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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정치인을 좋아하세요?

중앙일보 2020.07.07 00:19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혁진 소설가

이혁진 소설가

얼마 전 웃긴 질문을 받았다. 정치인 A를 좋아하냐는 것이었다. 상대방은 ‘설마, 아니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시치미를 떼며 그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진지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뭘 안다고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상대방의 기대를 장난스럽게 툭 쳐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치인 호오 구분에서 벗어나
그들이 주는 서비스 이용하면 돼
지켜야할 건 민주주의 원칙

하지만 상대방은 나와 농담할 마음이 없었다. 대화는 뚝 끊겼고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침묵 끝에 우리는 가까스로 다음 화제로 옮겨갔고 이내 자리를 마무리 지었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씁쓸했지만 피식 웃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치인을 좋아하냐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은 국민의 정치적 결정을 직업적으로 대신하는 사람들이다. 그 대가로 정치인은 신분을 보장받고 특정 책임을 면하며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다. 덥수룩하던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어 준 미용사나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준 택시기사에게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을 상상해 봐도 그런 말을 한다면 이상한 쪽은 미용사나 택시기사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이다.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진지하고 단호하게 다뤄야 할 원칙에 관한 이야기다. 민주주의 이외의 정치체제에서 정치인은 혈통이나 종교·재력이나 세력 따위로 결정된다. 오직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모든 사람이 직업을 선택하듯 정치인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정치를 모든 종류의 기득권에서 떼어내 공적 직업의 영역으로 위치시키려는 투쟁의 역사였다. 그것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셀 수 없는 시행착오와 막대한 희생을 치렀고 무수한 묘비로 남았다. 그것은 결코 농담할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웃긴 것은 모든 독재자가 자국 국민들에게서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엄청난 사랑을 받는다.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떤 홍콩시민들은 홍콩의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는 홍콩시민이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체포당하는데도 박수치고 환성을 지른다. 김정은 위원장도 사랑받기로는 그 못지않다. 북한 대표선수들은 그의 현수막 사진이 빗물에 젖는 것조차 차마 볼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러대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우리 역시 다를 것이 없다.
 
지금 홍콩은 1980년의 광주와 다르지 않고, 지도자에 대한 북한 대표선수들의 태도는 탄핵 전후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들던 사람들과 똑같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 우리는 편리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독재자를 사랑할 만큼 어리석을 수 있냐고.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그렇게 사랑해 주기 때문에 독재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정치인은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상한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반기며 더 많은 사람이 이상해져서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올 표가 늘기 때문만이 아니다. 반대표도 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정치인은 이득을 본다. 시민사회는 분열하고 그만큼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지는 굳건해지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은 반(反)지지자들을 이기기 위해 열 올려 지지하고, 그러기 위해 정치인의 종복 노릇을 자처한다. 반지지자들 역시 지지자들을 이기기 위해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인을 내세우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싸움이 격화할수록 시민사회 전체의 역량은 약소해진다. 반면 그 지원을 받은 정치인들의 역량은 강성해진다. 자연히 정치인은 시민사회 위에 군림한다. 어느 정치인, 어느 정당을 지지했든 모든 국민은 패배자이자 피지배자로 전락한다. 민주주의는 모래탑처럼 와해한다.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준 권리가 바로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 호오(好惡)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대가를 지불하고 정치인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한편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부과한 의무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수호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색하고 진지하게 말해야 할 것은 정치인도, 정당도 아니다. 민주주의이며 그 울타리 안에서 다른 모든 것은 각자의 행동에 따라 때로 하찮고 웃기는 것이 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을 운동선수나 영화배우처럼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말하는 이 상황은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하지만 그 역시 민주주의다. 우리와 한팀은 정치인이 아니라 다른 시민이며 공통의 토대는 민주주의여야 한다.
 
이혁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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