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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험도 없이 정규직…공공부문에 만연한 ‘인국공 불공정’

중앙일보 2020.07.09 00:07 종합 30면 지면보기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비정규직 보안검색원 1900명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터져나온 불공정 문제는 인국공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중앙일보가 미래통합당 유경준 의원실과 853개 공공부문(중앙행정기관·지자체·교육기관·공기업 등)의 정규직 전환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충격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과 고용노동부의 정규직 전환 드라이브에 따라 1월 말 기준으로 853개 공공부문 비정규직(41만5602명)의 41.9%(17만3943명)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310개 공공부문은 시험 같은 기본적인 검증 과정도 없이 묻지 마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성이 의심되는 이른바 일괄 전환 방식이었다. 경쟁 채용 방식으로 전환한 곳은 조사 대상의 4.5%(38개소)뿐이었다. 474개소는 일괄 전환과 경쟁 채용을 혼용했다.
 
물론 예산 등 재정 여건이 된다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비정규직의 처우는 최대한 개선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재정 현실이 열악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리하게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실제로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적자 공기업이 수두룩하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정치인들의 선심 공약 때문에 비정규직이 무더기로 정규직으로 전환될 경우 미취업 청년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생산성 향상도 없이 비정규직이 정규직 일자리를 꿰차면 신규 채용 여력은 크게 줄어든다. 이번 전수조사에서도 “예산이 부족해 정규직 전환 이후 신규 채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가뜩이나 코로나19까지 겹쳐 ‘코로나 세대’ 청년들의 신규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다. 취업준비생들은 100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는데, 비정규직은 시험도 없이 정규직 일자리를 챙겼다. 인국공 사태에 청년들이 분노한 이유다.
 
무리한 정규직 전환의 부작용은 더 있다. 정규직 전환 이후 임금 체계 개편 등 경영 효율화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공공부문은 더 방만해지고, 고용 유지 비용은 결국 납세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평등·공정·정의를 유달리 강조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갔다. 이제 정치에 의한 고용시장 왜곡을 더는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선심 공약이 기득권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의 희망을 앗아가는 불공정에 지금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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