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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인사이드] 양키스서 활약중 6·25 참전···그 영웅이 50년뒤 최희섭에 한 말

중앙일보 2020.06.30 06:00
제리 콜먼이 한국전쟁에 해병대 조종사로 참전했던 당시 조종석에서 찍은 사진 [미 해병대]

제리 콜먼이 한국전쟁에 해병대 조종사로 참전했던 당시 조종석에서 찍은 사진 [미 해병대]

 
지난 2003년 8월 7일,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 중 일이었다. 홈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원정팀 시카고 컵스의 대결을 파드레스 라디오에서 중계하고 있었다. 당시 컵스 소속이던 최희섭이 타석에 들어서자 해설자가 "와! 정말 큽니다. 저런 덩치라면 한국에서 모내기할 때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자 미국 내 한국인 사회에서 인종차별적 언사라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희섭 모내기할 때 어렵겠다"
뉴욕 양키즈 MVP 한국전 참전

 
이에 방송국에서는 '결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쳤다'며 사과하는 것으로 해프닝은 마무리됐다. 듣기에 따라 기분이 나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홈팀을 편파적으로 응원하는 팀 소속 라디오 방송에서는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미국식 유머였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당시 80세나 된 미국의 나이 든 해설자가 한국의 모내기 풍습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해설자 제리 콜먼은 이름을 빗대어 대령님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사진 wikipedia]

해설자 제리 콜먼은 이름을 빗대어 대령님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사진 wikipedia]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는 1930년대, 1950년대, 1990년대가 전성기였다. 그중 전무후무한 월드시리즈 5연패 기록을 남긴 1949년부터 53년까지는 양키스 최고의 황금기였다.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해설자인 제리 콜먼(Gerald Francis "Jerry" Coleman)은 바로 이 시기에 양키스의 영광을 이끈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1949년 그는 양키스의 주전 2루수로 당당히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그해 우승에 일조했다.
 
1950년 시즌에는 올스타에 선정되고 월드시리즈에서 MVP로 뽑혔다. 그다음 해에도 철벽 수비와 맹타를 휘둘러 당당히 3연패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그는 영광스러웠던 양키스의 5연패 시절 후반기인 1952~53년에 아무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부상이나 갑작스러운 슬럼프 때문이 아니었다. 1951년 시즌 종료 후 6·25전쟁에 참전하라는 영장을 받았던 것인데, 사실 그에게 이번 전쟁이 처음은 아니었다.
 
제리 콜먼이 1952년 배팅 자세를 취한 사진, 그는 1950년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사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제리 콜먼이 1952년 배팅 자세를 취한 사진, 그는 1950년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사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콜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병대 제341뇌격비행대(VMT-341) 소속 조종사였다. 솔로몬 전투와 필리핀 전투 등 58회나 출격했던, 역전의 용사였다. 보통의 사람에게도 두 번이나 참전하라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 틀림없다. 더군다나 인생 최고의 절정기를 보내던 선수에게 그러한 명령은 악몽과 다름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그는 국가의 부름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한국으로 떠났다.
 
콜먼은 평택 K-6 기지에 전개한 제323공격비행대(VMA-323)에 배치된 뒤 63회나 출격하여 훈장을 받았을 만큼 성실히 복무했다. 당시에 그는 농민이 농사짓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전쟁 중 힘겹게 일상을 이어가던 작은 한국인들의 고단한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던 그에게 엄청난 거구의 최희섭은 그래서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사실 처음 언급한 멘트도 '저만큼 한국인들의 골격이 커졌구나'는 투의 감탄이었다
 
샌디에이고 홈구장인 펫코 파크에 설치된 제리 콜먼의 동상과 사진에서 그를 향한 미국인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사진 wikipedia]

샌디에이고 홈구장인 펫코 파크에 설치된 제리 콜먼의 동상과 사진에서 그를 향한 미국인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사진 wikipedia]

 
콜먼은 라이벌 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테드 윌리엄스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 모두 참전한 단 두 명의 메이저리그 올스타였다. 이후 두 번째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팀에 복귀한 그는 1956년 또다시 양키스의 우승을 견인하고 이듬해 은퇴했다. 하지만 야구계를 떠나지 않고 해설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무려 55년간 방송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삶을 살았다.
 
제리 콜먼은 2011년 미 해군(해병대) 발전에 이바지한 이에게 수여하는 론 세일러(Lone Sailor)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진 wikipedia]

제리 콜먼은 2011년 미 해군(해병대) 발전에 이바지한 이에게 수여하는 론 세일러(Lone Sailor)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진 wikipedia]

 
위대한 야구인이자 한창 전성기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의무를 다한 용사였던 콜먼은 이름을 빗대어 '대령님'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 그만큼 그의 모범적인 군 생활은 모두에게 모범이 됐다. 그가 2014년 1월 5일 타계하자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가 애도를 표하였던 것은 유명인이기 이전에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는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던 삶을 살아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세계인의 일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중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던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가 중단된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비록 무관중이지만 시즌을 시작한 한국 프로야구 경기가 미국의 최대 스포츠 채널인 ESPN을 통해 생중계되는,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만일 콜먼이 좀 더 장수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참전 용사이자 야구인이었기에 틀림없이 누구보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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