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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시간 다르다"…제주판 '살인의 추억' 항소심도 무죄

중앙일보 2020.07.08 12:21
2018년 제주 보육교사 살인 혐의로 구속된 박모씨가 제주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최충일 기자

2018년 제주 보육교사 살인 혐의로 구속된 박모씨가 제주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린 11년 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고인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간접 증거만으로는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며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11년 전 '제주 보육교사 살인' 다시 미궁

 광주고법 제주 형사1부(재판장 왕정옥)는 보육교사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혐의(강간 등 살인)로 기소된 박모(51)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택시기사였던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오전 3시8분쯤 제주시 용담동에서 보육교사 A씨(당시 27세·여)를 태우고 애월읍 방향으로 향하던 중 택시 안에서 이씨를 성폭행하려 했으나 반항하자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인근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검찰은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수사기관은 피고인이 범인임을 전제로 사건을 추적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이 구체적으로 증명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의 택시 뒷좌석과 트렁크에서 동물털이 발견됐지만 이를 피해자의 무스탕 뒷 목 부분에서 나온 섬유와 동일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했다. 폐쇄회로TV(CCTV) 증거에 대해서도 “증거물 속 CCTV 촬영시간이 실제 시간과 달라 증명력이 높지 않다”며 “영상 속 차량도 당시 피고인이 운전한 택시와 동일하다고 확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2018년 제주 보육교사 살인 혐의로 구속된 박모씨가 제주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최충일 기자

2018년 제주 보육교사 살인 혐의로 구속된 박모씨가 제주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 경찰은 2016년 2월 장기미제 전담팀을 꾸리면서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재개했다. 이후 경찰은 박씨가 운행하던 택시의 운전석, 트렁크 속, 옷가지에서 A씨가 사망 당시 착용한 옷과 유사한 무스탕 털과 실오라기 등을 발견해 박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확보된 증거물을 토대로 2018년 5월 18일 박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해당 증거가 박씨의 범행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검찰은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에도 보강수사를 진행해 2018년 12월 박씨를 구속했다. 숨진 A씨의 피부와 소지품에서도 박씨가 범행 당시 착용한 것과 유사한 셔츠 실오라기를 찾는 등 추가 증거가 확보돼서다.
 
 검찰은 사건 당일 택시 이동경로가 찍힌 CCTV 증거를 토대로 사건 당일 박씨가 차량에서 A씨와 신체적 접촉을 했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사건 직후인 2009년에도 조사를 받았지만 증거가 없어 풀려났다. 용의자의 예상 경로 CCTV에도 포착됐고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에서도 거짓 반응 나왔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지난달 25일 제주경찰청에서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가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관련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달 25일 제주경찰청에서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가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관련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당시 수사가 난관에 부딪혔던 또 다른 원인은 숨진 이씨의 사망시간이 분명하지 않아서였다. 경찰은 당초 사망추정 시간을 실종 당일인 2월 1일로 판단했다. 하지만 부검의는 시신 발견 하루 전인 2월 7일로 추정했다. 시신의 체온이 주변의 기온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신의 체온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주변 기온과 비슷해진다.
 
 실종 후에도 일주일가량 살아있었다는 부검 소견이 나오면서 경찰 수사는 혼선을 겪었다. 이에 검·경은 2018년 4월 법의학자인 이정빈 가천대 석좌 교수와 함께 동물사체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당초 사망 추정시간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확인한 후 박씨를 재판에 넘겼다. 
 
 박씨는 이날 선고 직후 “언론과 검찰, 경찰 모두가 나에게 족쇄였다. 그것들이 나의 모든 것을 잃게 했다. 너무 힘들다. 그만하자”라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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