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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홍콩 페그제까지 흔드나

중앙일보 2020.07.09 00:03 경제 4면 지면보기
홍콩의 야경. 국제 금융 허브로서의 홍콩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사진 홍콩관광청]

홍콩의 야경. 국제 금융 허브로서의 홍콩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사진 홍콩관광청]

미국이 국제 금융 허브 홍콩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하고 있다. 달러 페그제다. 페그제는 홍콩 달러의 통화 가치 안정성을 유지해 금융 허브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이다. 때문에 이를 공격하는 것은 홍콩의 지위를 위태롭게 할 결정적 한 방이 될 수 있다.
 

“HSBC, 중국에 조아려 이득 못 봐”
금융허브 지위 약화 조치 가능성
관세특혜 박탈 이어 초강수 만지작
미 은행·기업도 타격, 실행 미지수

블룸버그 통신은 8일 미국 행정부 내부 인사의 말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위 측근들이 홍콩 달러 페그제 약화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했다. 홍콩은행들이 매입할 수 있는 미국 달러에 한도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미국이 페그제 약화라는 예민한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것은 홍콩이 미국과 중국 간 신(新) 냉전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지난달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화시키면서 두 나라의 신경전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홍콩에 부여했던 관세 혜택 등의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여기에 이어 달러 페그제 약화 조치까지 취해지면 홍콩의 지위를 뒤흔들 수 있다.
 
홍콩 달러 페그(peg·못) 제도는 기축 통화인 미국 달러와 홍콩 달러가 정해진 구간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안정성을 보장한 장치다. 홍콩이 1983년 시행한 제도다. 미국도 홍콩의 중국 반환을 5년 앞둔 지난 92년 시행한 홍콩정책법에 페그제를 명문화했다. 초기엔 1 미국달러=7.8 홍콩 달러로 출발했다.
 
시행 30년이 다 돼가지만 미국 달러 당 7.75~7.85 홍콩 달러 구간으로 고정돼있다. 페그제 덕에 투자자와 기업은 미국 달러를 홍콩에서 환전 손실 없이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홍콩이 국제 금융 허브로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이 페그제 약화라는 극약 처방을 만지작거리는 데는 HSBC은행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HSBC가 홍콩보안법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이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국양제(一國兩制)인 홍콩엔 중앙은행이 없다. 대신 HSBC나 스탠다드차타드·중국은행 등 시중은행 3곳이 홍콩 달러를 발권한다. 대신 이들 은행은 홍콩 달러 발권 규모에 상응하는 미국 달러를 사실상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홍콩 금융관리국(HKMA)에 낸다. 그러면 HKMA가 외환보유액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환율을 페그 구간에서 조절해왔다. 만약 HSBC 등 시중은행이 미국 달러 매입 제한을 받게 되면 홍콩 달러 발권 및 페그제에 도미노로 타격이 가해진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HSBC 등 시중 은행을 처벌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HSBC를 겨냥해 “중국 정부에 머리를 조아려봤자 별 이득을 못 볼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가 페그제 폐지라는 칼을 빼 드는 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조치로 타격을 입는 것이 중국이 아닌 홍콩의 시중은행이기 때문이다. 또한 충격파가 이 은행들과 거래하는 미국 은행 및 기업에도 미칠 수 있어서다.
 
홍콩 금융 시장의 반응도 미지근하다. 최근 페그제 약화 관측이 꾸준히 나왔지만 홍콩 달러는 흔들리지 않았다. 8일 현재 미국달러 당 환율은 7.75 홍콩 달러로 페그제 구간 안이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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