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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27)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중앙일보 2020.07.02 00:07 종합 27면 지면보기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조헌 (1544~1592)
지당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내 끼인제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에 무심한 갈매기만 오락가락 하노매
- 청구영언


위기에는 나라를 누가 지키나
 
연못에 비가 뿌리고 버드나무는 안개에 가려져 있다. 뱃사공은 어디로 가고 빈 배만 매여 있는가? 해 질 무렵 아무 생각 없는 갈매기만 오락가락하는데···. 참으로 서경적인 작품이다. 일상의 발길을 잠시 멈추고 바라보아야 보이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중봉 조헌은 보은현감으로 근무할 때 대간의 모함을 받아 파직되자 옥천 밤티(栗峙)이 들어가 학문에 몰두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일본 사신 겐소(玄蘇)가 명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고 조정에 청하자 도끼를 지고 대궐에 나아가 사신의 목을 치든지 자신을 죽여달라고 지부상소(持斧上疏)하고 영·호남의 왜적 방비책을 올렸으나 묵살되었다.
 
이듬해 4월 동래성이 함락되자 5월에 격문을 띄워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치고 청주성을 수복하였다. 영규의 승병과 합세해 금산에서 고바야카 다카카게가 이끄는 왜적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몰살되니 칠백의총(七百義塜)의 주인공이다. 이 덕택에 곡창 호남이 지켜지면서 7년 전란을 견딜 수 있었으니 이름 없는 그들의 공이다. 평화 시에는 벼슬을 하고, 물러나면 학문을 닦고, 전란에는 칼을 들고 일어서는 선비 정신의 표상이었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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