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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쫓아온다" 환각 증상···무서운 코로나, 뇌까지 공격하나

중앙일보 2020.07.01 05:00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악마가 나를 쫓아와요" "일본 실험실의 쥐가 되었어요" 

 
미국 테네시주(州) 프랭클린에 사는 31세 여성 킴 빅토리가 겪은 환각 증세들이다. 지난 봄 코로나19에 감염돼 병원 신세를 졌다. 

중환자실 입원 환자의 2/3 이상 경험
'인공호흡기·신경안정제·수면부족' 원인 지목
"산소고갈에 뇌 손상 가능성" 추정도

 
당시 침대에 누워있던 그는 갑자기 몸이 마비됐다. 산 채로 불에 태워지는 환각에 빠졌는데 누군가 때맞춰 구출했다고 한다. 그런 뒤에도 한동안 환각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킴은 갑자기 멋진 유람선의 얼음 조각상이 됐다가 일본의 한 실험실 쥐가 되어 고양이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환각 증상은) 정말 너무 무서운 경험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환자실 입원 환자의 2/3 이상 경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환각 증상을 겪은 이는 이 여성뿐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는 28일(현지시간) 중증 입원 환자들 상당수가 매우 선명한 환각 등 섬망 증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섬망은 생생한 환각이나 환청 등 의식장애를 겪으면서 이상행동을 하는 증상을 뜻한다. 앞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뇌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는데 실제 중증 환자들이 입원 치료 과정에서 인지 기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은 비율로 보고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 가운데 2/3~3/4 가량이 다양한 방식의 환각과 환청, 섬망 증상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NYT는 이런 현상을 '몸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정신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정신과 책임자 로렌스 카플란 박사는 "(코로나로 인한 섬망 증상은)실제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파괴적"이라고 말했다.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에 입원해 4일간 삽관 치료를 받은 57세 남성 아나톨리오 라이오스도 생생한 환각을 겪었다. 그는 인공호흡기를 떼는 순간 섬광과 함께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응급실 바닥에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담당 의사에게 "저 사람들이 보이나요? 저들이 나를 죽이려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의사에게 "병원 문에 방탄 기능이 있냐"고도 물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조작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조작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공호흡기·신경안정제·수면부족'이 위험 조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섬망의 직접적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섬망 증세가 잘 발현되는 조건은 있다. 장기간 인공 호흡기나 신경안정제를 쓰면서 수면 부족에 시달린 경우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신착란 분야 전문가 샤론 이노우에 박사는 "그것(인공호흡기, 신경안정제, 수면부족)은 섬망을 일으키는 퍼펙트스톰"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에 걸렸어도 경증인 환자들은 인공호흡기나 신경안정제, 수면 부족을 한꺼번에 경험하지 않는다.
 
반면 코로나19가 뇌를 손상해 일어나는 증상이란 설명도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 사잔 파텔 박사는 코로나19 환자들이 겪는 섬망이 바이러스 자체의 영향일 수도 있고, 바이러스에 대한 신체의 반응이 섬망을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환자들이 흔히 겪는 산소고갈이 폐 외에도 뇌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산소고갈로 신장이 손상돼 섬망을 촉진하는 물질을 생성할 수도 있다. 샤론 이노우에 박사는 "일부 환자의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순환 장애를 유발해 섬망을 유발할 수 있는 작은 혈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영국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린 5세 아이가 환각에 시달린 사례도 보고됐다.지난 3월 영국 일간 밀러 등에 따르면 잉글랜드 우스터셔에 사는 알피라는 소년은 코로나19에 확진된 후 고열과 함께 환각 증상을 보였다. 환각의 고통에 아이는 엄마에게 "저는 죽게 되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4월 코로나19 환자 중 발작이나 환각 증상을 겪는 사례가 보고됐다는 학계의 논문을 인용 보도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등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뇌 손상 사례가 보고됐는데 환각증세가 있어 병원을 찾았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는 내용이다. WSJ은 코로나19가 신경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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