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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이 장면] 사라진 시간

중앙일보 2020.07.03 00:31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정진영 감독의 첫 영화 ‘사라진 시간’은 두 개의 삶을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는 마치 평행 우주처럼 두 세계로 나뉜다. 전반부는 주인공 박형구(조진웅)가 형사인 세상이다. 그는 결혼해 두 아이가 있고, 화재 사건 수사를 위해 시골 마을에 왔다. 후반부는 박형구가 교사인 세상이다. 술에 취한 후 일어난 형구는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미혼인 상태다. 아직 자신이 형사라고 생각하기에 형구는 혼란스럽지만, 조금씩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영화이장면용 사진

그영화이장면용 사진

‘사라진 시간’은 원인과 결과의 연쇄로 이뤄지는 기승전결 중심의 장르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우화에 가까우며, 이야기 자체가 지닌 상징과 비유의 힘으로 전진한다. 흥미로운 건 캐릭터의 변화다. 다르면서도 같은 두 세계를 살아가며, 형구는 조금씩 변한다. 타인의 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형구는, 비로소 나를 벗어나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
 
이때 그는 우연히 만난 초희(이선빈)가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울지 마요. 혼자만 그런 게 아니니까.” 여기서 초희를 위로하는 형구의 모습은, 그리고 조진웅의 담담한 표정 연기는, ‘사라진 시간’이 보여주는 진심의 얼굴이다. 우린 좀 더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서 공감하며 다가갈 순 없는 걸까? 영화의 원래 제목은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 ‘카펜터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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