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영웅들에게 경례!”(1)

중앙일보 2020.07.01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70년 전 6월 25일 지옥 같은 참상을 몰고 온 전쟁이 시작되었다. 6·25 한국전쟁이었다. 그로 인해 죽고 다치고, 부모와 형제자매와 자식을 잃은 사람들은 부지기수였다. 시체들은 산더미였고 인간들의 피는 강을 덮었다. 시산혈해(屍山血海)였다.
 

한국전쟁, 현대한국과 세계의 탯줄
전후 발전의 씨·흙·물·빛의 역할
한국과 세계 참전자들은 모두 영웅
깊은 감사와 경례로 위로와 연대를

임진강, 미아리고개, 춘천전투, 다부동·낙동강 전선, 인천상륙작전, 평양진격 가도, 철원, 지리산, 노근리, 국립묘지…. 오래전에 전쟁의 현장을 걸으며 온 나라, 온 마을, 온 집, 온 삶들이 전쟁터였음을 깨닫는다. 전사자 명부를 발견하던 날 손발이 덜덜 떨리고 숨이 막히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한 끼도 먹지 못하고 한숨도 자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켜켜이 쌓아놓았던 유골들, 또 유해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셀 수없이 많은, 10만을 넘는 저 끝없는 위패들 앞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한국과 세계를 살린 영웅들의 이름인데도. 얼마나 황급하게, 얼마나 창졸간에 시대와 조국의 부름에 튀어나가야 했고, 얼마나 치열하게, 얼마나 순식간에 이승을 하직하였기에 신원조차 확인하지 못한단 말인가.
 
숱한 군인들과 당사자들과 체험자들을 만나 묻고 듣고, 같이 걷고 울며 지옥조차 이들이 겪은 전쟁보다는 나을 거라고 상상하곤 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필연적 우연 때문에 그 세대의 삶들은 이 광풍과 뗄 수 없었다. 그것은 전연 불가능했다. 물론 전후 한국과 세계의 역사도 그러하다.
 
한국전쟁 70주년 당일과 이튿날은 참전자들과 함께 기념행사에 참여했다. 70주년의 대표 표제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영웅들에게 경례” “평화를 위한 기억, 그리고 한 걸음”이다. “조국은 당신들을 절대 잊지 않습니다”를 증명한 147구(이 중 141구는 신원확인이 안 되었다. 대체 이 비극의 끝은 어디인가?)의 유해송환 행사는 장엄하고 엄숙했다. 숙연하고 경건했다. 유해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고 운구될 때 곁의 참전자들 눈동자는 젖어있었다. 나도, 다른 참석자들도 같았다. 연신 일어나 경례하고 묵념하고 가슴에 손을 얹어도 부족했다.
 
같은 인간으로서 마땅한 존경과 감사는 이런 영웅들에게 바치는 것이다. 영웅은 반신(半神)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들은 죽어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평화, 나라와 세계를 지킨 반신들이었다. 오늘 우리가 바쳐야 할 가장 깊고 가장 경건한 경례는 남을 위해 죽어간 그들을 위한 상례(喪禮)이자 의례여야 한다.
 
인간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해 자기 나라의 한국전쟁 참전과 희생을 말하며 자신들의 한국과 한국인들과의 특별한 인연, 그리고 전후 한국의 자유와 번영에 대해 상찬하는 22개 참전국 정상들의 특별 메시지는 이 전쟁이 오늘의 한국과 세계를 주조했고, 또 그 둘의 관계를 결정한 세계전쟁-세계시민 전쟁이었다는 점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당시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이 똑같은 세계시민이었다는 점도 깨닫는다.
 
“한국은 당신들을 절대 잊지 않습니다”는 감사 마음을 실제로 보여준,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한국인들이 참전국들에 보낸 마스크에 대해 깊은 사의를 표하는 생존참전자들의 말들은 모두를 뭉클하게 했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다시 한국으로 갈 것이다” “70년 전 상황이 다시 오면 나는 또 한국에 있을 것이다” “한국은 무에서 유를 만든 나라” “한국인들은 세계의 자유를 구한 국민”이라는 말에 이르면 인간연대와 감동의 절정을 보는 듯하다.
 
한국전쟁은 현대한국과 현대세계의 결정적인 출발점이었다. 전쟁은 그 세대 모두에게 “6·25 난리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전쟁도 이겨냈는데 이것쯤 하나 못 이기나?”는 반면적인 절대 생명 의지를 창조한 정신형성의 샘물이었다. 또한 그것은 한국국민과 시민을 만든 국민형성 전쟁이었고, 나라의 근본체제와 국제관계의 틀을 만든 국가형성 전쟁이었고, 세계질서를 주조한 세계형성 전쟁이었다. 그러니 참전자와 희생자들이 어찌 영웅이 아닐 수 있는가.
 
그러나 전후 그들 삶은 또다시 형극이었다. 비극적 영웅들의 연속적 비극이었다. 6·25세대에게 인생은 풍파 자체였고 세상은 풍진일 뿐이었다. 그들에겐 하루하루 온 삶이 기도였고 공양이었다. 간구이자 소신(燒身)이었다. 매 순간 용을 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했던 가시밭길이었다. 그들의 희생을 탯줄로 대한민국은 도약해갔다. 그들의 죽음과 희생은 생명과 회복으로 부활했던 것이다.
 
인류 첫 선조의 이름은 경작자라는 뜻을 갖는다. 경작을 해본 사람들은 씨·흙·물·빛의 넷 중 하나라도 없으면 생명은 자라지 못한다는 점을 안다. 저 영웅들은 우리에겐 네 가지 모두였다. 그들은 오늘과 우리를 있게 한 씨앗이고 토양이며 생명수이고 햇볕이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안타깝고 미안했던 그 영웅세대의 일부는 아직 생존해있다. 후대를 위해 육신과 영혼의 마지막 한 방울 진액까지 다 바친 그들에게 오늘 90도의 경례를 드린다. 하늘과 땅에서 늘 안식과 평안을 누리시길 이토록 간절히 기원한다.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