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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나는 증세에 반대한다

중앙일보 2020.06.30 00:17 종합 25면 지면보기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우리나라 국민들은 나라 걱정이 많다. 외환위기가 덮치자 줄지어서 금반지를 내놓은 이는 평범한 국민들이었다. 행여나 달러가 모자라 나라가 파산할까 봐 장롱 깊숙이 보관해뒀던 돌반지, 결혼반지를 들고 나왔다. 외환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결국 국민들의 애국심이었다.
 

코로나 위기로 재정 역할 커졌지만
불황 속 증세는 경제난 심화 소지
세금 귀하게 쓰는 노력부터 보여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오자 이번엔 국민들이 나라 재정을 걱정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나랏빚은 빠르게 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그랬다.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원에서 2019년 729조원으로 69조원 불어났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6%에서 38.1%로 높아졌다. 코로나 위기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작년 말 짜놓은 수퍼예산(512조원)에 올해 세 차례 추경이 얹어지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국가채무는 840조원, GDP 대비 비율은 43.5%로 치솟는다. 정부 자체 추산으로도 국가채무 비율은 2023년에 51.7%로 급등한다. 위험 수위가 눈앞이다.
 
나랏빚이 급증하는 것은 씀씀이가 헤펐던 현 정부의 그릇된 경제 운용 때문이지, 국민 탓이 아니다. 그런데도 코로나 위기 대응에 재정 쓸 일이 많아지고 재정적자가 덩달아 증가하자 나라 곳간 걱정을 한다. 심지어 세금을 더 걷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먼저 운을 뗀다. 눈물 나게 하는 국민들이다.
 
그러나 나는 증세에 반대한다. 우선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선 세금을 아껴 쓴다는, 최소한 아껴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현 정부에선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지출구조조정은 말뿐이었다. 정부 총지출(예산 기준) 증가세는 2018년 7.1%, 2019년 9.5% 등 해마다 가파르다. 공기업도 효율성과 수익성은 뒷전이다. 적자를 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탈원전’에 갇힌 한국전력은 작년에 2조 원대 순손실을 내고도 경영평가에서 ‘양호’ 등급을 받았다.
 
서소문 포럼 6/30

서소문 포럼 6/30

긴급재난지원금 추진 과정에선 일단 뿌리고 보자는 포퓰리즘이 불을 뿜었다. 재정 형편과 실효성을 감안해 서민과 취약계층 위주로 지급하자는 경제부총리를 여당 의원들이 힘으로 찍어눌렀다. 그들에겐 총선 승리만 보였을 것이다. 결국 재난지원금은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치는 중상류층에게까지 뿌려졌다. 이 바람에 애초 정부안보다 더 지출된 사업비가 약 5조원이다. 상황이 이런데 세금을 더 걷자는 주장이 타당한가.
 
둘째는 증세의 방향성이다.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주의’는 현 정권에서 통하지 않는다. 부자와 빈자를 편가르는 것이 현 정권의 속성이다. 집권 초반 일찌감치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렸고,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부담도 높여가고 있다. 서민 과세기반 확대나 상품·서비스에 붙는 부가가치세 인상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할 것이다. 증세논의는 부자 증세로 좁혀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부자 증세의 폐해는 작지 않다.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자본 이탈을 부추길 것이다. 현재도 한국은 세금이 무거워 조세경쟁력이 낮은 나라로 꼽힌다. 부자 증세로만 국한될 일이라면 증세는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셋째, 타이밍이다. 대공황을 능가하는 불황이라면서 세금을 올리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취약계층이 쓰러지는 것은 불황 때문인데, 세금을 더 걷으면 민간의 소비·투자 여력이 더 쪼그라들고 불황을 가속화시키기 십상이다. 불황 때 세금이 줄어 민간의 소비 여력이 생기고, 호황 때 세금이 늘어 경기 과열을 식히는 것을 재정의 자동안정화장치라고 한다. 불황기의 증세는 이런 메커니즘과 정반대여서 경기를 더욱 가라앉히는 나쁜 정책조합으로 꼽힌다. 지금 경기 상황은 증세를 할 때가 아니다.
 
사실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서 재정의 역할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관건은 재원이다. 적자 국채를 찍어 빚을 후세에 물려주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것이 증세 논의의 출발점이다. 나라와 후대를 위한 충정이다.
 
그래도 지금은 안된다. 국민들은 아직 현 정권으로부터 세금을 어떻게 최대한 아낄지, 국가 부채를 어떻게 줄여나갈지 명확한 계획을 보고받지 못했다. 세금을 귀하게 쓰는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다. 증세 논의는 그 신뢰 위에서 가능한 법이다. 이참에 나랏빚을 줄이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공약 사업을 중단하거나, 내각의 급여와 의원들의 세비를 대폭 깎는 장치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정부와 여당에게서 이 정도 각오를 볼 수 있어야 세금 더 낼 기분이 들지 않겠나.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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