풀이했다. 대출을 조이고, 규제 지역을 늘리고, 세금 폭탄을 안겼으나 결과는 지칠 줄 모르는 집값·전셋값 급등이었다. 특목고를 없애겠다는 교육 정책은 서울 강남3구와 목동의 집값을 자극했다. 그러는 사이 서울 중위 아파트 가격은 52%나 올랐다. 엄청나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다. 그래도 이 정부는 배운 게 없다. 도심 재건축·재개발을 늘리고, 용적률을 높이며, 거래세를 낮춰 매물을 유도함으로써 공급을 대폭 늘리려는 노력은 외면했다. 오직 투기 세력을 규정해 세금과 규제를 때리는 일변도다. 집값·전세가 오르는 부작용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부동산 세금 때리기가 ‘공격 대상을 만들어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 쇼’로 비치는 이유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처럼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편 가르기 프레임뿐인 듯하다.
 
징벌적·보복적 세금 부과는 일시적 속풀이는 될지언정 국민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줄 수는 없다. “1주택만 남기고 모두 처분하라”는 지시 또한 마찬가지다. 다수가 살고 싶어 하는 곳에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교육에 따른 주거 수요를 분산시키며, 거래세를 낮춰 다주택자의 퇴로를 넓히고, 벤처 투자처럼 생산적인 방면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게 하는 등의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시장의 원리를 따르는 건 경제 정책의 기본이다. 분열과 갈등의 편 가르기를 멈추고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