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5년 전 요절한 여성화가 최욱경 작품, 내년 퐁피두 전시에

중앙일보 2020.07.08 11:36
45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추상화가 최욱경의 생전 모습. 1971년 31세 때다. [국제갤러리]

45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추상화가 최욱경의 생전 모습. 1971년 31세 때다. [국제갤러리]

35년 전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한국 여성화가 최욱경(1940~1985)의 작품이 내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리는 대규모 기획전을 통해 세계 관람객과 만난다. 퐁피두센터는 내년 5월 5일~9월 6일 'Women in Abstraction' 전시에서 최욱경의 색채추상 작품 3점을 소개할 예정이다. 
 

내년 5월 개막 'Women in Abstraction'
세계 여성 추상화가 112인 작업 조명
"국제무대서 작품 가치 인정받는 기회"
이후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서 열려

이 전시는 퐁피두센터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rcel)이 기획한 것으로 세계의 여성 추상화가 112인의 작품 400여 점을 통해 여성 추상화가와 페미니즘과의 관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다. 힐마 아프 클린트, 루이스 브루주아, 바버라 헵워스 등 세계적인 여성 거장들의 작품이 총출동한다. 이어 전시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옮겨 2021년 10월 8일부터 2022년 1월 30일까지 열린다. 두 기관의 전시 기간은 각 4개월씩, 총 8개월에 이른다. 
 
작고한 국내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인 미술기관의 대규모 기획전에서 비중 있게 소개되는 것은 한국 미술사에서 드문 일이다. 더구나 한국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 화가의 작품이 국제적인 전시에서 세계 거장 작가들과 나란히 하고 조명받을 기회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욱경은 어떤 작가? 

최욱경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필치로 한국 화단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작가다. 
 
1940년 출판사 '교학도서 주식회사'를 창설한 최상윤과 조하진 사이에 4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일찍이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10세 때부터 김기창(1914~2001), 박래현(1920~1976) 부부의 화실에서 개인 지도를 받을 정도로 부친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으며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건 주 크랜브룩 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968~1971년 3년간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신세계 화랑에서 귀국 개인전을 열고 이후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하며 단청과 민화 등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를 연구하기도 했다. 
 
1974년 미국에서 열린 초대전을 계기로 3년 간의 한국 생활을 접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던 최욱경은 1978년에 귀국해 영남대 사범대 회화과 부교수로 강단에 섰으며 1981년부터 덕성여대 교수로 일하다가 1985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개성 뚜렷한 색채감각 

최욱경, Untitled, 960년대, Acrylic, oil, and oil pastel on paper, 62 x 47.5 cm.[국제갤러리]

최욱경, Untitled, 960년대, Acrylic, oil, and oil pastel on paper, 62 x 47.5 cm.[국제갤러리]

최욱경, Untitled, 1960년대, Paper collage, acrylic, and oil pastel on paper, 25 x 32.5cm. 국제갤러리]

최욱경, Untitled, 1960년대, Paper collage, acrylic, and oil pastel on paper, 25 x 32.5cm. 국제갤러리]

최욱경은 화가로 활동한 20여 년의 짧은 시간 동안 5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미국 유학 시절 접한 추상표현주의를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한 후 숱한 실험 끝에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초기 작품에선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붓질과 강렬한 원색의 대비가 두드러졌고, 1970년대엔 형태와 색채, 구성에 대한 체계적인 실험이 이어졌다. 1978년 귀국해 1985년 사망하기까지 그의 작품은 광선에 따라 변화하는 색채를 표현하며 화면이 더 밝은 파스텔 빛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갤러리는 2005년 5월 최욱경 20주기 회고전을 개최한 데 이어 지난 2016년 8월엔 미국 체류 시기의 회화 작품 70여점을 선보였다. 2013년 가나아트센터에서도 최욱경 전시가 열린 바 있다. 
 

"강렬한 색채 그 자체가 조형" 

최욱경, Untitled, 1960년대, Acrylic on hardboard, 34 x 40cm.[국제갤러리]

최욱경, Untitled, 1960년대, Acrylic on hardboard, 34 x 40cm.[국제갤러리]

최욱경의 60년대 색채 추상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국제갤러리 전시장 전경. [국제갤러리]

최욱경의 60년대 색채 추상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국제갤러리 전시장 전경. [국제갤러리]

 최욱경, Untitled, 974 Ink and pen on paper, 28 x 25cm. [국제갤러리]

최욱경, Untitled, 974 Ink and pen on paper, 28 x 25cm. [국제갤러리]

오는 7월 31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최욱경 개인전 전시장 전경. [국제갤러리]

오는 7월 31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최욱경 개인전 전시장 전경. [국제갤러리]

현재 국제갤러리에선 최욱경 개인전 'Wook-kyung Choi'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18일 개막해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작가 사후 국제갤러리에서 여는 세 번째 개인전으로, 흑백 잉크 드로잉부터 회화, 콜라주 등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밍크, 목탄, 콩테를 이용한 드로잉과 판화 등 흑백 작품과 다양한 사이즈의 컬러 회화 작업이 매혹적이다. 
 
미술평론가 고 이경성(전 국립현대미술관장,1919~2009)은 1987년 평론에서 "최욱경의 경우 색채는 그 자체로서 형태가 된다"면서 "최욱경의 작품은 강렬한 조형의 힘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고요한 설득이 아니라 강렬한 주장으로 보는 이의 눈을 통해 마음의 중심부에 도달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2016년 최욱경 전시를 큐레이팅한 김성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최욱경은 19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과 단색화 중심의 모노크롬 경향 사이에서 대담한 제스처와 강렬한 원색 추상회화를 통해 한국 추상회화의 다양성을 확보한 여성작가"라며 "이번 퐁피두 전시를 통해 최욱경은 추상미술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욱경 작가 스스로 페미니즘 활동은 하지 않았으나 인종차별과 반전 시위에 반응하는 드로잉을 통해 사회참여를 시도했다"며 "최욱경은 한국 추상회화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은주 기자의 다른 기사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