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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주 팔아 수모 당한 버핏, 11조 규모 천연가스에 투자

중앙일보 2020.07.07 00:04 경제 2면 지면보기
워런 버핏

워런 버핏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주춤하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에너지 기업을 사들였다. 버핏은 5일(현지시간) 미국 도미니언에너지의 천연가스 운송과 저장 부문을 인수하는 97억 달러(11조1600억원) 규모의 거래를 결정했다. 인수대금은 40억 달러지만 부채 57억 달러를 함께 넘겨받는 조건이다.
 

중국이 수입 늘리는 미국 천연가스
미·중무역협상 지렛대 역할 감안
버핏, 가스 운송·저장 기업 매입

버핏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의 탄탄한 에너지 포트폴리오에 천연가스 자산을 더하게 돼 아주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버핏은 이 거래로 가스 파이프라인 1만2390㎞와 가스 250억m³를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손에 넣었다.
 
버핏이 에너지 기업을 사들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버크셔해서웨이에너지는미드아메리칸에너지와NV에너지, 퍼시픽콥유틸리티 등을 거느린 중간 지주회사다. 에너지 부문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캐나다에도 천연가스 등을 판다. 지난해 버크셔해서웨이 전체 순이익 239억7000만 달러 가운데 12%(28억5000만 달러)가 에너지에서 나왔다.
 
요즘 미국 천연가스 시세는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천연가스는 미국 난방 연료의 25%를 차지한다. 중국 변수도 있다. 중국은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을 늘리고 있다.
 
버핏

버핏

글로벌 시장조사회사인 IHS마킷의 이대진 연구위원은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천연가스 수입을 중요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핏은 천연가스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미·중 무역갈등 변수까지 고려해 베팅한 셈이다.
 
천연가스 채굴보다는 파이프라인과 저장에 비중을 둔 기업을 인수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와중에 돈 번 사람은 금을 캐는 사람이 아니라 청바지 장사였다는 역사적 교훈을 활용한 듯하다.
 
버핏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잇따른 투자 실패로 입길에 올랐다. 1분기에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보면서 아메리칸·델타·사우스웨스트·유나이티드항공 등 미 4대 항공주를 모두 처분했다. 하지만 미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은 뒤 항공주는 반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버핏이 항공주를 처분한 것은 실수”라고 꼬집었다.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던 그에겐 수모였다.
 
버핏은 3월 말까지 현금 1372억 달러(157조7800억원)를 쌓아두기만 하고 투자대상을 정하지 못했다. 실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적인 회사채 인수 때문에 실적 전망은 좋지만 일시적으로 돈줄이 마른 기업이 매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인수합병(M&A) 시장이 활기를 잃었다. 자의 반 타의 반 침묵해야 했던 버핏이 마침내 움직였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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